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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 (2017)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의 리플리컨트(Replicant)는 인간과 동등한 지적 능력에 인간을 앞서는 신체 능력을 가진 인조인간이다. 전투, 탐사, 섹스 토이 등 거친 환경이나 목적을 불문하고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노예로 사용된다. 만들어질 때부터 수명이 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일부 넥서스 6 모델 리플리컨트들은 2018년 우주 식민지(Off-world)에서 폭동을 일으킨다. 이후 이들이 지구에 거주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 ‘블레이드 러너’는 지구에 불법 거주하는 리플리컨트를 찾아 없애는 특수 경찰이다.

수명 제한이 없어진 넥서스 8이 출시되었지만, 이후 로스앤젤레스를 암흑으로 만든 사고의 주동 세력으로 리플리컨트가 거론되며 생산과 보유가 전면 금지되고 남은 넥서스 8은 숨기 시작한다. 인류는 세계 경제 붕괴, 기아로 큰 위기에 처하는 데, 이 때 니앤더 월레스는 유전자 공학 식량을 연구해 기아를 해결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가 리플리컨트에 달려 있다며 연구에 매진하고 타이렐사 일부를 인수, 인간에 복종적인 넥서스 9를 선보인다. 블레이드 러너는 남아있는 넥서스 8을 추적해 폐기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이야기는 여기부터 시작된다. 영화 안팎 30년 가량의 간극에도 충실하게 후속작으로서 시리즈를 이어나간다. 배경이나 소재만 가지고 오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 속 이야기와 인물이 이어지기 때문에 전편을 모르고 보기는 힘들다.

두 영화 모두 블레이드 러너가 주인공이지만 관점이 바뀌었다. 전작은 인간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 형사가 리플리컨트를 쫓으면서 리플리컨트인 레이첼과 사랑에 빠지고, 또 다른 리플리컨트 로이 배티를 통해 존재와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반면,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 K는 블레이드 러너지만 넥서스 9 리플리컨트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물론, 기억조차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고,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를 묻던 전편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내가 봤던, 인간이 상상도 못할 경이로운 순간들의 기억은 없어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 배티

인간이 정해둔 목적에만 충실하던 K는 한 리플리컨트의 죽음에서 자신의 존재, 나아가 지금까지의 리플리컨트의 존재를 재규명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한다. 규정된 세계의 질서를 지키려는 인간, 새롭게 정의될 세상의 권력을 지배하려는 월레스,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찾고자 하는 리플리컨트 사이에서 K는 희망을 품지만 이내 좌절한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섞여 거리를 활보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SF에 흔히 등장하는 질문이다. 사이버펑크를 대표하는 <블레이드 러너>는 두 작품에 걸쳐 존재의 기원, 즉 태어났는지 만들어졌는지로 인간과 기타 존재로 구분되고 삶 전체가 규정되는 사회 속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처럼 행동하도록 기억조차 주어진 리플리컨트는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서 존재할 뿐,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다. 이러한 설정은 리플리컨트는 ‘처형(execution)’이 아니라 수명을 다한 기계처럼 ‘폐기(retirement)’된다는 영화 서두의 표현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스스로 사고하고 총을 맞으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존재임에도 리플리컨트라는 이유로 살인은 폐기로서 정당화된다. 전작에서는 레이첼, 리온, 로이 등 인간처럼 이름으로 불리며 살지만, 폭동 이후에는 이름이 아닌 일련번호로 불리며 더욱 구분이 철저해진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대신, 존재 가치와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의 질문은 실체와 허상의 구분마저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인간’ 혹은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만들어진 껍질과 사고의 틀 위에서도 나를 규정하고 상대와 구분 짓는 개별성과 고유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모든 것이 가공된 과거는 답을 주지 못한다. 실체가 없는 영혼은 찾을 길이 없다. 열쇠는 ‘지금’에 있다. 사고하고 행동하는 지금의 내가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K는 절망에서 일어나 손을 내민다.


리플리컨트가 인간다움의 의미를 찾아가는 동안 또 한 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친다.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리플리컨트 혹은 어떠한 존재가 필요했다면, 굳이 인간의 형상을 지녀야 했을까? 목적에 최적화된 사이보그나 로봇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기억까지 만들고 그 증거물을 쥐어주는 수고를 들인다. 영화를 보며 이러한 행위의 저변에는 우리와 닮은 모습을 지닌 존재에 호감을 가진다는 정서적 공감이나 친밀도의 이유보다, 어떤 존재를 창조하고 통제, 소유하려는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대상이 자신과 닮을 수록 희열을 느끼고, 자신이 가장 특별한 존재로서 군림하고자 하는 욕망은 영화가 아니어도 낯설지 않다.

인간다움을 잃은 미래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은 속도감 보다는 무게감 있게 진행된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2015)>, <컨택트 (2016)> 등 강렬한 작품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의 감독 하에 웅장하고 세련되게 만들어낸 디스토피아적 미장센과 몽환적인 음악, 절제된 연기, 그리고 전작과의 빈틈 없는 연결로 완성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그린 미래는 스마트폰을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 등장한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인공지능에 기대와 우려가 뒤섞이고 있는 현 시점의 우리에게 던지는 우아한 경고장 같기도 하다. 심도 있는 논의 없이 인간을 닮아가기만 하는 기술과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로 분석되는 일상 속에서 과연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

  • 제목: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 연출: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
  • 원작: 필립 K. 딕 (Philip K. Dick)
  • 각본: 햄톤 팬커 (Hampton Fancher), 마이클 그린 (Michael Green)
  • 출연: 라이언 고슬링 (Ryan Gosling, K), 해리슨 포드 (Harrison Ford, 릭 데커드), 아나 디 아르마스 (Ana de Armas, 조이), 실비아 획스 (Sylvia Hoeks, 러브), 자레드 레토 (Jared Leto, 니안더 웰레스), 로빈 라이트 (Robin Wright, 조시)
  • 제작국가: 영국, 캐나다, 미국
  • 촬영: 로저 디킨스 (Roger Deakins)
  • 음악: 벤자민 월피쉬 (Benjamin Wallfisch), 한스 짐머 (Hans Zimmer)

***


+ 연출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의 각본가 햄톤 팬커, 코엔 형제, 샘 멘더스,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등을 촬영한 로저 디킨스까지 그야말로 드림 팀 (음악도)!

+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에서 ‘눈’은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전작에서는 리플리컨트와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테스트로 동공의 움직임을 측정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안구 뒤 일련번호로 리플리컨트를 확인한다. <레퀴엠>과 <미스터 노바디> 등에서 ‘눈’이 강조되었던 자레드 레토가 동공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 건 우연이겠지?



+ 코카콜라와 소니, 푸조 등 엄청난 PPL. 미국 로스앤젤레스가 배경이면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섞인 기묘한 분위기는 영화를 위해 만든 가상 세계 공용어라고.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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