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크린의 기록영화

다른 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1)

다른 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1) http://flyingneko.egloos.com/3853151 작년 가을, <북촌방향>을 보며 뜨끔, 하면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하하하>와 <북촌방향> 이후, 소소한 듯 낯뜨거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가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재미와 흥미를 떠나 이 영화는 왜 만들었을지 감독의 의중을 묻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영화는 끝까지 답을 얻지 못했다. 이자벨 위페르는 소주를 마시러 한국에 온 걸까. 같은 공간, 같은 인물이 다른 사연과 다른 이야기로 쳇바퀴를 돈다. 어려운 개념일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 쉬이 영화에 붙여 이것 저것을 슬그머니 끼워 설명하는 ‘평행 우주’라는 걸까. 이 평행 우주가 평행선을 그리지 않고 조금씩 휘면서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버린다. 영화 속 남녀가 모두 못났지만, 특히 한국 남자들이 참 못나게 그려진다. 질투와 술, 그리고 책임지지 못할 불손한 호기심이 비슷하게 등장하는 데 맛깔스럽지가 않다. 한 바퀴, 두 바퀴 돌면서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긴 했지만, 크게 공감이 갈 만큼의 감정도 깊이도 없는 것 같았다. 홍상수 감독이 아니라 무명의 감독에게서 만들어졌다면 이 정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반복과 변주를 보는 묘미가 있었던 지난 작품이 여전히 반복되어 이제는 새롭지 않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을 맴도는 건 이자벨 위페르가 아니라 감독일지도 모르겠다. *** 제목: 다른 나라에서(In another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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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2014)

맨홀 (2014) – 어쩌면 새로운 장르가 될지도 http://flyingneko.egloos.com/4048876 도심 어디에나 무심결에 지나가는 맨홀 아래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마가 산다. 태평양 건너 저 먼 곳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사는 이 땅 어느 도시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소리소문 없이 실종되고 있다. 하지만 소재만으로도 긴장감을 조성했어야 할 이 영화를 보며 가슴을 몇 번을 치고, 머리를 얼마나 쥐어 뜯었는지 모른다. 어느 샌가 한국 스릴러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경찰의 무능함은 도를 넘고, 말을 하든 못하든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 하나 없다. 긴박함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스릴러를 보며 답답함에 영화관을 박차고 나갈 뻔했다.  감독이었든, 제작이었든, 욕심이 과했다. 또 다른 봉준호가, 나홍진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 <아저씨>를 감명 깊게 봤을지도 모른다. 이타심을 잃은, 타인에 무관심하고 몸 사리기 바쁜 우리의 초상, 무능한 경찰, 생명보다 절차나 결과를 중시하는 시스템, CCTV라는 기술에 대한 맹신, 비극적인 가족사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영화를 이리저리 흔든다. 짐작하건대 살인마의 범행 동기를 불타버린 가족에 두려 했던 것 같다. 연서, 수정 자매의 가족에도, 다른 인물들에도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여러 이야기들이 완결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난다. 취사선택했다면 싸이코패스물이 될 수도, 비극적인 현대 범죄물이 될 수도 있지만, 가지치기에 실패한 영화에는 맨홀 뚜껑 같은 구멍들만 생겼다. 아쉬움이 크지만, 사실, 동시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 눈 뜨고 못 봐줄 영화들도 많은데, 이 영화를 보며 2시간 가량 머리를 쥐어 뜯을지언정 지루함에 졸거나 엉망이라 화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에 담긴 장르나 사람에 대한 시선이 급조된 것 같지 않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산만한 편이 속 빈 강정처럼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자극과 충격에만 초점을 맞춰 잔인한 장면이 과도하게 나오거나 질척이지 않았다(이건 등급 때문에 편집된 부분일 수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축약된 메시지를 짧은 시간에 전달하던 단편 위주의 연출에서 1시간 넘게 호흡을 이어나가야 하는 장편이 손에 익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을 줄이고 특기를 살려 차기작을 선보였으면 좋겠다. 다양성의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머리를 쥐어 뜯게 하는 답답하고 갑갑한 스릴러라든가, 본인만의 장르를 만들어 국내 영화 장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다. 트렌드에 편승하거나 그저 그렇고 뻔한 영화들 사이에서 새로운 바람이 일으킬 수 있길 응원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관을 나와 먹은, 이 영화와 공통점이 많았던 ‘너무 다양한 소스와 토핑을 뿌려 감자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감자튀김은 용서하기로 했다. 언젠가 감자튀김 본연의 맛으로 충격과 감동을 주기를 바라면서. *** 제목: 맨홀(2014) 연출, 각본: 신재영 출연: 정경호(수철), 정유미(연서), 김새론(수정), 조달환(필규), 최덕문(경찰) 장르: 공포, 스릴러 제작국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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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뺑덕(2014)

