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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기억, 그리고 코로나 시대와 이후의 영화제

영화, 영화제의 기억
– 그리고 코로나 시대와 이후의 영화제


온 식구가 함께 보는 거실 TV에 용돈을 모아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를 넣고 숨죽이며 본 때였을까,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엄마와 동생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던 <타이타닉>이었을까. 다른 많은 것의 이러저러한 첫 기억에 비해 영화와의 그것들은 묘연하다.


영화제의 처음은 부천이었다. 자원봉사였다. 자원봉사자를 위한 상영회에서 지금의 피터 잭슨으로는 떠올리기 힘든 <천상의 피조물>과 당대 일본 공포 영화의 주저와 머뭇거림을 기대했다 혼이 빠진 <디 아이>를, 친구를 데려와 장국영의 유작 <이도공간>을 본 기억이 난다. <헤드윅>이며 <도니 다코>가 그 해 상영되었다는 걸 한참 뒤에 알고 안타까워했지만, 그 당시에는 대형 상영관에 걸리는 영화만 놓치지 않고 보는 정도였지 크고 작은 상영관을 돌며 영화를 찾아보는 열정에는 미치지 못했다.


영화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은 숱한 우연과 필연이 타이밍의 교차로에서 만나 2010년부터 폭발적으로 발산되었다. 같은 영화는 2번 이상 보지 않는다는 나름의 불문율이 깨지고, 각종 영화제나 영화관을 다시 찾은 것도 그 즈음이다. 나의 열정만큼 영화제 자체도 전성기였던 것 같다.

 

전주국제영화제(JIFF) ‘불면의 밤’에서 대서사시 <발할라 라이징>을 보며 쏟아지는 졸음과 치열하게 싸우고 – 그땐 매즈 미켈슨이 누군지 몰랐다!- <포비아 2>에 기립 박수와 환호를 쏟아내는 바람에, 정작 당초의 목적이자 기대작인 조지 로메로 감독의 <서바이벌 오브 더 데드>는 제목과 엔딩 크레딧을 제외하고 통째 기억이 없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 이제는 BiFan)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팬이 된 원년이기도 하다. <성가신 이웃>이라는 영화가 기억나는 본 충무로영화제, 한 젊은 감독과 상영관 옆자리에서 3번을 마주친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 영화제 등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한참인 영화제들도 있다. 이후에도 여러 영화제를 찾았고, 여러 영화제들이 명멸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코로나가 전세계를 덮쳤다. 영화제들은 연기를 거듭하다 취소되거나, 온라인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영을 병행했다. 온라인 상영은 영화에만 몰입하기에는 방해 요소가 많았지만 개별 스크린으로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올해 서울환경영화제의 온라인 상영 덕에 이전 오프라인 영화제 때보다 더 많은 작품을 봤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온라인 상영작을 친구와 각자의 집에서 동시에 보며 메신저로 감상을 주고 받았다. 코로나와 그 이후의 영화제는 온라인으로 대체될지도, 그래도 크게 상관 없다고 섣불리 생각했다.

 


올해 3회를 맞은 국제해양영화제(KIOFF)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렸다. 6개월 만에 찾은 영화관, 올해 첫 오프라인 영화제에는 좌석간 거리두기, 발열 체크, QR 체크인, 문진표 작성 등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관람 절차가 생겼다.


불이 꺼지고 바다의 물결이, 부서지는 빙하가, 투박한 소년의 어려운 표정이 거대한 스크린에 비친다. 밀려오는 파도의 철썩거림, 바람에 바슬거리는 모래알, 큰 동물의 울음을 닮은 무너진 빙하의 소리가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영화관을 가득 채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느꼈던 전율과 감동이, 잊고 있던 감각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좌석 사이로 텀블러와 손수건을 든 관객이 보였다. 바다를 주제로 한 우리와 자연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제지만, 바다와 환경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만큼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의 모습에 무언의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덕분에 영화제란, 주제나 테마에 맞는 영화를 보여주고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소한 영화라는, 나아가 영화제의 주제의식에 공감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종이책이 주는 감각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 영화관이 주는 경험은 개별적이고 특별하다. 영화와 영화를 매개로 한 축제의 장을 통해 공감하고 연민하며 우리는 조금 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코로나를 지나 많은 것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해결하는 시대에도 영화관과 영화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10년 뒤에는 여러 영화제의 또다른 10년을 회고할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 이미지 출처: 직접 촬영 혹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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