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후 (45 Years, 2015)
45년 후 (45 Years, 2015)
– 무심함이 부른 조용한 파국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를 보내는 노부부에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남편이 서툰 독일어로 50년 전 사고사한 여인의 사체가 스위스 산기슭에서 언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읽어 내려간다. 아내는 짐작할 수 없는 옛 인연을 떠올리는 남편이 탐탁치 않다.
편지 이후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돈다. 오랜만에 찾아온 서로를 향한 감정이라 생각하지만 이내 착각임을 깨닫는다. 옛 연정을 향한 남편의 감정을 알아챈 아내의 마음에 의문이 들어선다.
세월의 흐름에 몸과 마음의 격정이 잦아들었다. 타오르던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다. 뜨겁고 애절했던, 사무치고 그리운 감정은 마음 속에 가지런히 자리잡았다. 시간 속에 바래고 닳은 사랑도, 그 안에 있다.
예기치 못한 순간, 한마디의 말로 고요를 찾은 호수에 격정이 인다. 옛 향수에 젖어 내뱉은,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결혼했을 거란 남편의 말은 아내의 마음에 의심이라는 독을 퍼트린다. 오랜 시간이 쌓은 신뢰가 무너지고, 허무와 비탄이 몰려온다. 결국 아내의 마음은 45번째 맞은 결혼기념일, 결혼식 피로연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춤추던 노래에 맞춰 조용히, 산산조각난다.
영화 <45년 후>는 무심하고도 평범한 오해가 가져온 조용하지만 여운이 긴 비극을 그린다. 45년을 함께한 노부부의 관계는 첫사랑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고 그리워한 남편의 무심한 실수로 일주일만에 파국을 맞는다. 관록 있는 두 배우의 열연 덕에 평온한 얼굴 위로 흔들리는 눈동자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린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 있든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다는 걸 자주 잊고 산다. 지나온 시간만큼 믿음 또한 깊으리라 기대하며, 가깝고 소중한 존재일수록 소중히 하는 법을 잊고 산다.
‘내가 알고 지은 죄, 백 가지. 내가 모르고 지은 죄, 천 가지 만 가지’랬다. 오늘은 나의 무심한 말로, 상대의 무심한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서로의 마음에 남기고 있을까. 그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또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만다. 영화처럼 세월과 정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상대의 이해를 강요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라도 어려운 사람이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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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45년 후(45 Years, 2015)
- 연출: 앤드류 헤이 (Andrew Haigh)
- 각본: 앤드류 헤이 (Andrew Haigh), 데이비드 콘스탄틴 (David Constantine)
- 출연: 샬롯 램플링 (Charlotte Rampling, 케이트 머서), 톰 커트니 (Tom Courtenay, 제프 머서)
-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 제작국가: 영국
- 촬영: 롤 크롤리 (Lol Craw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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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렴풋이 영화 <아무르>가 생각난다.
+ 우리말 제목 ’45년 후’은 어느 지점으로부터 이후를 가리키는 듯 하지만, 영화는 45년이라는 숫자가 가진 무게감만큼 사람, 부부간의 관계가 그리 견고하지 않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원제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 ‘내가 알고 지은 죄, 백 가지. 내가 모르고 지은 죄, 천 가지 만 가지’는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최근 에피소드 제목에서 가져왔다. 영화 <45년 후>가 한 노부부의 조용한 비극을 지그시 바라본 반면, <디어 마이 프렌즈>는 비슷한 나이대의 ‘황혼 청춘’의 이야기를 시끌벅적하고 유쾌하게 담았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으며 굳게 앙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섬세한 표현이 영화 <45년 후>의 묘미라면, 집을 박차고 나가 대자로 뻗어 드르렁 코를 골며 ‘나는 모른다. 알아서 살라’며 일격을 가하는 유쾌함이 드라마의 재미 요소. 두 작품 모두 간과하기 쉬운,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도 상처 받고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섬세하게 보여준다.
**별점을 주자면: 7.5/10 (스토리:7, 비주얼:7, 연출:8, 연기:10)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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