마담 뺑덕(2014) – 공허한 욕망 끝에 마지막 그 장면만 http://flyingneko.egloos.com/4049065 덕이는 사랑 앞에 백지 그 자체였다. 잘못된 시작으로 채워진 비뚤어진 욕망을 탓하기엔 사랑을 담는 그녀의 마음은 너무 비어있었다. 학규의 마음은 또 다른 백지였다. 목적 없는 삶의 공허함을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채웠지만, 그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조차 몰랐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지한 남녀가 만나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감정 속에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불태운다. 덕이의 사랑은 비극의 절정에 있다. 어찌 봐도 아주 나쁜 놈이거나 그냥 나쁜 놈인 학규에게 철저하게 복수하겠다는 마음 속에 연민이 꿈틀거린다. ‘어멈’이라는 호칭이 걸맞은 중년 여성이었다면 질척이기만 했을 감정이, 어리고 여린 소녀였기에 아프다.끝까지 나쁜 놈이었어야 할 학규가 용서를 구할 때 엉엉 울던 덕이를 보며, 그 안의 여린 소녀가 품었던 미련한 사랑을 탓했다.그러면서도 마지막엔 서로가 진정한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끝나버리기엔 너무 아팠다. 비극을 위해 두 배우는 열연한다. 이솜의 두 얼굴도, 정우성의 공허한 표정도, 눈먼 연기도 인상적이다. 정우성이 목소리가 이렇게 좋은 배우였던가. ‘향기 없는 꽃이 흩날리고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는 오프닝과 어우러진 내레이션에 놀랐다. 덕분에 영화에 꽤 몰입할 수 있었다. 덕이가 학규를 쫓아다닐 때 마음이 설렜고, 그녀를 매정하게 버리고 욕정만으로 채운 삶을 살아갈 때 분노가 일었다. 덕이의 복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음식 쓰레기와 담뱃재를 털어 넣은 ‘김치찌개’에서 극에 달했다. 덕이의 복수가 정점을 찍을 무렵, 청이의 등장으로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쉽게도 여기서부터 영화는 휘청댄다.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전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도 효심도 아닌 복수에 의해 현해탄을 건너는 청이. 그녀는 임금도 왕자도 아닌, 조폭을 주무르는 할아버지와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애초에 가족의 비극에 적극적이지도, 아버지를 끔찍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그녀의 행동은 어색할 뿐더러 설득력이 떨어진다. 품격을 지키던 치정 멜로가 갑자기 B급 영화로 전락한 느낌이랄까.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 때문에 청이의 존재를 지울 수 없었다는 것에 유감이다. 심청전에서 뺑덕 어멈과 학규의 관계나 감정이 큰 비중을 차지 하지도, ‘뺑덕 어멈’과 ‘마담 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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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2012)

