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 (Looper, 2012)
루퍼 (Looper, 2012)
– 암울한 미래의 절망적인 순환에 대한 공상
사회의 일면에서는 부가 쌓여가고 최고급 승용차와 오토바이에 약과 술이 오가는 파티가 벌어지고, 같은 시각 거리에서는 부랑자들이 길을 가다 총을 맞고 죽어간다. 범죄 조직이 모든 것을 장악한 2044년의 텍사스에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
이 곳에는 ‘루퍼’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지만 불법인 30년 후로부터 보내진 사람을 죽이고 그 대가로 은괴를 받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도시에서 명분 없는 살인 청부는 계속되고 그들의 금고에는 은괴가 쌓인다. 그러다 자신이 쏴 죽인 이의 가슴에서 금괴가 발견되면 계약이 종료된다. 그가 죽인 이가 곧 미래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남은 30년을 즐기다 자신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순환의 고리를 도는 ‘루퍼(looper)’의 운명이다.
2044년에도, 2074년에도 기술은 지금보다 발전했을지언정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 여행은 범죄의 근원이자 암울한 사회를 굴리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전락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극에 달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민다. 설령 그가 미래에서 온 자신일지라도 예외는 없다. 2044년의 ‘조’에게 2074년의 ‘조’는 남은 자신의 인생을 방해하는 존재이고, 2074년 ‘조’에 비친 2044년의 ‘조’는 이기적이고 바보 같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과거일 뿐이다. 내일이 없는 이들의 이기심은 미래의 자신에게 너는 누릴 만큼 누렸으니 죽으라는, 극단적인 아이러니를 만들기에 이른다.
우연히도 미래 세계의 대량 학살자인 ‘레인메이커’를 향한 미래의 ‘조’의 개인적인 목표와 대의적 명분이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래의 ‘조’는 아주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유에서 행동한다. 대량 학살자로 클 수 있는 아이들을 제거해나가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발생할 미래의 변화와 그에 대한 책임이 아닌, 자신의 아내와 행복하게 여생을 함께 보내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과 범죄 조직을 전멸시키는 그의 살인 행위는, 대의적인 명분으로도 정당화 되지 않을 뿐더러 결국 머지 않아 또 다른 피바람을 부를 것이라는 악순환의 예고편 같다.
서로를 쫓고 쫓다 마지막 순간, 아내를 위해 살인을 하는 미래의 자신과 아이를 위해 죽는 엄마를 지켜보며 현재의 ‘조’는 현재와 미래가 그리는 순환의 궤도를 보게 된다. 모든 것을 제자리도 돌리려고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다.
사람은 절망적일수록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더욱 처절하게 매달리기 마련이다. 인과의 끈으로 묶여 있는 과거와 미래의 자신이 마주하는 상황에서조차 지금의 자신이 아닌 모든 존재를 타인으로, 자신의 것을 빼앗아갈 수 있는 적으로 인지해버리는 그들의 절망감이 영화 내내 흐르는 음울한 기운만큼이나 숨이 막힌다. 개개인만이 남은 절망적인 사회에서 이기를 넘어 이타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희생은, 희망이었을까 또 다른 절망이었을까. 바로잡을 수 없는 순환 고리에 대한 포기가 아닌, 희망에서 우러나온 희생이었기를, 그로 인해 절망이 아닌 희망이 또 다른 순환의 궤도를 그려가길 바라게 된다. 기대보다 무거운 영화의 공상에 현실을 투영하며 극장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상반된 가치와 존재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여운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 하다.
***
제목: 루퍼(Looper, 2012)
연출/각본: 라이언 존슨(Rian Johnson)
출연: 조셉 고든-레빗(Joseph Gordon-Levitt, 현재의 조),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 미래의 조), 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 사라), 제프 다니엘스(Jeff Daniels, 아베), 파이퍼 페라보(Piper Perabo, 수지)
장르: 액션, SF, 스릴러
제작국가: 미국
촬영: 스티븐 예들린(Steve Yedlin)
음악: Nathan Johnson
편집: 밥 덕세이(Bob Ducsay)
***
+ 배우들의 연기는, 첨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화려한 시각 효과를 동원하기보다는 클로즈업과 교차 편집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높였다. 시원한 SF 액션보다는 인간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드라마에 가깝다. 기대보다, 예상보다 무겁다. 책으로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역시.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의 필모가 궁금해 찾아보니 <브릭(Brick)>의 그 분이구나.
<라이프로그/짧은 감상>
루퍼
조셉 고든 레빗,브루스 윌리스,에밀리 브런트 / 라이언 존슨
나의 점수 :
★★★★☆
캐스팅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던 이 영화는, SF 액션이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드라마에 가깝다. 미래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마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이기심이 극에 달한 절망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그의 선택은 희망이었기를. 영화의 긴 여운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 하다.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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