스크린의 기록영화

맨홀 (2014)

맨홀 (2014)
– 어쩌면 새로운 장르가 될지도

도심 어디에나 무심결에 지나가는 맨홀 아래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마가 산다. 태평양 건너 저 먼 곳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사는 이 땅 어느 도시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소리소문 없이 실종되고 있다. 하지만 소재만으로도 긴장감을 조성했어야 할 이 영화를 보며 가슴을 몇 번을 치고, 머리를 얼마나 쥐어 뜯었는지 모른다. 어느 샌가 한국 스릴러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경찰의 무능함은 도를 넘고, 말을 하든 못하든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 하나 없다. 긴박함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스릴러를 보며 답답함에 영화관을 박차고 나갈 뻔했다. 

감독이었든, 제작이었든, 욕심이 과했다. 또 다른 봉준호가, 나홍진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아저씨>를 감명 깊게 봤을지도 모른다. 이타심을 잃은, 타인에 무관심하고 몸 사리기 바쁜 우리의 초상, 무능한 경찰, 생명보다 절차나 결과를 중시하는 시스템, CCTV라는 기술에 대한 맹신, 비극적인 가족사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영화를 이리저리 흔든다. 짐작하건대 살인마의 범행 동기를 불타버린 가족에 두려 했던 것 같다. 연서, 수정 자매의 가족에도, 다른 인물들에도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여러 이야기들이 완결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난다. 취사선택했다면 싸이코패스물이 될 수도, 비극적인 현대 범죄물이 될 수도 있지만, 가지치기에 실패한 영화에는 맨홀 뚜껑 같은 구멍들만 생겼다.

아쉬움이 크지만, 사실, 동시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 눈 뜨고 못 봐줄 영화들도 많은데, 이 영화를 보며 2시간 가량 머리를 쥐어 뜯을지언정 지루함에 졸거나 엉망이라 화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에 담긴 장르나 사람에 대한 시선이 급조된 것 같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산만한 편이 속 빈 강정처럼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자극과 충격에만 초점을 맞춰 잔인한 장면이 과도하게 나오거나 질척이지 않았다(이건 등급 때문에 편집된 부분일 수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축약된 메시지를 짧은 시간에 전달하던 단편 위주의 연출에서 1시간 넘게 호흡을 이어나가야 하는 장편이 손에 익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을 줄이고 특기를 살려 차기작을 선보였으면 좋겠다. 다양성의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머리를 쥐어 뜯게 하는 답답하고 갑갑한 스릴러라든가, 본인만의 장르를 만들어 국내 영화 장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다. 트렌드에 편승하거나 그저 그렇고 뻔한 영화들 사이에서 새로운 바람이 일으킬 수 있길 응원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관을 나와 먹은, 이 영화와 공통점이 많았던 ‘너무 다양한 소스와 토핑을 뿌려 감자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감자튀김은 용서하기로 했다. 언젠가 감자튀김 본연의 맛으로 충격과 감동을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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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맨홀(2014)
연출, 각본: 신재영
출연: 정경호(수철), 정유미(연서), 김새론(수정), 조달환(필규), 최덕문(경찰)
장르: 공포, 스릴러
제작국가: 한국
촬영: 조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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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작 혹은 상상 1) 아버지의 범행에서 살아남은 살인마는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가족을 구상하기 위해 납치, 감금, 살인을 한다.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혹은 계획하지 않은 이들의 사체는 지하 공간 어딘가에 유기된다. 반면, 자신의 ‘가족’은 소독과 방부 처리를 거친 후 식탁에 하나 둘 앉게 된다. (중간에 죽은 송이의 몸을 소독해서 싸놓은 장면을 보면, 송이 아빠가 발견한 시체들과는 차별 기준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맥락에서 연서와 수정, 경찰 아저씨 모두 불청객) 

+ 짐작 혹은 상상 2) 연서와 수정은 배다른 자매 혹은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연서의 실수로 수정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도 해봤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연서가 수정을 대하는 태도에서 죄책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상황이 급박할 수 있지만 엄마가 놀랐다고 해서 딸 뺨을 때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안아주는 건 비약이 심해 보인다. 정상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영화 속에 병원 장면을 기점으로 수정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거나, 그 시기 즈음에 수정이 연서의 가정에 편입되었다. (어릴 때부터 말을 하지 못한 거라면 교복을 입은 연서가 수화를 배우지도 않았겠지) 

+ 짐작 혹은 상상 3) 사슬에 묶인 아이는 1)에서 언급한 불청객 중 하나로 아주 어릴 때 납치되었거나 살인마의 아버지가 불태운 건물 근처에서 발견한 고아. (그 건물은 교회를 연상시키지만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고, 고아원일 수도, 공장일 수도 있을 듯.) <체인드 (2012)>를 연상시키는 아이는 또 다른 싸이코패스가 될 것인가, 맨홀 아래 떠도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될것인가.


+ 쓰다 보니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것 – 그들은 맨홀 아래서 대체 뭘 먹고 사는 걸까. 매일 어딘가에서 가져와 큰 통을 채우던 액체의 정체는? 우윳빛 액체는 무엇이며, 그게 휘발성이라는 걸 연서는 어떻게 알았던 걸까. 연서는 왜 가족사진을 보며 화재 현장을 떠올린 걸까. 살인마는 다른 곳에 있다가 언제 그 곳으로 돌아온 걸까. 등등

+ 쓰다 보니 미완된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늘 그러면 문제겠지만. 무삭제판이나 감독판이 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짧은 감상>

★★★ (6/10)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 뜯으며 봤다. 너무 많은 소재를 집어넣으려 했고, 이들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완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엉성해서 못 봐줄 정도의 엉망인 영화는 아니다. 욕심을 줄이고 가지치기를 했다면, 괜찮은 도시 스릴러가 되었을 것 같다. 답답함에 가슴 치는 스릴러라든가, 본인만의 장르를 만들고 특기를 살려 차기작을 내줬으면.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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