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마술사” <에셔 특별展>
[전시] 그림의 마술사 – 에셔 특별展
– 익숙한 많은 것들이 낯설어지는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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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알게 되는 우연한 계기가 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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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셉션 (2010)>의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서(조셉 고든 레빗)가 애리어든(엘렌 페이지)에게 모순적인 건축물(paradoxical architecture)에 대해 설명하며 계단을 걷는데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영국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고안한 펜로즈 삼각형 (Penrose Triangle)에서 착안한 계단이다1.
영화 <인셉션> 촬영 현장. CG보다는 치밀한 계산에 기반한 연출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계단을 만들고 카메라 각도를 틀어 그림처럼 연결된 삼각형으로 보이게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상: M.C. Escher – “Penrose Steps” – (From “Inception” Movie3)
데이비드 보위가 마왕으로 등장한 영화 <라비린스 (Labyrinth, 1986)>의 미로 역시 기이하다. 다른 방향으로 오르내리다 못해 거꾸로, 옆으로 움직인다.
출처: 영화 <라비린스> 영상 캡쳐 (영상: MC Escher inspired Scene from the movie Labyrinth (1986))
영화적 상상의 산물이라 생각했던 두 작품 모두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의 영향을 받았다. M.C. 에셔라고도 불리는 그는 네덜란드 판화가, 화가, 그래픽 디자이너로, 건축을 공부하다 교수의 권유로 그래픽 아트로 접어 들었다. 그의 초, 중기작은 주로 실재하는 풍경을 수학적 계산에 따라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1936년 알함브라 궁전 방문 이후에는 대칭과 분할을 반복하는 테셀레이션과 펜로즈 삼각형 등에 기반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구조와 왜곡된 공간을 그림에 담아 착시를 일으킨다.
특별전 구조 상 먼저 접한 풍경과 정물을 다룬 작품을 먼저 만나게 된다. 석판과 목판 위에 완성된 작품들은 흑백 사진을 인화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세밀하다. 원근법으로 흐려질 법도 한 지점에 위치한 창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는다. 수채화나 유화를 떠올리기 쉬운 미술보다는 종이 위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건축물 같다.
M.C. 에셔, 무제, 1924 (출처: 허핑턴포스트 – M.C 에셔의 미발표 작품이 공개됐다)
왜곡된 시공간을 다룬 작품이 섞여 전시되어 있다. 그 또한 세밀하게 묘사된 풍경이겠거니 무심결에 지나치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와 보면 혼란스러워진다.
아래는 영화 <라비린스>에 영향을 준 <상대성 (Relativity, 1953)>과 물의 모순적인 흐름을 표현한 <폭포(Waterfall, 1961)이다.
M.C. 에셔, 상대성 (Relativity, 1953), 석판화 (출처: 중앙선데이 – ‘그림의 마술사’ 에셔의 불가능한 세계)
M.C. 에셔, 폭포 (Waterfall, 1961), 석판화 (출처: 중앙선데이 – ‘그림의 마술사’ 에셔의 불가능한 세계)
‘쪽매맞춤’이라 불리는 테셀레이션은 평면 도형을 겹치지 않으면서 빈틈 없이 채우는 걸 말한다. 정다각형 중에서는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으로 쪽 맞추기가 가능하다2. 고대 로마나 이슬람 건축물에 쓰이던 테셀레이션을 작품으로 구현한 에셔는 ‘테셀레이션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에셔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스페인 그라나다 소재의 알함브라 궁전은 테셀레이션 장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테셀레이션은 치밀한 계산과 측정에 기반한다. 모르고 보면 크게 감흥이 없다가도 에셔의 테셀레이션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예술 작품인지, 그리고 컴퓨터가 아닌 사람 손으로 그려졌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순간 경외감이 절로 생긴다.
아래는 에셔의 대표작 <도마뱀(Reptiles, 1943)>. 평면에서 입체로, 다시 평면으로 돌아가는 도마뱀의 움직임을 담은 작품으로, 색상이 다른 도마뱀이 빈틈 없이 그려진 평면의 그림이 바로 테셀레이션이다.
출처: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 – 그림의 마술사: 에셔전
에셔의 도마뱀은 정육각형에서 시작해 머리, 꼬리, 다리를 동일한 비율로 잘라 회전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같은 크기의 도마뱀들이 겹치지 않고 빈틈없이 채워질 수 있었던 것.
출처: GeoGebra – Escher’s Lizard Tessellation 캡쳐 (by Duke)
에셔의 작품에는 도마뱀, 새, 물고기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 밖에도 심리 상태에 따라 먼저 보이는 게 다르다며 장난치던 ‘천사와 악마‘ (원제: 서클 리미트 IV (Circle Limit IV, 1960)) 역시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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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되는 것들을 검색하는 족족 에셔의 이름이 나온다. 그의 작품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3>를 비롯해 기하학적인 패턴의 패션으로 유명한 이세이 미야케의 A/W 11-12 컬렉션이나 게임의 공간, 트릭 등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자 하나 놓치지 않으려던 에셔의 작품에는, 그래서 어느 순간 어떤 것이 실재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에는, 피사체에 대한 세심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런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 영감을 주고 있다.
사람 사는 데가 별 다른 게 있겠냐며 건물 하나, 동네 둘, 심지어는 도시 전체를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였다. 강렬한 자극에 감각이 무뎌지고 쉽게 지루해지는 건, 어쩌면 미세한 차이를 찾는 즐거움을 포기해버린 마음의 게으름 탓이겠다.
에셔의 작품 앞에서, 세상에 대한 넘치는 호기심과 열정 앞에 게으른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세계로 나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무심결에 스쳐 지나던 빌딩을 올려다본다. 빌딩마다 비슷한 듯 다른 결이 새롭다. 익숙했던 것들이 이제는 낯설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도 같다. 나는 지금의 매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며 보이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설레고 조금은 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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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펜로즈는 시공간이 뒤섞인 에셔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펜로즈 삼각형을 고안하고, 그 후 에셔가 펜로즈 삼각형을 작품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 중앙선데이 – ‘그림의 마술사’ 에셔의 불가능한 세계)
3 영화 <인셉션>의 펜로즈 계단 제작, 촬영 과정을 담은 영상: M.C. Escher – “Penrose Steps” (From “Inception” Movie) – How It Was Done
출처: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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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그림의 마술사” 에셔 특별展
- 기간: 2017/07/17 – 10/15
-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시 안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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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 – 그림의 마술사: 에셔전
+ 전시 순서나 구성이 뒤죽박죽이다. 전시실 사이에서 상영하는 짧은 인터뷰와 뉴스 속 전시 안내까지 보고 나면 테셀레이션 전시가 새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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