신세계 (2012) – 오마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  flyingneko.egloos.com/3935344  경찰이면서 신분을 감추고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에 잠입 수사를 하게 된 이자성. 8년 후, 골드문 회장은 교통 사고로 급작스럽게 죽게 되고, 골드문의 두 세력을 둘러싼 암투에 경찰까지 개입된다는 내용의 <신세계>는 비슷한 설정 덕분에 자연스럽게 유덕화, 양조위 주연의 <무간도>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 <무간도>에서 경찰이지만 범죄 조직에 몸담게 된 진영인(물론 그보다 더 복잡한 사연이 있지만)과 범죄 조직에서 처음부터 철저하게 경찰로 키워진 조직원 유건명이 서로를 쫓고 쫓는 추격전을 벌이며 흐르던 긴장감과 그 흔들리던 눈빛은 여전히 생생하다. 자신이라고 믿어왔던, 허공을 떠도는 말처럼 잡히지 않는 ‘본래’ 신분의 자신과, 시간 속에 쌓여온 ‘지금’의 자신 간에 생긴 깊은 정체성의 괴리가 결국 둘을 선택의 기로로 몰아가고, 결국 이들은 선택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들의 선택에는 끊임 없이 갈구했지만 어쩌면 허상에 불과할지 모를 ‘본래’의 자신을 위해 긴 시간 동안 형성된 믿음과 유대를 저버려야 한다는 갈등이 내재한다. 그래서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무간 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그들에게 과연 그러한 선택이란 유의미한 것인가, 라는 생각에 처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쉽게도 <신세계>에서는 이러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경찰은 비열했고, 범죄 조직은 권력 암투의 장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던 ‘형님’이 있는 조직 쪽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양분된 정체성에 대한 내적 갈등보다는, 최악과 차악을 구분한 탓에 이 둘을 사이에 둔 생존의 방법이나 타이밍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그래서 <무간도>에서 느껴졌던 황국장과 아강의 죽음을 바라보던 진영인에게 느껴진 먹먹한 절망감이나, 한침을 겨눈 유건명의 총구에서의 비장함 같은 것이 없었다. 사실 연기로 따지자면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제 몸에 꼭 맞은 정장을 입은 듯한 이정재부터 언젠가부터 건달 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황정민, 두말할 것 없는 최민식과 조연들의 연기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의 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고 몰입도 공감도 쉬이 되지 않는 영화의 상영시간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무간도>에서 시작해 <대부>를 연상시키며 끝난 이 영화는, 두 영화의 오마주라는 굴레를 뛰어넘지 못한 것 같다. 모두 ‘무간 지옥’에 갇혀 있는 채로 제목과 같은 ‘신세계’는 오지 않았다. 소재의 차용도 좋고, 오마주도 좋다. 비슷한 소재로도, 오마주만으로도 원작에 걸맞은,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신세계>에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이나 연출이 부재하다.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을 적당히 섞어 자극적인 양념을 한  느낌이다. 지루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도, 아주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겼어야 할 감정적 공감대와 연민을 대사로 설명하고 얻으려 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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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The Berlin File, 2012)

베를린 (The Berlin File, 2012) – 첩보 속 인간 드라마 그리고 그들의 순정 http://flyingneko.egloos.com/3927635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한국, 북한, 이스라엘, 러시아 등의 여러 국가가 개입된 정보국과 정부 요원들의 암투. 스케일만 보더라도 한국, 중국, 일본, 북한을 맴돌던 그간의 규모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은 틀림없다. 거기에 하정우, 한석규를 비롯한 캐스팅은 기대치를 더한다. <베를린>은 북한의 지도자가 바뀌면서 생기게 되는 권력과 신뢰의 불균형,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세력들이 다른 세력들과 얽혀 쫓고 쫓기고, 배신에 배신을 거듭해나가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그린 영화다. 제목은 그 배경이 베를린을 의미하는데, 베를린이 아닌 다른 도시였다고 해도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을 것 같다. 하정우와 전지현, 이경영, 류승범은 모두 북한 측 사람으로 나오는데, 이러한 설정에는 어쩌면 이제는 찾기 힘든 ‘조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라는 설정에 긴 배경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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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건달 (2012)

박수건달 (2012) – 식상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flyingneko.egloos.com/3925365  낮에는 무당, 밤에는 건달. <박수건달>은 불경기에 원치 않는 겸업에, 두 가지 영역에 모두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이 남자가 본인이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하다, 삶과 사람의 소중함을 배우게 된다는 코믹 드라마다. 이런 류의 영화에 그만 웃고 울 때도 됐는데, 볼 때마다 정신 없이 웃다가 또 울고야 만다. 우리가 접하는 컨텐츠들의 대부분은 익숙한 틀 안에서 약간의 변형을 가한 형태의 연속이라고 보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평작 이상의 성공을 거둬온 우리나라 (코믹) 드라마들의 전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은 저버릴 수 없다. 그 약간의 변형은 ‘무당’이라는 소재가 주는 것과 무게 잡는 건달 역할 뿐만이 아니라 어색한 분장을 한 채 발을 구르는 박수 무당도 어색하지 않은 박신양과 아역 배우의 연기 정도인 것 같다. ‘무당’이라는 소재를 스크린으로 옮기기는 했으나 기대에 못 미친 영화 <점쟁이들>에 비해 <박수건달>은 코믹과 드라마의 경계가 분명한 덕에 그 재미가 배가된 듯하다. 기승전결도, 소재나 설정, 캐릭터도 여러모로 모호했던 <점쟁이들>에 비해 <박수건달>은 크게는 설정을 코믹하게 풀어낸 초반부와 가족과 삶,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섞인 후반부의 드라마로 구분되고 각 캐릭터들이 큰 변형 없이 틀 안에서 움직인다. 자칫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이러한 부분들은 배우들의 연기로 큰 어색함 없이 이어지는데, 이 중 특히 과장과 절제의 선을 잘 지켜낸 박신양의 공이 큰 것 같다. (물론 시종일관 노란 옷을 입고 나와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아역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어쩌다 서울말을 하는 건달이 부산에서 사업을 하며 신 내림까지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재료와 조리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다. 오랜만의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 박신양과 정혜영의 모습도 반갑고, <범죄와의 전쟁>의 코믹 버전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 조연들의 연기도 볼 만하다. 심각하게 곱씹으며 생각해볼 영화만큼이나 극장문을 나설 때 발걸음이 무겁지 않은 이런 영화도 필요한 것 같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식상한 감동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제목: 박수건달(2012) 연출: 조진규 각본: 박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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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2012)

