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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찬호께이)

영국은 1841년 제1차 아편전쟁으로 홍콩섬을 점령하고, 1898년 제2차 아편전쟁 후 청나라로부터 카오룽(구룡) 반도의 신계까지 확대된 홍콩을 99년간 조차한다. 당시 영국은 99년의 조차를 사실상 영구 강점으로 봤다고 하지만,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면서 계획은 틀어진다. 세계 대전과 중국 내륙의 국공내전으로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홍콩은, 중국 내륙의 공산화와 함께 조차 기간 만료가 다가오면서 협상의 도마 위에 오른다.

중국공산당은 애초에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체결한 조약들을 무효로 보고 있었으므로, 조차 연장과 같은 영국의 협상 시도는 무산되었다. 1984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자오쯔양 중국 국무원 총리는 영국·중국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을 발표하게 되고, 이에 따라 1997년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 영국령 홍콩(英屬香港, British Hong Kong)은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됐다. 국가라는 단위로 보면 중국에 속하지만, 홍콩반환협정으로 합의된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에 따르면 2047년까지 홍콩은 국방권을 제외하고는 고도의 자치권, 외교권, 언론 및 집회의 자유를 가지며, 중국 중앙정부의 개입은 제한된다.

1513년 포르투갈인 호르헤 알바레스의 홍콩 상륙 이래로 유럽과의 교류가 이어져 온 홍콩은 19세기 영국의 주요 무역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중국으로 진입하거나 중국에서 세계에 진출하는 관문의 역할을 해왔다. 영국의 사회, 정치,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고 영국 문화가 홍콩 곳곳에 자리 잡은 홍콩은 중국과 영국의 문물이 혼재하는 장소이자, 반환 후에도 중국 본토에서는 누릴 수 없는 다양한 권리가 보장되는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영국 점령하의 홍콩은 외부적으로는 경제적 번영을 이뤘지만, 내부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차별과 부패가 만연했다. 중국 본토의 공산화에 반대하며 이주해 온 중국계 홍콩인들은 주로 구룡반도에, 영국인들은 홍콩섬에 거주했는데, 페리 외에는 두 지역이 왕래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던데다 두 지역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홍콩섬에서는 영국인을 위주로 호화로운 파티며 사치품이 유통되었다면, 중국 본토와 베트남 등에서 유입된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구룡반도의 삶은 가난하고 가혹했다. 중국인 부호들은 본토에서 온 같은 중국인을 하인으로 부리며 차별하기도 했다.

1967년 4월, 부동산 재벌 리카싱이 운영하던 구룡반도의 조화(가짜꽃) 공장에서 시작된 노동쟁의는 홍콩을 뒤흔드는 도화선이 된다. 고용주의 가혹한 처우에 대항하며 이어진 파업에 경찰이 투입되어 강경 진압을 하게 되면서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폭동’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홍콩 좌파 노동자들과 중국 본토의 민병대, 영국군과 홍콩 정부, 친중화민국, 중국국민당이 대립하며 정치 투쟁으로 심화한다. 좌파 노동자들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진압에 가짜와 진짜를 섞은 폭탄 공격으로 대응하기도 했고, 여기에 무고한 시민들이 휘말려 사망하기도 했다. 이른바 6·7 폭동으로 불리는 이 시기를 계기로, 독자적인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를 통한 관공서의 부패 척결, 도시 인프라 구축, 사회 전반의 의식 개선 노력을 통해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의 선진 도시로 자리 잡게 된다.

1967-08_1967年 香港电车工人罢工
1967년 8월 홍콩 전차 노동자 파업 (
1957년 8월. 홍콩 전차 노동자 파업 (출처: Wikimedia Commons)

소설의 제목『13·67』은 홍콩을 배경으로 1967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다는 데서 왔다. 소설은 시간상 역순으로, 단편 소설처럼 여섯 개의 사건을 담은 각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끝까지 읽고 나면 홍콩의 역사와 연결된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된다. 이 중 1960년대의 폭동을 다룬 가장 마지막 장은 그간의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낸다.

