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미스터 브레인워시

“현대 미술은 나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다. 영화나 연극, 문학과 같이 공통의 언어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예술과 달리, 각양각색의 기법으로 표현된 미술의 모호성은 현대에 들어 극대화된다. 현대라는 시점의 문제보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거나 큰 흐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특히 직관적이지 않은 작품을 대하는 대중과 평론의 시각차는 늘 존재했다.

미스터 브레인워시(Mr. Brainwash, MBW) 혹은 티에리 구에타는 거리예술가 ‘뱅크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에 등장한 인물이다. ‘스페이드 인베이더’의 사촌이기도 한 그는 거리예술가를 촬영하다 뱅크시의 권유로 거리 예술을 시작한다.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나 주제의식이 분명한 뱅크시에 비해 그는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미 복제, 모방된 미술 작품을 파괴하고 재조합하거나 변형한다. 2008년 LA에서 이번 전시와 동일한 제품의 <Life is Beautiful> 전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시장’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왕성한 활동 중이다.


이번 <Life is Beautiful> 전은 이런 거리예술을 실내에서 ‘전시’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골목 한 귀퉁이에 있었을 법한 그림, 혹은 낙서가 액자에 걸려있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댄스>를 따라 그린 그림에 하트 풍선을 더했고,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는 LIFE로 탈바꿈했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고즈넉한 석양을 담은 회화 속에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나란히 앉아 있는가 하면, 우아하게 포즈를 취하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는 다스베이더와 스톰트루퍼 가면을 쓰고 있다.



현대 미술 전반의 모호성을 차치하고라도, 이런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품’들에는 모호하고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밝고 강렬한 색의 물감을 흩뿌려 놓는다든가, (아마도 작가가 좋아했을) 이것저것을 마구잡이로 붙여놓은 그림을 보고 있자니, 과연 내가 할 수 있지만 안한 건지, 할 수 있어도 안할 건지 의구심이 든다. 공공연한 모방과 복제 속에 어떤 부분을 예술로서, 미학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봐야할 지 의문이다.


경쾌한 작품들 끝에 어김없이 선물가게가 등장했다. 거리예술가의 기념품은 예상을 뛰어넘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미스터 브레인워시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스프레이 페인트는 20만원을, 공산품으로 보이는 한정판 ‘SCULPTURE’는 80만원을 호가한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엽서나 소품들도 물론 있다. 구매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가격표만큼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 것일까, 나아가 사람들은 무엇에 돈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거리예술을 담은 이번 전시는 분명 그 자체로 즐길 가치와 재미가 있다. 정해진 선을 따라 걷는 대신, 전시 공간 안에서 (전시물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런 저런 각도에서 사진을 찍거나 둘러보며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재미 요소다. 크고 작은 조형물의 재치 있는 변형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래, 즐거우면 됐지, 따져 물어 뭐한, 예술의 미학적 가치와 상업성의 경계나 주제의식에 대한 질문은 잠시 넣어둘까 보다.

덧. 마음에 들었던 작품 혹은 작품을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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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미스터 브레인워시 展 <Life is Beautiful>
기간: 2016/06/21 – 2016/10/30
장소: 아라모던아트뮤지엄 (전시 안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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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라모던아트뮤지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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