은교(2012) – 추악함과 아름다움의 사이 http://flyingneko.egloos.com/3836194 시인 이적요는 큰 주택에 오늘 하루도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 예전만큼 시상이 떠오르지도, 감흥도 없이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늘 해오던 일인 독서를 하고 차를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그의 표정에는 묘한 긴장감이 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 인지 그의 문하생인 서지우는 늘 절절 매며 그의 눈치를 살피기 일쑤다. 서지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청소며 빨래, 요리를 도맡아 한다. 그러던 그들 앞에 여고생 은교가 나타난다. 제멋대로 이적요의 집 앞마당에 들어와 낮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등장으로 이들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축 처진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던 노인 이적요는 활기를 띈 젊은이가 되어 상상으로 은교를 탐한다. 그리고 은교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원고지에 써 내려간다. 여고생 은교는 역시 알게 모르게 욕망을 품고 표출한다. 그녀의 치마와 셔츠는 점점 짧아지고 그의 곁에서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맴돈다. 그들 사이에서 서지우는 그들의 욕망을 이용하며 위태롭게 서있다. 욕망이란 말로 표현을 못한다 뿐이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한다. 이러한 욕망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어 모습을 드러낼 때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러나 내재된 욕망이 절제와 인내, 갈등이 없이 그대로 표출되었을 때 추악함에 가까워진다. 싱그러운 봄의 내음과 여름의 초록마저 느껴지던 이적요의 상상은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지만, 절제를 잃은 순간 술과 벌레들에 둘러 쌓인 이적요의 육체만큼이나 썩어간다. 늙음과 젊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지만, 정작 스스로의 욕망을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성과 감정,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적요는 결국 무너진다. 욕망이 마음과 생각 속에서 존재할 때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은밀하고 극적이기에 더 쾌감을 느낀다. 이적요와 서지우, 은교의 욕망은 은교의 치마 길이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질투, 그리고 근원적인 외로움이 끈적하게 얽히고설키다 결국 하나 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파국으로 이르는 추악한 비극은 그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끝은 참 외로웠다. *** 제목: 은교(2012) 연출: 정지우 각본: 정지우 / 원작: 박범신 출연: 박해일(이적요), 김무열(서지우), 김고은(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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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기록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 침묵 속에 갇힌 그녀의 외로움에 대해  flyingneko.egloos.com/3843468  매사가 불만인 그녀의 곁에서 말 한 마디 마음을 편하게 하지 못하는 남자. 믹서기나 청소기가 돌지 않으면 그녀의 불평 불만이 빼곡히 시공간을 메운다. 그런 그녀에 그는 귀를 막고 마음을 닫는다. 짜증이 섞이고 한숨만 늘어간다.모든 것이 아름답던 연애 시절과는 참 다른, 불편한 일상이 되어버린 그들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한 일상이 어느 샌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투덜거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걸 그가 짜증스럽게 들어주는 척하며 참는 것도 당연하게 된다. 그녀가 왜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고 투덜거리는지, ‘왜’라는 질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건들에 당연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며 그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하긴, 하루하루의 전쟁처럼 치르고 나면 호기심마저 사치가 되어버린다. 당연하게,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이 가장 속편하고 힘이 덜 든다. 그런 모습에 비교해보면, 그녀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불만스럽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토를 단다. 그런 그녀는 말이 많고 불평이 가득한 게 당연하다. 그래서 그녀는 외롭다. 외로움에 더 많은 말을 내뱉고, 그런 그녀에게서 모두들 거리를 둔다. 말을 할수록 그녀는 더욱 외롭고, 그녀의 주변은 점점 더 지쳐간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웃으면 웃었지 눈물이 날 줄은 몰랐다. 카사노바 류승룡과 임수정의 청산유수와 같은 언변을 듣고 있자면 대사를 외우는 것은 고사하고 숨은 언제 쉬나, 그런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다가 이내 킥킥대며 웃기 일쑤였다. 특히 류승룡. 고뇌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풀나풀 걸어가는 모습하며, 간지럽다 못해 느끼한 대사들을 태연하게 내뱉던 그가 돌연 ‘물이 무서워요’라며 바르르 떠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가 없었다면 진지함과 웃음 사이에서 영화가 뒤뚱거렸을 것 같다는 걱정마저 스치고 지나간다. 웃다가 문득, 그녀의 외로움이 짠하게 다가온다. <화양연화>의 대사를 읊으며 연기인지 사랑인지 모를 그의 태도에 그녀가 흔들린다. 반복되던 일상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는 그녀에게 찾아온 그 순간은 말 그대로 다시 찾아온 ‘화양연화’ 일지도 모른다. 설레면서도 잡을 수 없어 안타까운 그 마음이 흔들리는 눈빛 만큼이나 위태롭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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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2007)

