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론 (쇼펜하우어)
<문장론 (쇼펜하우어)>
– 다독(多讀)의 독(毒)
“용수철에 무거운 짐을 계속 놓아두면 탄력을 잃듯이, 많은 독서는 정신의 탄력을 몽땅 앗아간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아무책이나 덥석 손에 쥐는 것은 자신의 사고를 갖지 못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학식을 쌓을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래의 자신보다 더욱 우둔하고 단조로워지며, 그들의 저작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것도 이러한 독서 습관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문장론>)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 아래 책장을 넘기는 것만한 호사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펼쳐든 책에서 쇼펜하우어는독서에 대한 독설을 늘어놓는다. 독서를 하지 말라니.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오해는 말자. 쇼펜하우어가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요지는 이렇다.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이것저것 짜깁기하는 식의 책읽기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너무 많은 책은 독자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사실 요즘 주변에 쇼펜하우어가 걱정할 만큼 많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독서실태조사(2013)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이 1년에 읽는 책은 10권이 되지 않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오늘 내 앞 지하철 의자에 앉은 7명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IT 강국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태블릿도 눈에 띈다. 흘깃 보니 현란한 동영상이다. 전세계 전자책 시장은 30%규모라고 하나, 국내 시장은 2-3%로 그친다고 한다. 콘텐츠 부족이라는 변명이 무색하게 독서 인구는 현저히 줄고 있다.
그럼에도 쇼펜하우어의 논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목적의식이 불분명한 다독은 독이 될 수 있다. 청소년이 읽어야할, 살면서 읽어야할 책 목록에 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적도 있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커녕, 들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밀어넣듯 읽은 탓에반감만 생겼다. 보여주기 식 독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책도, 저런 책도 읽었다며 여기저기서 한 소절씩 가져와 읊는 것은속빈 강정의 전형이다. 저명 인사들이 종종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독서가 삶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먼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베스트셀러, 고전, 실용서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의문제가 아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왜 읽는지, 무엇을 읽는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간과하기 쉬운 질문이나 책장을 덮었을 때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 문장과 생각을 음미하며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빠른 시간에 적절한 정보를 찾아야 하는 경우는 제외하자. 글쓴이의 생각을 나의 그 것과 비교, 공감, 반박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생각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쇼펜하우어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자신의 사고 체계, 가치관에 편입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타인의 글과 외부의 경험이 나의 일부가 되어 내 삶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글은 나의 독서 행태를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전의 독서량에 비해 1년에 10권을 읽지 않는 성인 대열에 들어가는 지금에 위기감을 느꼈다. 이것저것 펼치고 덮었다. 책장을 덮고 머릿속에 남은 것은 없는데,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라며 강박적으로 다음 책을 집어 들었다. 목적을 상실한 ‘활자 읽기‘였고, 소화되지 않은 생각과 정보로 머릿속에 체증이 생겼다.
쇼펜하우어라면 정보 과잉이 정점에 이른, 아니 그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지금을 두고 시대유감을 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정보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내면의 힘은 중요하다. 더디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하나 둘 쌓인 나만의 ‘진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익사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는 힘이 될 것이다.
오늘은 잠시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봐야겠다. 계절에 물들어가는 단풍에, 길 위를 분주하게 걷는 사람들에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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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2013)
지은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빌헬름니체
옮긴이: 홍성광
출판: 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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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론>의 서두를 보다 책을 잠깐 내려뒀다. 19세기 철학자의 글은, 단호한 어투조차,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 많다.
+ 다독다작이 필요하지만, 남의 생각을 베껴 적는 것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글로 옮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왕도는 없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 과정이 괴롭더라도 후자를 선택할 수 있길.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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