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탐구생활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 완벽한 균형이 만들어 낸 사랑의 우주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린 지구의 미래는 삭막하다. 모래 바람이 몰아쳐 숨을 쉬기 힘들고, 병충해에 곡물들이 죽어간다. 새로운 기술과 물건이 쏟아진, ‘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았던’ 시절은 유령 같은 과거가 되었다. 개척자나 비행사, 엔지니어들보다 식량을 만들 농부들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고,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딘 인류를 태운 아폴로 호는 시대의 사기극으로 역사책에 기록된다.

전직 비행사였던 주인공 쿠퍼는 하늘을 동경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모두가 땅을 바라보는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운명 같은 기회가 찾아오고 인류를 구하겠다는 대의보다, 자신의 아들, 딸이 살 수 있는 터전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운명처럼 우주선에 오른다. 먼저 떠난 탐험가들의 족적을 따라 토성 근처의 웜홈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떠난다.


매 영화마다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크리스토퍼 놀란의 9번째 장편 영화 <인터스텔라>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니, 아주 잠시 그가 시각 효과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오해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물론 이 영화의 시각 효과는 압도적이다. 우주 비행 장면, 특히 웜홀을 통과할 때나 밀러 행성에서의 비행은 두 손을 꽉 쥐고 이를 악물게 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주선 모형을 만들고, IMAX 카메라로 디테일을 담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각 효과에 대한 비전과 의지에 경외감마저 든다.

시각 효과와 더불어 서사의 완급 조절도 뛰어나다. 딸과의 이별과 우주선 발사가 교차 편집된 영상이나, 블랙홀 속에 갇혀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 부녀의 재회 장면은 자칫 신파가 될 수 있는 드라마를 간결하고 감동적으로 이끌어낸다. 그 외에도 대의라는 명분과 인간의 본능간의 충돌, 감정과 이성의 갈등, 고립된 인간의 생존에 대한 이기적인 집착 등 인간에 대한 고찰과 질문은 등장 인물들과 장면을 통해 효율적이면서도 균형 있게 담아낸다. 3시간에 육박하는 상영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고, 긴장과 감동을 오간다. (그래서 한 편의 영화를 봤다기보다 3부작 정도의 시리즈물을 본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우주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이 SF 영화의 차별점이자 핵심은, 흥미롭게도 ‘사랑’이다. 가족을 향한 개인적이면서도 범인류적인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고차원적이다. 위기의 지구에서 인류를 구하는 것도,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의 사랑은 과학적 요소에 대비되는 정신적 차원의 무언가에 그치지 않고 정량화할 수 있는 요소이자, 과학적인 요소들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덕분에 SF 영화의 틀 안에서 가족과 휴머니즘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상대성이론과 중력에 대한 담론을 모두 소화하지 않더라도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차원에 대한 대담한 시도는 과학(Sci)과 픽션(Fi)의 경계에 대해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고, SF의 대작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 모든 평가를 뒤로하고 과학과 영화적 상상력, 서사, 영상, 음악(한스 짐머의 음악을 빼놓을 수없다. 단연 최고), 연기(마이클 케인, 앤 해서웨이 등 탄탄한 연기력의 주조연 배우들 중에서도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는 <달라스바이어스 클럽>을 기점으로 정점에 이른 것 같다)의 놀라운 조화가 만들어낸 <인터스텔라>는 SF 영화에 새로운 지표를 제시한다. 살아있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음 영화는 또 어떤 호기심을, 감동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제목: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연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각본: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제작: 조던 골드버그(Jordan Goldberg/제작총괄),  제이크 마이어스(Jake Myers/제작총괄), 킵 손(Kip Thorne/제작총괄),  토머스 툴(Thomas Tull/제작총괄), 린다 옵스트(Lynda Obst/프로듀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프로듀서),엠마 토머스(Emma Thomas/프로듀서)
출연: 매튜 맥커너히(Matthew McConaughey, 쿠퍼),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아멜리아),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 브랜드), 제시카 차스테인(Jessica Chastain, 머피), 맥켄지 포이(Mackenzie Foy, 어린 머피), 케이시 애플렉(Casey Affleck, 톰), 웨스 벤틀리(Wes Bentley, 도일)
장르: SF, 액션, 미스터리
제작국가: 미국, 영국
촬영: 호이트 반 호이테마(Hoyte Van Hoytema)

***

+ 이 영화를 보고 할 말도,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과학, 특히 물리와 우주라면 치를 떨던 나에게 상대성 이론과 중력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관을 나오며 벅찬 감동을 느낀 것에 그치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은 아주 오랜만이라 신이 난다.

+ 큰 화면으로, 가능하다면 IMAX 감상을 (강력) 추천.

+ 영화 속 소재들에 숨은 상징적 의미를 찾으며 보면 더욱 재미있다. ‘아폴로 사기극’을 설명하는 대사를 비롯해 두 동강 나버린 머피의 달 착륙선 장난감, 무덤에서 부활한 ‘나자로’, 참을성과 인내를 의미하는 ‘인듀어런스’ 호 등등.


+ IMAX로 2번 감상하면서도 몰입감과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가 주는 슬픔과 감동도 여전했다.


<짧은 감상>

★★★★★ (10/10)
은하계와 웜홀, 블랙홀에 이르는 광활한 우주와 미래의 지구를 오가며 손에서 땀을 쥐게 하는 압도적인 영상,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학과 상상력의 줄타기, 효율적인 장면 활용과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인 서사, 한스 짐머의 음악,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의 완벽한 조화가 만들어낸 수작. 보는 내내 마음이 벅찼고, 오랜만에 자극된 호기심으로 즐겁다.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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