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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괴물학자와 제자

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괴물학자와 제자 (The Monstrumologist, 2009)
– 괴물 쫓는 ‘셜록’과 12세 ‘왓슨’의 모험, 그 서막

* 이 포스팅은 황금가지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서평단으로 선정, 제공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코난 도일이 창조하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쌓은 셜록 홈즈의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사회적인 인간에게 요구되는 규범이나 윤리에 ‘순수한 호기심’을 앞세우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의 주인공 펠리노어 워슬롭 박사의 모습에서도 그가 떠오른다. 풀리지 않은 문제를 두고 잠과 음식을 거르고 밤낮없이 매달리거나, 무너지는 자신의 가설을 끝까지 외면하려는 고집도 서로 닮았다. 덕분에 헤링턴 레인의 집이 베이커 가 221번지의 연장선일 것 같은 상상이 더해진다.

펠리노어 워슬롭은 괴물학자다. 시리즈의 제목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작가가 만들어낸 몬스트러몰로지(Monstrumology), 즉 ‘괴물을 연구하는 과학(the science of monsters)’에서 파생되었다.

몬스트러몰로지 (Monstrumology)

  1. 인간에게 대체로 적대적이며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특히 신화나 전설의 산물로 여겨지는 생물을 연구하는 학문
  2. 그런 존재를 사냥하는 행위

배경은 1888년 봄, 미국이다. 같은 해 영국 런던에서는 ‘잭 더 리퍼’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화이트채플 연쇄살인마의 잔인무도한 살인이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한 해 앞선 1887년은 셜록 홈즈가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이어 괴물을 연구하는 펠리노어 곁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의 곁을 지키는 윌 헨리가 있다. 양친을 잃은 12세 소년은 워슬롭의 집에 거주하며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손님을 맞이하고 가사일부터 푸념을 듣는 일까지 박사의 기괴한 연구를 다방면으로 돕는다.

그 날 밤도 그렇게 손님이 찾아온다. 수레에 실린 물건은 다름 아님 기이한 몰골의 인간 혹은 괴물과 엉겨 붙은 소녀의 시체였다. 펠리노어 워슬롭과 윌 헨리는 ‘안트로포파기’라 불리는 이 괴물의 족적을 쫓아 공동묘지에서 추적전을 벌이고, 정신병동에서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고, 마오이 족이 고안한 방법을 응용해 괴물을 사냥한다.

그저 그들은 배고픔이라는 자연적인 본능을 좇는 행위였을 뿐.

우리는 전혀 우월한 존재도 아니고, 무슨 도덕성을 갖춘 천사가 아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먹잇감인 인간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들은 멸종의 위기에 몰렸다.

괴수물을 글로 읽는 낯선 경험뿐이었다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괴수물이라는 장르에 여러 요소를 심어 두었다. ‘과학철학’자이기도 한 펠리노어와 존 컨스는 사자와 악어를 들며 배고픔이라는 자연적인 본능과 욕구를 채우는 괴물의 행위가 인간을 향하기 때문에 지탄받아야 하는지, 자연의 먹이사슬을 거스르는 인간이 만든 아이러니를 묻는다.

한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심적으로 고립되었던 펠리노어와 윌 헨리의 성장과 진화도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부모가 남긴 아픈 과거를 딛고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모습은 뜻하지 않게 삶을 경험하게 되는 로드무비의 여정을 연상시킨다. ‘안트로포파기’는 헤로도토스와 셰익스피어에 등장하지만, 묘사된 ‘식인 괴물’에 그치지 않고 모성애나 집단성 등 특성을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큰 흐름 속 작은 이야기들이 모인 여정의 총합은 문장마다 담긴 세밀한 묘사를 놓치지 않고 싶으면서도 뒤가 궁금해 자꾸 속도를 내 책장을 넘기게 한다.

셰익스피어 오셀로에 등장한 ‘안트로포파기’를 그린 그림 (The Pictorial Edition of the Works of Shakespeare / Edited by Charles Knight / Tragedies, Vol. I.)

출처: Anthropophagi, &c. From Hondius’s Latin translation of Raleigh’s ‘Voyage to Guiana’ – <Victorian Illustrated Shakespeare Archive (Michael Goodman)> 블로그

실존 인물과 연결 고리를 두며 허구에 기이한 생명력을 더한 [몬스트러몰로지스트]의 첫 작품 <괴물학자와 제자>는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을 쌓아 나간다. 앞으로 이어질 여정까지 생동감이 넘치는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옮겨져도 좋을 것 같다. 괴수물이라는 장르에 고착되지 않으면서도 질문들과 심적 변화를 어떻게 입체적으로 담을지가 관건이다. 영화의 호흡보다는 드라마가 좀더 어울릴 것 같지만, 2014년 워너 브라더스에서 영화화를 제작 중이라고 하니 기다려봐도 좋겠다.

과연 존 커스, 리차드 코리, 잭, 존 J.J. 슈밋 박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펠리노어와 윌 헨리의 공생관계는 계속될까. 쉴새없이 달려온 1권의 여정 끝에 궁금증이 더해진다. 조각난 퍼즐이 맞춰지듯 시리즈가 마무리되길. (그리고 시리즈를 완독한 후 총평을 남길 수 있기를 빌며.)

***
제목: 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괴물학자와 제자 (The Monstrumologist, 2009)
지은이: 릭 얀시 (Rick Yancey)
옮긴이: 박슬라
출판: 황금가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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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

++ 나는 박사가 그의 부친을 몰랐던 것만큼이나 박사를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에게 내린 저주, 타인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말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누군가의 언어와 행동으로 구성된 얄팍하고 조잡한 건물을 세우고 실재가 아닌 이미지로 이뤄진 토템을 건설한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찬양하며 세운 사원처럼 그건 진짜가 아니며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건물이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는지 안다. 나 자신이 만든 것이기에 어떠한 이론으로 이뤄져 있는지 이해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창조물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것이 교묘한 가짜라고 해서 그 애정을 거짓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p.397. 12장. “악마의 구유.”)

– 책 이미지 출처: 황금가지 블로그, 교보문고, Wikipedia

– ‘안트로포파기’ 이미지: 블로그 <Victorian Illustrated Shakespeare Archive>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이미지와 일부 문장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있습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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