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트럼보 (Trumbo, 2015)

트럼보 (Trumbo, 2015)
– 시대가 만들어낸 범죄에 맞선 고집스러운 투쟁

민주주의의 반대말로 흔히 오해하는 공산주의의 본뜻은 구성원이 재산을 공동소유하는 사회제도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이 대치하자 그 의미는 변형된다. 냉전은 적대국의 공작으로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를 확산했고, ‘공산주의’는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무언가를 통칭하며 두려움과 척결의 대상이 되었다. ‘공산주의’ 혹은 ‘공산당’은 금기이자 공포였고, 비이성적인 분노와 광기가 한 지점을 향했다.

두려움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매카시즘’으로 불리는 극단적 반공주의가 그것이다. 국무성이 공산주의 첩자로 가득 차 있다는 상원위원 조셉 매카시의 연설은 미국을 적색공포로 몰아넣었다. 사회 각계 인사가 적색분자로 매도되었다. 할리우드에 불어닥친 매카시즘은 무고한 영화 배우, 감독, 각본가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로마의 휴일>, <브레이브 원>, <스파르타쿠스>, <빠삐용>의 각본을 쓴 달튼 트럼보도 그 중 하나다.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되었지만 진술을 거부해 의회모독죄로 기소된 ‘할리우드 텐’의 일원이 된다.

트럼보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대가로 일자리를 빼앗긴다. 자신을 드러내고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그는 자신의 이름을 포기한다. 타인의 이름을 빌리고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다. 가족과 신념이라는, 지켜야 할 것이 분명했던 그는 비난과 의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고 숨긴다. 각성제로 잠을 쫓고 욕조에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팔리는 글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버텨낸 트럼보는 결국 이름을 되찾는다. 세상에 다시 등장한 그의 이름은 마녀사냥과 여론몰이에 가렸던 눈과 귀를 조금씩 일깨운다. 마침내 대중 앞에 선 그는 근거 없는 의심과 실체 없는 공포에 희생되어야 했던 모든 사람들 -가족, 친구, 심지어 자신을 몰아세운 이들-에 연민을 표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시대가 만들어낸 범죄 앞에 굴하지 않은 모두는 그렇게 조용한 승리를 이뤄낸다.

트럼보의 시대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크고 작은 부조리가 넘친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사건 사고 앞에 개인의 무력감은 더욱 커진다. 중요한 것은 ‘버티기’다. 지금을 장악한 거대한 불의가 실체를 드러낼 때까지, 진실이 증명되고 신념이 실현되는 순간까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믿음과 의지로 승리의 경험을 쌓으며 성실하게 버티는 것. 현실을 놓지 않은 고집스러운 트럼보의 투쟁이 거둔 숭고한 승리이자 우리에게 남긴 값진 희망이다.

***

  • 제목: 트럼보 (Trumbo, 2015)
  • 연출: 제이 로치 (Jay Roach)
  • 각본: 존 맥나마라 (John McNamara)
  • 원작: 브루스 쿡 (Bruce Cook)
  • 출연: 브라이언 크랜스톤 (Bryan Cranston, 달튼 트럼보), 다이안 레인 (Diane Lane, 클레오 트럼보), 헬렌 미렌 (Helen Mirren, 헤다 호퍼), 루이스 C.K. (Louis C.K., 아렌 하이드), 엘르 패닝 (Elle Fanning, 니콜라 트럼보), 존 굿맨 (John Goodman, 프랭크 킹)
  • 장르: 드라마
  • 제작국가: 미국
  • 촬영: 짐 드놀트 (Jim Den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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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을 못 싸온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할래? 가서 일하라고 할래? 금리를 붙여 돈을 빌려줄까?” – 영화 <트럼보>는 트럼보와 어린 딸의 대화로 트럼보가 믿는 공산주의, 즉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믿음을 쉽게 설명하고 예민한 정치적 쟁점을 피해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다.


+ 트럼보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아마도 사람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과 애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재능은 성실함과 책임감이지 싶다. 재능은 성실함에 기반해 빛을 발한다.

+ 트럼보의 승리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현명한 아내를 중심으로 온 가족, 애런 하이드나 커크 더글라스와 같은 친구와 지인을 비롯해,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었다 해도)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프랭크 킹까지. 주변에 자신의 신념을 응원하고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행운 중 행운이다.

+ 자신을 지킨다는 것.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무엇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할지 조차 모르고 표류하는 우리에게 이 고집스러운 노인의 눈물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별점을 주자면: 8/10 (스토리:8, 비주얼:7, 연출:8, 연기:10)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있습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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