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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즈키의 냉철

<호오즈키의 냉철>
– 지옥이라는 이상향(理想鄕), 호오즈키라는 이상(理想)의 블랙코미디

호오즈키는 지옥 시왕(十王) 중 하나인 염라대왕의 제1보좌관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정도라고 하지만 염라대왕 관할의 팔대지옥과 팔한지옥의 운영이나 직원 관리 등 각종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염라대왕 리더십의 브레인이자 중추다. 사안의 본질을 간파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실력파로 주변의 신임이 두터운 만큼 주말 출근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호오즈키의 냉철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호오즈키는 그런 상황을 상사 염라대왕에게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수다스럽고 우유부단한 그에게 바른말을 아끼지 않는다. 초대 보좌관인 이자나미(일본을 만든 여신)도 예외가 아니다. “당신이 없어도 지옥은 잘 돌아간다.”, “낙하산”이라고 일갈하며 염라전 구조조정에 본의 아니게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매사 인정사정없을 것 같지만 옥졸에게 (무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유서 깊은 벽화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등 새로운 발상이나 접근법을 포용하기도 하고, 다른 시왕이나 타국 지옥 관계자 등 다양한 이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지낸다. 일 중독인 면도 있지만 공과 사의 구별이 분명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나 참견을 적극 사양하고, 단잠을 깨우면 직장 상사라고 해도 발로 차버린다.

호오즈키의 냉철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대체로 무표정하고 차갑게 보여도 본인은 즐겁고 유쾌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며, 금어초(금붕어 화초)를 키우거나 -그 실력도 수준급이라 콘테스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현세의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등 나름의 취미도 있다. 음식 등에 대한 취향이나 선호도 뚜렷하다. 깊은 원한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복수하는 인간(?)적인 면도 있다.

불교적 사후세계관을 토대로 한 지옥에 모모타로와 동물들, 카치카치야마(딱딱산), 한치동자 등 호오즈키 주변에 등장하는 일본 설화, 민담, 역사 속 캐릭터들이 생경할 법도 한데, 다이어트, 직장 내 갈등, 대인 관계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 이질감보다는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유행하는 걸 너무 쫓다 보면 나중에 흑역사가 된다”는 그때는 알았으면 좋았을 통찰들에 무릎을 탁, 회식에 ‘노우’라고 얘기했다가 결국 끌려가고야 마는 신참 지옥견의 모습에 씁쓸한 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호오즈키의 냉철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죽지 않는 망자들의 폭발적인 증가, 흉포화, 혼란의 가중으로 태초에는 하나였다가 천국과 지옥, 그리고 지옥이 세분되었다거나 EU 지옥, 중국과 일본의 경계에 있는 도원향과 같은 현대 사회에 빗댄 설정도 재미를 더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권력에 주눅 들거나 아부하며 눈치를 살피는 대신 되려 호통치고 맞서는 호오즈키에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는 건, 아쉬웠던 현실의 몇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능력과 역할이 존중받는 지옥은 이상향이지만, 그러니까 이렇게 살라는 교훈으로 힘주기보다 은근한 풍자와 해학으로 부담은 덜고 절묘한 쾌감을 준다. 각종 설화나 민담이 어쩌다 보니 호오즈키로 이어지는 전개에 실제 전해지는 이야기가 궁금해져 슬쩍 찾아보기도 했는데, 몇 초 남짓의 대사와 장면에 필요했을 각종 자료 조사와 각색의 노고에 경외심이 든다. 디테일에 의외의 재미가 숨어있다.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탄생 신화부터 각종 민담, 가쓰시카 호쿠사이, 타키 렌타로와 같은 실제 인물들이나 토토로, 심지어 우물의 사다코(영화 <링>)까지 변주와 응용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만약에, 로 시작해 마고할미가 산과 강을 만들며 휘적휘적 거닐다 반야와 사랑에 빠지는 절절한 러브스토리 혹은 복수극, 각 지역 민담의 애기장수들이 벌이는 히어로 각축전, 전국 팔도 암행어사들의 추리 수사물 등 변형, 축소되거나 잊힌 우리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스크린에서 재탄생한다면 어떤 모습일지도 상상해본다. 여기에 BTS, 뽀로로, 봉준호가 더해진다면? 뜬금없지만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현대적 상상으로 새롭게 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창세신조차 히스테리로 무장시키는 과감한 발상과 포용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성별이나 외모를 다루는 시선이 다소 아쉽고 불편하지만, 풍자와 해학의 블랙 코미디를 선호하는 개인적 취향과 관심이 더해져 오랜만에 유쾌한 궁금증이 인다. 볼 것이 넘쳐나 눈은 바쁘지만 머리가 게을러진 요즘, 우연히 접한 신선한 자극이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순간의 몰입이나 재미도 있지만, 어떤 작품을 계기로 시각이나 사고가 확장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그나저나 호오즈키 같은 직업인이 되는, 혹은 그런 상사나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지옥 같은 사회는 지옥에서나 가능한 걸까. 지옥보다 못한 현실, 지옥이 이상향이 되는, 쓰면 쓸수록 빠져드는 문장의 모순마저 즐거운, 지옥은 언제나 하레와 구우, 아니 대성황!이다.

호오즈키의 냉철
이미지 출처: 왓챠

+. 2020년 12월 현재 <호오즈키의 냉철> 1기(2014)는 넷플릭스에서, 2기(2017)는 왓챠에서 볼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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