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 아쉽지만 누구를 탓하리
화제 혹은 문제의 영화, <퍼시픽 림>. 이 영화로 난 열광했고, 또 기겁했다. (멜로물을 제외한) 어지간해선 장르도, 영화도 가리지 않고, 그 중 로봇물과 액션, SF라면 환장(!)하지만,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 3>, <레지던트 이블 5>에 이어 또 다른 충격과 경악, 공포의 시간을 선사했다.
<퍼시픽 림>은 <판의 미로(2006)>, <미믹(1997)>,<헬보이(2004)> 등을 연출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이다. <판의 미로>와<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이후로 이렇다 할 연출작은 없었지만, 그는 그간 다양한 영화에 제작, 각본, 기획 등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평소 로봇과 재패니메이션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그의 필모를 고려하면 의외의 선택이었다.(연결고리라면, <헬보이>의 론 펄먼이 한니발 차우로 등장한다는 것 정도?)
<퍼시픽 림>은 태평양 해저에 생긴 통로를 통해 지구를 습격하는 외계 괴수 ‘카이주’들에 맞선 인간 진영의 거대 로봇 ‘예거’ 간의 지구를 건 전쟁을 그린 영화다. 거대 로봇의 머리 부분에 탑재한 두 조종사의 정신이 연결되어 조종한다는 설정이나 이들간의 교감 정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예거 마크 시리즈 등에서 에반게리온이나 건담과 같은 재패니메이션에 대한 애정과오마주가 엿보인다. 예거들이 총 출동한 홍콩 앞바다 대전이나 도심을 종횡무진하며 벌이는 전투는 <에반게리온: 파>의 합동전투나 <트랜스포머>가 연상되기도 한다.
정교하고 박진감 넘치는 CG가 만들어낸 웅장한 액션에 대한 감탄은, 아주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애초에 액션으로 승부하겠다는 영화를 두고 치밀한 서사나 드라마를 원한 것은 아니었고 캐릭터 간 역학 관계나 설정을 깊게 파고들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IMAX관을 압도하는 규모와 화려함에 넋을 잃은 것도 잠시, 배우들이 대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집중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얼핏 봐서는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형젠지, 부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외모는 차치하더라도,여배우를 중심으로 한 시퀀스들에서는 정말이지 헛웃음이 나왔다. 막대기 몇 번 휘두르며 천생연분 급 파트너가 되고, 트라우마의 끝에는 아빠 같은 그 분이 있다든가, 전인류의 생존을 건 전투를 앞두고 ‘가족을 위해’라고 외칠 땐 평정심이 무너졌다. 연기나 스토리는 기본 중 기본이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도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기본만 해도 절반 이상’이라는 말을 통감하게 된다.
로봇과 괴수가 싸우는 액션을 꿈꿔왔다면 열광할만하다만, 로봇에 열광하는 나조차도 (예거 시리즈들은 좋았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니 잘 만든 블록버스터 한 편 보려고 했다면 실망이 클 법도 하다. 합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기본기에 구멍이 난 이 영화가 혹평을 받는다 한들 누구를 탓하리. 그저 로봇물과 에반게리온의 팬으로서 설렜던 초반부가 점차 수렁 속에 빠져들어 끝까지 허우적거릴 때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길예르도 델 토로 감독의 무언가를 기대했다면 그러지 말길. 그리고 이 영화를 본다면 꼭 영화관에서 보기를 권한다. 박진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관이 아니라면, 정말 화가 날지도 모른다.
***
제목: 퍼시픽 림(Pacific Rim, 2013)
연출: 길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각본: 트래비스 베컴(Travis Beacham)
출연: 찰리 헌냄(Charlie Hunnam, 롤리 베켓), 론 펄먼(Ron Perlman, 한니발 차우), 이드리스 엘바(Idris Elba, 스탁커 펜테코스트), 찰리 데이(Charlie Day, 뉴튼 가이즐러 박사), 키쿠치 린코(Rinko Kikuchi, 마코 모리), 맥스 마티니(Max Martini, 허크한센)
장르: 액션, SF, 모험
제작국가: 미국
촬영: 길러모 네바로(Guillermo Navarro)
***
+ 재패니메이션의 영향인지, ‘동양 여성은 (칼)단발머리’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건 아닐까. 마코 역을 맡은 키쿠치 린코의 어색하고 또 어색한 연기가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영어권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배우가 겪는 어려움이 느껴지기도 했다.발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선처리와 발성의 문제가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 아역배우 아시다 미나의 연기는 정말 인상 깊었다. 2004년 생이지만 필모를 보니 범상치 않아 보인다. (이 영화와는 관계 없는 사진이지만..)
+ 에바 같은 포스터.
<라이프로그>
나의 점수 : ★★★
에바와 건담으로 시작한 영화가 어째서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기만 하는가. 웅장한 액션에 대한 감탄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싸늘하게 식는다. 영화관을 나설 때 허탈함과 안타까움에 입맛만 다셨다.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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