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겟 아웃 (Get Out, 2017)

겟 아웃 (Get Out, 2017)
– 만연한 ‘악마’을 향한 반기

밤길이 무서워졌다. 어둠은 어두운 욕망을 부추겨왔기에 새삼스러울 것 없다고 치부하기엔 위험이 커졌다. 1년 전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생면부지의 여성을 칼로 찔렀다. 원한이나 보복과 같은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라고 발표되었지만 여성에 대한 혐오, 증오에 기반한 범죄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피해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고 많아서, 인종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칼에 찔릴 수 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에 공포가 생긴다.

“내가 흑인이라는 거 혹시 부모님께 말씀 드렸어?”

주인공 크리스는 여자친구에게 묻는다. 아니, 주인공 ‘흑인’ 크리스는 ‘백인’ 여자친구에게 허락을 구한다. 날 때부터 선택권이 없었던 피부색, 성별로 규정된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괜찮은 지 연인의 허락을 구한다. 백인이 주인공이었다면 구태여 쓰지 않았을 수식어가 붙는다. 부당하다. 그러나 다치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스스로 조심할 수 밖에 없다. (*대비와 강조를 위해 이 글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닌 흑인이라고 표현했다)

다수의 백인과 함께 낯선 공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고조된다. 웃는 얼굴에도, 무표정에도, 환대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큰 눈을 굴리며 두리번거리는 크리스의 표정은 한시도 편안해지지 않는다. 경계 태세를 늦출 수 없다. 위험에 빠지는 건 일순간이다.

영화 <겟 아웃>은 단지 피부가 검기 때문에 생기는 일상적인 차별과 뿌리 깊은 폭력에 휘둘리는 흑인 크리스의 이야기다. 사회 구성원의 피부색이 다양한 미국에서 인종 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이다. 상상을 더한 영화 속 이야기가 날 선 공포로 다가오는 건 어딘가에서 있을 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조던 필레 감독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다. 크리스는 흑인이기 때문에 경찰의 강압적인 태도에도 크게 반항하지 못한다. 흑인을 향한 과잉진압이나 부당한 처우는 아직도 적지 않게 뉴스로 등장한다. 한 개인으로 기억되거나 존중되지 않고 ‘오바마’나 ‘타이거 우즈’와 같이 사회 명사에 그친 시선에도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여자친구 집, 찻잔과 티스푼, 솜, 사슴 등 골 깊은 인종 차별을 상징하는 은유를 더해 더욱 긴장감을 높인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미국 호러 스릴러 영화에 흑인이 주인공이었던 적은 고사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캐릭터도 몇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호러 영화는 인종 차별의 온상이었다. 살인마나 좀비에 맞서는 캐릭터는 대체로 백인이었고, 무리에서 백인을 제외한 인종은 처음 몇 번째로 죽거나 에피소드를 가질 만큼 비중이 크지 않았다. 비판적인 시선은 존재해왔지만 영화를 내세워 정면으로 편견에 맞선 건, 특히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에서는 낯선 경험이다.

“인종 차별은 악마입니다 (Racism itself is demon).” 조던 필레 감독은 말한다. 피부색 때문에 숨을 쉬는 한 느껴야 하는 공포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주머니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하는 두려움, 부당함에 맞서 싸울 때조차 과잉진압이나 비난을 견뎌내야 하는 차별을 겪는다. 태평양 건너 암담한 현실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눈앞에서도 차별과 편견, 그로 인한 증오가 자주, 잔인하게 표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별, 종교, 피부색, 나이, 성적 취향, 생김새, 신체 조건, 가정 환경, 가치관… 자신과 같지 않은 일면만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차별한다. 사회 곳곳에 분노가 쌓이고 편견과 차별로 인한 범죄가 증가한다. 인터넷을 떠돌며 서슴없이 내뱉는 차별적인 말과 글은 혐오를 부추기고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데 일조한다. 밤길 뿐만 아니라 눈길이 닿는 곳마다 위험이 도사린다. 단지 같지 않거나 다수가 아니라서, 힘이 약해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분노와 공포가 쌓인 사회는, 결국 모두에게 독이 된다.

개인이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게 하는 모든 차별과 편견은 악마다. 악마의 씨앗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쓰는 글 어딘가, 아주 사소한 곳에 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늘 의심하고 경계해야 할 수 밖에 없다. 매순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내가 타인에게 하고자 하는 말과 행동이 나를 향했을 때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차별과 편견, 분노는 덜해진다. <겟 아웃>의 크리스도, 조던 필레 감독도, 우리도, 당신도, 나를 규정하는 모든 조건을 초월해 존재 그 자체로, 생명으로, 개인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분명 있다.

***

  • 제목: 겟 아웃 (Get Out, 2017)
  • 연출/각본: 조던 필레 (Jordan Peele)
  • 출연: 다니엘 칼루야 (Daniel Kaluuya, 크리스 워싱턴), 앨리슨 윌리암스 (Allison Williams, 로즈 아미티지), 브래드리 휘트포트 (Bradley Whitford, 딘 아미티지), 캐서린 키너 (Catherine Keener, 미시 아미티지), 릴렐 호워리 (LilRel Howery, 로드 윌리엄스), 케일럽 랜드리 존스 (Caleb Landry Jones, 제레미 아미티지)
  • 제작국가: 미국
  • 촬영: 토비 올리버 (Toby Ol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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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숨이 여럿 나왔지만 그 중 최고는 친구가 크리스의 실종을 신고하러 갔을 때였다. 친구의 언행이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를 마주한 흑인 경찰들의 태도는 차별 당하는 이를 방관하는 낯설지 않은 모습 같았다.


+ <겟 아웃>의 은유와 상징: 여자친구 집은 70-80년대 교외 한적한 곳을 배경으로 하는 백인 위주의 호러 스릴러 물을 연상시킨다. 찻잔과 티스푼은 백인의 권위를 상징한다. 오프닝 시퀀스에 흘러나오는 노래 “Run Rabbit Run”과 “Sikiliza Kwa Wahenga”는 크리스에게 위험을 경고한다. 솜은 목화 재배와 노예제를 꼬집고, 흑인 남성을 비하하는 사슴(Black buck)은 위기의 암시이자 해결의 열쇠다. 최면으로 빠져드는 침전의 방은 흑인으로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표현했다.

+ 결말이 조금 아쉽다. (감독은 최근 여러 사건과 분위기를 반영해 크리스가 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별점을 주자면: 7.5/10 (스토리:7, 비주얼:7, 연출:8, 연기: 8)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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