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2016)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s.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 착한 놈 vs. 더 착한 놈: 오해의 시작

두 남자는 말이 없다. 대화를 기대하며 절박하게 건넨 말은 주먹으로 제압된다. 필적할 이 없는 맷집과 인내심도 결국 한계에 이르러 목숨을 건 주먹다짐이 오간다. 소통의 부재가 낳은 오해이자 우주적 비극이다.

오해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다. 배트맨은 자신의 터전과 사람을 눈앞에서 잃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이들’이 자신들의 싸움으로 온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탓이다. 초인적인 힘을 지녔든 평범한 인간이든,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내적 의도가 선한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선’은 없다. 느닷없이 상대에 총구를 겨누는 ‘악’과 ‘이기’가 있을 뿐.


초인적인 힘을 지닌 슈퍼맨은 곤경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 위해 전세계 어디든 날아간다. 자신의 힘으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과는 달리 배트맨은 범법자를 처벌한다는 명목 하에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선의와 정의는 살아있다. 이를 일그러뜨리는 것은 바로 배트맨이다.

선과 악, 인간과 신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오해는 깊어진다. 대중이 만든 슈퍼맨이라는 ‘신’과 인간을 벌하는 ‘인간’ 배트맨, 인간 내면에 선의가 존재한다는 믿음과 모든 행위의 근간은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충돌한다. 선의를 믿는 부모와 함께한 슈퍼맨과 범죄로 부모를 잃은 배트맨의 상반된 유년 시절로 이들의 세계관과 시각은 더욱 괴리된다.

지구의 운명을 좌우할 두 히어로의 과격한 다툼은 유언처럼 내지른 단어, 아니 이름 하나로 막을 내린다. ‘마사(Martha).’ 어머니는 숱한 유혹에도 심지를 곧게 세우던 슈퍼맨을 무릎 꿇게 하고, 배트맨이 남다른 증오와 오해를 키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자 원동력이다. 공교롭게도 두 어머니의 같은 이름은 서로가 아주 다른 존재가 아닌, 어머니라는 가족과 소중한 이를 지키고픈 별 다를 것 없는 ‘사람’임을 환기한다. 출신과 능력은 다르지만 결국 서로가 그저 좋은 일을 하려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해로 (급격하게) 오해와 갈등이 해소된다.

히어로 장기자랑 같은 마블계 영화에 비해, DC계를 대표하는 두 히어로의 대결은 어둡기 그지 없다. 선과 악, 인간과 신, 존재와 당위, 가치 간의 충돌 등 인류를 오래도록 괴롭혀온 철학적인 질문을 담은 영향이다. 자신의 존재와 행위의 당위를 고민하는 슈퍼맨에 그의 아버지가 전한 이야기가 한 예다. 강 아래 마을을 구하기 위해 댐을 만들었더니 윗마을이 잠겼다. 자신의 행위로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선한 행위로 생긴 부수적인 피해는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가. 생명에 경중을 따질 수 있는가. 생명을 구하는, 절대적으로 선한 행위라 믿었던 것마저 의심하게 하는 묵직하고 불친절한 질문을 곳곳에 남긴다.

화려한 능력에 치중하기보다 고민을 담고자 했던 영화의 이음새는 그리 매끄럽지 않다. 배트맨의 증오의 대상이 ‘악’이 아니라 슈퍼맨으로 좁혀져 복수극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든가, 지구를 위협한 둘의 오해가 급작스럽게 해소되는 장면은 실소가 나올 정도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슈퍼맨의 천적 렉스 루터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적인 전반과 액션이 몰린 후반으로 양분된 구성은 긴 상영시간동안 긴장감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가는 데 한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환호한다.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소름이 돋고, 우주 최강 로맨티스트 슈퍼맨에 코끝이 찡하다. 원더우먼, 슈퍼맨, 배트맨이 힘을 모아 악당을 때려부술 때 스크린 안팎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실제로 그랬다면 초유의 혹평을 받았을 게 분명하지만) 로이스의 눈물로 슈퍼맨이 눈을 뜨는 말도 안되는 기적을 바랄 정도로 몰입했다는 건 비밀.

왜 ‘인간’을 위해 싸워야 하냐는 원더우먼의 질문으로 짐작해보건대 다음 영화도 신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냥 ‘느낌’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폭죽놀이 같은 액션의 향연이 아닌, 곱씹을 질문을 곁들인 잭 스나이더 감독의 차기작으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어머니 이름만은 제발 부르지 말자). 역대급 히어로들이 종합선물세트로 몰려온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

  • 제목: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s.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 연출: 잭 스나이더 (Zack Snyder)
  • 각본: 크리스 테리오 (Chris Terrio), 데이빗 S. 고이어 (David S. Goyer)
  • 원안: 밥 케인 (Bob Kane), 빌 핑거 (Bill Finger), 제리 시겔 (Jerry Siegel), 조 슈스터 (Joe Shuster)
  • 출연: 헨리 카빌 (Henry Cavill, 클락 켄트/슈퍼맨), 벤 애플렉 (Ben Affeck, 브루스 웨인/배트맨), 에이미 아담스 (Amy Adams, 로이스 레인), 로렌스 피시번 (Laurence Fishburne, 페리 화이트), 제시 아이젠버그 (Jesse Eisenberg, 렉스 루터), 제레미 아이언스 (Jeremy Irons, 알프레드), 홀리 헌터 (Holly Hunter, 핀치), 갤 가돗 (Gal Gadot, 다이아나 프린스/원더우먼)
  • 장르: 액션, 모험, 판타지, SF
  • 제작국가: 미국
  • 촬영: 래리 퐁 (Larry Fong)

***

+ 영화는 히어로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순을 잊지 않고 비춘다. 경계하고 통제하려다,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촛불을 들고 영웅으로 추앙한다. 거기다 하늘에서 떨어진 이들 때문에 인간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니. 인간만이 유일무이한, 최고의 존재여야 한다는,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 그릇된 오해와 분노를 키워온 배트맨은 한결같이 선하고 정의로울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 동시에 오해를 바로잡고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불의와 악에 저항하는 본연의 의지를 가진 강한 존재라는 희망적인 시선을 담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영화가 ‘신’과 ‘인간’의 고민을 모두 담으려다 어느 한 쪽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배트맨의 증오가 열등감이나 패배감으로 비친 건 상당히 아쉬운 부분.

+ 전작 <맨 오브 스틸>부터 절대적인 선도 악도 없다는 시선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대중적인 취향과 성찰 사이에서 균형잡기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회를 거듭하며 가벼워지기보다 노련해지기를.

+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이후 다시 본 <맨 오브 스틸>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재미있다. 통제되지 않는다고 해서 적은 아니라는 슈퍼맨의 의미심장한 말이 더욱 와닿는다. 은근히 보이는 렉스코프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 하이라이트는 원더우먼. 여러모로 배트맨은 지못미.

**별점을 주자면: 8/10 (스토리:7, 비주얼:8, 연출:8, 연기:9)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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