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웜 바디스 (Warm Bodies, 2013)

웜 바디스 (Warm Bodies, 2013)

– 사람에 대한 좀비 드라마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인파를 따라 무의식적으로 계단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생기 있는 대화가 있을 리 만무한 아침, 발걸음에서마저 힘없는 단조로움이 느껴졌다.그들을 보며, 그리고 그들과 다르지 않은 스스로를 보며 한 방향으로 무리 지어 움직이는 ‘좀비 떼’같다고 생각했다.


영화 <웜 바디스> 속 폐허가 된 공항에서의 좀비들을 보며 가장 먼저 아침 출근길이 떠올랐다. 죽었거나, 죽었지만 죽지 않은 이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그 곳. 그 곳의 좀비들은 절망도 희망도 느껴지지 않는 잿빛 얼굴로 의미 없는 제자리 걸음을 되풀이한다. 그들은 자신이 누군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죽음이 선사한 무한한 시간 속에 갇힌 채 정처 없이 떠돈다. 사고는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의사 소통을 할 수 없다. 생각조차 썩어가는 육체처럼 함몰되어 간다. 피곤과 싸워 가며 누군가가 쿡 찌르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것이라면 그들은 ‘이미 죽은 존재’라는 점이다.

육체에 갇혀 천천히 무너져가는 자신을 겨우 지탱하던 주인공이자 좀비인 ‘R’. 어느 날 사냥을 나섰다가 인간 ‘줄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속박되어있던 감정은 그의 걸음과 단어들만큼이나 천천히 전달되지만, 죽어있던 그의 심장을, 주변의 마음들을 울리기 시작한다. 로미오(R)와 줄리엣(줄리)처럼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둘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또 이해하며 자신과 타인들을 변화시킨다.

살아있다는 것. R이 그토록 갈구했던 살아있다는 감정을, 지금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무언가에 쫓기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주변을 닦달한다. 여백이 없는 생활은 되려 삶을 구속하기 십상이다.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인 채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다. 나를 둘러싼 소중한 것들에 대한감사를 하는 데도 일부러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하루가 정신 없이 지나가는 만큼 허무와 공허가 밀려오는 요즘의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R’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웜 바디스>에서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치료제는 다름 아닌 ‘관심’과 ‘사랑’이다. 좀비와 인간들이 관심과 사랑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들 사이를 가로막던 높은 벽은 무너지고, 멈췄던 심장들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며 단절된 세계는 관심으로 확장되고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치유 혹은 힐링을 갈망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사실 필요한 건 타인과 세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를 과중시하면서 타인과의 진정한 교류와 이해가 부족해진 것은 아닐까. 또 보이지 않는 고독의 심연에 빠진 채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신선한 좀비 영화, 혹은 또 다른 유치한 로맨스물로 치부할 수 있는 이 영화의 표현은 가볍고, 절대악의 설정은 예측 가능한 전개와 결말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속의 ‘진정한 살아있음’에 대한 메시지는 한번쯤 곱씹어 볼만하다.


***

제목: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
연출/각본: 조나단 레빈(Jonathan Levine)
원작: 이삭 마리온(Isaac Marion)
출연: 니콜라스 홀트(Nicolas Hoult,  R), 테레사 팔머(Teresa Palmer, 줄리), 존 말코비치(John Malkovich, 그리지오 장군), 애널리 팁튼(Analeigh Tipton, 노라), 데이브 프랑코(Dave Franco, 페리 켈빈), 롭 코드리(Rob Corddry, M)
장르: 코미디, 공포, 멜로/애정/로맨스
제작국가: 미국
촬영: 자비에 아귀레사로브(Javier Aguirresarobe)
음악: 마르코 벨트라미(Marco Beltrami), 벅 샌더스(Buck Sanders)

***


+ 경쾌한 음악과 (의외로) 잔잔한 연출 덕에 보는 내내 눈과 귀를 즐거웠다. (‘잔잔한 연출’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좀비물은 좀비물이다.)

+ 줄리 역의 테레사 팔머를 보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꾸 떠올랐다.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페리 역의 데이브 프랑코는 제임스 프랑코와 형제.


+ 책을 구매해 읽고 있는 중. 영화와는 또다른 느낌이라, 성공적으로 다 읽게 된다면 짧게 나마 감상을 남길 예정

<짧은 감상>
나의 점수 :
★★★★☆
사람에 대한 좀비 드라마.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고 스스로에 갇혀 함몰되어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살아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무겁지 않은 표현과 연출, 경쾌한 음악에 보는 내내 귀와 눈이 즐겁다.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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