행복 (2007) – 미련한 두 사랑의 계절  http://flyingneko.egloos.com/3820878 끝까지 용서하지 않기를 바랬다. 자신을 버리면서도 그 말조차 할 수 없다며 ‘나한테 헤어지자고 해주면 안 되겠냐’는 그 남자가 어찌되었든 독기를 품고 용서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도 또 바보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눈물을 흘린다. 저런 게 사랑이라면 난 하지 않으련다. 보는 내내 괴롭고 아팠다.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와 자신보다 더 아껴주는 법을 아는 여자가 사랑에 빠졌다. 시한부 인생의 여자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음미하며 소중히 하는 반면, 남자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도 이내 싫증을 느끼고 유혹에 넘어가 행복도 자신도 망가뜨린다. 감정의 변화는 계절의 흐름과 절묘하게 비슷한 모습을 띈다. 사랑이 찾아오고 뜨겁게 서로를 찾고 시리게 헤어진다.  숨이 차면 죽을 수도 있다는 그녀가 낙엽 사이로 뛰고 또 뛰는 장면만큼, 그리고 가슴을 뜯으며 목놓아 우는 장면만큼 그녀의 슬픔을 더 슬프고 처절하게 슬프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느낀다는 미련함은 싫지만, 알면서도 미련해지는 것이 사람이라.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지만, 늘 먼 곳을 보게 된다. 행복이야말로 주관적인 가치 판단 기준이니, 어쩌면 그녀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순간도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고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아파했던 그녀가 마지막 순간 망가진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그녀의 행복이 어렴풋이 느껴져서인지, 하얀 눈으로 뒤덮인 요양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밉지만, 더욱 슬퍼 보였다. 미련한 두 사랑의 이야기에 괜히 가슴이 시리다. *** 제목: 행복(Happiness, 2007) 연출: 허진호 각본: 허진호, 이숙연 등 출연: 황정민(영수), 임수정(은희),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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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2012)

뭔가 아쉬웠던 <화차(2012)> http://flyingneko.egloos.com/3817326 이 영화, 스릴러가 아니라 미스터리다. 그렇게 알고 봤다면 김빠진 미지근한 콜라를 마시고 나온 기분은 아니었을까. 결혼식을 앞두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약혼녀. 그 흔적을 따라 추적해갈 수록, 그녀의 이름도, 그녀가 이야기한 어떠한 과거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그랬을까’라는 두 가지 질문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쫓으면서도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다면 더더욱 배우들의 연기나 감정이 몰입도를 좌우하게 되는데, 그 감정들의 극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끔찍이 사랑했던 약혼녀가 사라졌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베일에 싸인 그녀를 알게 될수록 배신감을 느꼈을 텐데 남자는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화내고 운다. 행복을 위해, 살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여자에게는 삶에 처절하게 매달리는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용암처럼 끓어야 할 포인트를 놓치고 미온수가 흐른다.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다는 이야기에 내심 기대를 해서인지, 스릴러의 긴박감을 기대해서인지 뭔가 아쉽다.스토리나 연기, 소재들을 하나하나 놓고 본다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데, 늘어놓고 보니 별로다. 피 칠갑을 하고 시종일관 쫓고 쫓기는 것을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찾은 극장에서 모두의 취향에 크게 어긋나지 않은 무난한 영화였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장면들보다 정말 오랜만에 (얻어) 먹은 극장 팝콘의 맛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 제목: 화차(2012) 연출: 변영주 / 조감독: 권오윤 각본: 변영주 / 원작: 미야베 미유키 출연: 이선균(문호), 김민희(선영), 조성하(종근) 장르: 미스터리 제작국가: 한국 촬영: 김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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