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2022)

탑 (2022)
– 생에 대한 보편적인, 혹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회고

1층. 영화감독 병수는 딸 정수와 함께 인테리어 디자이너 해옥을 찾는다. 병수는 인테리어를 배우고 싶다는 정수를 해옥에게 소개하고, 해옥은 자신이 디자인한 건물을 층층이 그들에게 보인다. 아마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나를 아느냐는 말로 반박하는 병수 부녀는 외부인인 해옥만큼이나 어색하고 낯설다. 병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지하에서 정수는 와인의 취기를 빌려 ‘여우’같은 병수의 이중성을 고하고, 해옥은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2층은 예약한 손님만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다. 병수는 식당 주인 선희와 해옥을 만난다. 선희는 그의 영화를 ‘깔깔거리며 본다’고 하며 와인을 더 내어온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보고, 좋아해준다는 이야기에 병수는 남몰래 웃는다.

커플이 살았다는 3층에 이제는 병수와 애인이 산다. 애인의 생활은 병수에게 맞춰져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병수를 위해 애인은 자신의 식단을 맞추어 낸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일조차 묻고 허락을 구한다. 애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애인을 독촉하고 기다리던 병수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침대에 눕는다.

어떤 사람이 혼자 사는데 문을 잘 열어주지 않고 안에 있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4층. 그러냐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던 병수가 그 사람이 되었다. 애인은 병수에게 고기를 구워 주며 몸에 좋다는 선물을 꺼내고, 해옥은 한참 대답이 없는 4층의 문을 광광 두드린다.

사람들은 바다와 느슨하게 이어져 있으면서 육지와 단절된 섬처럼 제각각의 섬을 가꾸고 파괴하고 일으키는 생의 시간을 지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니 그 모습이 한 자리에서 세월을 겪어내며 시간을 쌓고 깊어지고 삭아가는 탑과도 닮았다.

영화는 평행 세계이기도 하고,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 자리에 머무는 건물의 층층이 마주하는 사람과 병수의 말과 표정이 바뀐다. 그 모습 역시 생의 축적에 따라, 마주하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보통의 삶과 비슷하다.

흑백의 화면에 담은 인물과 말은 현실적이고 생생하다. 카페 옆에 앉은 어떤 이, 혹은 무심코 스쳤을 나의 어느 때를 엿보는 것 같다가도, 홍상수 감독의 내밀한 고백과 회고처럼 느껴진다. 영화 <탑>은 그의 전작들처럼 어떤 맥락에서 보는지에 따라 다른 결을 보인다. 제한된 색과 공간은 영화와 보는 이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고 그곳에만 시선을 머물 수 있도록 한다.

다시 1층. 홀로 선 그의 표정은 쓸쓸하고 자연스럽다. 자기 것을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았던 시절도, 그를 여우라 칭하던 사람들에 ‘밖이 더 진짜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치열한 항변의 시간도, 싱그럽고 두근거리던 순간도 지나고 보니 그저 한 생이더라는 체념인 것도 같고, 그 또한 생임을 긍정하는 것도 같다.

다시 만난 병수와 딸 정수는 이제 제법 친해보인다. 그 모습에 어쩌면 못다한, 닿지 못한 화해에 대한 아련한 바람을 담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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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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