소설의 주인공 관전둬와 뤄샤오밍은 홍콩 경찰이다. 관전둬는 1960년 경찰시험에 합격해 격동하는 홍콩의 역사와 함께하며 숱한 공을 세운 인물이고, 관전둬보다 22살 어린 뤄샤오밍은 관전둬가 아들처럼 여긴 제자이자 소설 첫 장의 배경인 2013년, 28년째 경찰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베테랑이기도 하다.

작가 찬호께이는 미시적으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재미를 주는 ‘본격 추리 소설’이면서, 거시적으로는 사회현상을 반영한 인간 본성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고자 했다고 밝혔다. 경찰이라는 설정은 단서 수집과 사건 수사를 이끌어가는 추리 소설의 직업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와 충돌하는 개인의 내면을 홍콩 현대사라는 독특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풀어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추측된다.

1967년 폭동에서 홍콩 경찰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다수의 시민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했다. 1974년 홍콩 총독 산하의 독자적인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가 설립되고 1980년까지 각종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기 전까지 홍콩 전반에 걸쳐 웃돈과 뒷돈을 주지 않으면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고, 불이 나도 끌 수 없었다. 일상적으로 노점상에게 ‘찻값’을 받은 경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홍콩이 겪고 있는 시민과 정부의 대립에는 경찰이 개입되어 왔다.

경찰은 공공 안전과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조직으로, 대부분 국가의 행정기관으로 예속되어 있다. 상명하복의 질서가 엄격한 조직 문화로 한 개인이 조직 전체와 다른 뜻을 품었다고 해서 이를 관철하기는 무척 어렵고, 조직으로서의 경찰 역시 상위 권력인 국가의 뜻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전둬와 뤄샤오밍이 각자 선 자리에서 마주한 당대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주어진 환경과 따를 수밖에 없는 권력에 대한 개인의 무력함과 그럼에도 그저 굴복하지 않고 우회로를 찾아가며 사람으로서, 경찰로서 지켜야 할 가치를 상기한다.

비극적인 역사는 빈번하게 반복된다. 소설의 배경이 된 2013년의 다음 해에 ‘우산 혁명’으로도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경찰은 다시금 시민을 향해 최루탄과 최루액, 살수차를 동원한 진압을 펼쳤다.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에 반대하며 1997년 홍콩 반환 이해 최대 규모였다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경찰은 시민을 대상으로 강경 진압에 나섰다.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로 공권력을 통한 탄압의 강도는 한층 높아졌다.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체포에 불응하며, 소란에 참여하고, 불법집회를 하는 의심스러운 인물’을 체포할 권한을 가졌던 1967년 5월 폭동 이후의 경찰처럼, 이제 홍콩 경찰은 체제에 반하거나 반할 여지가 있는 사람에 탄압을 가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부정부패와 뇌물수수를 일소한 이래로 공명정대하고 믿음과 성실을 상징했던 홍콩 경찰은, 언젠가부터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정권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소설이 담은 타국의 역사 속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까지 우리가 지나온 저항과 억압의 역사가, 부당한 억압의 선두에 섰던 경찰과 군인과 그들의 군홧발과 총알에 피 흘렸던 사람들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눠야 했던 개인들의 절망이 떠올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그랬듯, 홍콩의 경찰들처럼 우리에게도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고,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과,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 “시신들 앞에서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병사”가 있었다.

소설을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 시간이 있었다. 개인적인 고민과는 무관하게, 작가들은 지나온 어려운 역사를 마주하고 그 안에서 보편적인 세계와 사람의 모습을 빚고 풀어내 왔다. 한강의 소설이 담담한 문체로 우리의 지나온 비극이 남긴 상처를 내면 깊숙이 파고든다면, 찬호께이의 소설은 미스터리 추리라는 장르적 재미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독자를 홍콩의 현대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끈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치밀한 설계에 허를 찔리면서도, 책장을 덮고 난 후 홍콩의 그 시절과 지금에, 전에 없던 관심이 마음에 남는다.

홍콩에서 나고 자란 찬호께이라는 작가는, 아마도 계속해서 홍콩을 배경으로, 홍콩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 같다. 발붙인 땅에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 깊이 담아 치열하게 글로 풀어내는 그와 같은 작가들에 나는 매번 빚지는 기분이 든다.


『13.67』
지은이: 찬호께이/ 옮긴이: 강초아
발행: 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13일 (개정판) / (초판) 2015년 6월 19일

책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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