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2012,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2012, 김연수) >
– 달리기, 지금, 순간 그리고 경험.
호흡이 짧은 글은 여전히 낯설다. 산문집이라 소제목 아래 글이 두어 장에서 그친다. 초반부에는 짧은 글에 담겨 있는 생각을 읽어내느라 가쁜 숨을 들이쉬는 것 같았다. 아마도 처음 접하는 김연수 작가의 글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쁜 숨이 안정될 때 즈음, 책 <지지 않는다는 말>을 관통하고 있는 단어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달리기. 지금. 순간. 경험. (+ 40대)
<지지 않는다는 말>의 부제를 ‘달리기 예찬‘으로 붙여도 무방할 만큼, 그의 생각과 글에 달리기가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달리기는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은유가 아닌 진짜 두 발로 달리는 것이다. 달리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고, 고통과 마주하며, 순간을 경험한다. 일주일에 얼마 간을 뛰겠다는 목표로 무리하게 달리다 생긴 족저근막염으로 내가하지 못한 일이 아닌 해낸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든가, 겨울의 눈을 보며 달리기를 못할 걱정에 빠졌다가 있지도 않은 스트레스를 미리 만드는 어른들의 습관을 슬며시 꼬집는다.
4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달리고 있는 그는 죽음과 한계, 끝을 통해 지금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욱 아름답고, 어떻게 하면 지금을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에 순간이 소중하다. 어떤 것에든 한계와 끝이 있다는 것으로 그 안의 것들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이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이야 낯설지 않지만, 주머니 속 3만원이라는 상한이 정해져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책이 진정으로 읽고 싶은 책인가‘, ‘이 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된다는 말에 무릎 탁. 체중과 체력 관리를 하며 먹는 것에 제한을 두게 된 후로 되려 먹는 것이 즐거워진 요즘이 바로 그렇다. 하루 삼시 세끼, 그마저도 아침을 거르면 두 끼를 먹는다고 생각하니 매 끼 대충 먹기가 아까워졌다. 무엇을 먹는 게 스스로의 건강과 행복에 최선일지 생각하니 먹는 순간이 즐겁고 뿌듯해진다고 해야 하나. 배를 채우기 위해 의무감에 먹는 행위는, 먹는 행위가 당연하고 영속적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일의 식단이 제한되어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고, 다소 극적이긴 하지만, 이 당연한 행위가 불의의 사고나 건강 악화로 당연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에감사하게 된다. 그렇게 먹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지금을 어떻게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같은 맥락이지 싶다.
이 책을 비롯하여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나 <버티는 삶에 관하여> 등 최근에 읽은 책들에 공감하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나 역시 순간과 경험, 지금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경험이 재산이라는 신념과 더불어, 나이에 비해 일찍 경험한 가까운 죽음의 영향도 크다. 미래의 불투명한 행복을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지 말자는 생각에 모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지 어느 하나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의지가 부재한 다름은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정해진 길에서 목표 지점을 보며 더 빨리, 잘 가려고 하는 것도, 길을 걷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며 걷다 뛰다 다른 길로 빠져보기도 하는 것도 각자의 선택이다.
지금을 감사하며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여느 책과 다르게, 책장을 덮고 나니 묘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재촉하지 않고 되려 ‘속도를 늦추라‘며 마음을 달래는 문장 덕분일까. 달리고 싶다. 몇 분도 안되어 느끼겠지만 숨통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달려보고 싶다. 그리고 숫자로 채워지는 나이가 아닌, 호기심과 경험으로 남은 순간들을 채워가길. 지금 ‘뛰지 않는 가슴들, 모두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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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지 않는다는 말 (2012)
지은이: 김연수
출판: 마음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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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으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왠지 모르게.
++ 유행가의 교훈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텐데,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물론 더 좋은 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아무튼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좋아하자. 그게 바로 평생 최고의 노래만 듣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최고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리라. 물론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건 매 순간 바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산다면, 옛날에 좋아하던 유행가를 들을 때처럼 특정한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들을 많이 할 것이다. (p. 30-31)
++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때로 즐거운 마음으로 조간신문을 펼쳤다가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물론 마음이 약해졌을 때다. 하지만 그 약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된다. 마찬가지로 가장 건강한 몸은 금방 지치는 몸이다. 자신은 지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하지만 약한 것들은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리고, 쉽게 상처 받고, 금방 지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원래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났다. (p. 42)
++ 어쨌든 시간만 지나면 누구나 늘어나는 나이가 아니라 그가 한 행동들로 그 사람을 구별 짓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남들보다 몇 년 더 살았다는 게 대단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중략) 오래 산 사람과 그보다 덜 산 사람이 서로 뒤엉켜 살아가되 오래 산 사람은 덜 산 사람처럼 호기심이 많고, 덜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처럼 사려 깊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p. 127-128)
++ 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리는 눈이 아니라 쌓인 눈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어른이 되는 듯하다. 내리는 눈이 아름다운 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쌓이고 났을 때, 일어나는 일도 잘 알고 있다. 눈이 내린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게 바로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다.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생각. 그래서 우리는 매달 보험료를 지불하고, 아이들을 더 많은 학원에 보내고, 여윳돈이 생기면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이다. 앞으로 찾아올 힘든 시절을 좀 덜 힘들게 살기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보험금으로 지불한다. 굴곡 있는 인생보다 평탄한 인생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p. 148)
달리기에서 스트레스란 실제적인 것이다. 숨이 차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든가, 무릎이 아파서 달릴 수 없다든가, 힘이 다 빠져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지고 싶을 때 스트레스가 생긴다. 그 스트레스는 당장 달리기를 멈추거나, 오랜 기간에 걸쳐서 연습을 하면 사라진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 달릴 일을 생각해서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게 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원래 없는 스트레스다. 그래서 그런 스트레스는 결코 없앨 수도 없다. 원래 없는 걸 어떻게 없애나?
생각만 고쳐먹으면 그런 스트레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p. 149-150)
행복과 기쁨은 이 순간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행복과 기쁨이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겨울에 눈이 내린다면, 그날은 행운의 날이다. 내일의 달리기 따위는 잊어버리고 떨어지는 눈이나 실컷 맞도록 하자. (p. 150-151)
++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중략)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p. 161-162)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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