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 지금, 그리고 인간다운 삶에 대한 담대한 질문
축 늘어진 사람들이 체크인을 기다린다. 소지품을 모두 반납하고, 똑같은 옷, 신발, 양말을 배급 받는다. 다음 날 숲으로 향한 사람들은 서로를 사냥한다. 45일 이내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하는 이 요상한 호텔에서 유예 기간을 하루라도 늘리기 위해서다. 코피를 자주 흘린다든지,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과 같은 단편적인 신체 특성에서 공통점을 찾은 이들은 서둘러 커플이 된다. 커플에게 갈등이 생겼을 때는 아이를 입양해준다. 자녀는 커플의 갈등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주인공 데이비드의 희망 동물은 ‘랍스터’다. 100년 가까이 살며 원 없이 짝짓기를 하겠다는 데이비드의 조건은 여러모로 커플이 되기에 불리해 보인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여성과 거짓 커플이 되어 동물이 되는 위기를 잠시 모면하는 듯 하나 이내 들통난다. 무작정 도망친 데이비드 앞에 나타난 숲 속 사람들. 이들은 호텔과 정반대의 규칙에 따른다. 무엇을 하든 자유, 동물이 되지 않아도 되지만 커플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영화 <더 랍스터>에서 커플은 인간으로서 사회에 나와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하게 용인된 다수의 생존 형태다. 커플 사이의 사랑보다 조건이 우선되고, 아이는 형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매개일 뿐이다. 호텔에서 사회, 혹은 야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누가, 왜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없다. 호텔과 대치되는 숲 속 반군 세력도 마찬가지다. 외톨이 리더가 만든 규칙과 명령만이 유효하다. 지배 계층이 아닌 개인은 이를 따르거나 도망칠 뿐이다.
상반된 생존 형태를 용인하는 두 사회 체제의 동작 원리는 사실상 동일하다. 바로 ‘독재’와 ‘공포정치’다. 양 체제 모두 단독 혹은 소수 집단이 만든 규칙을 다수에게 강제한다. 다양성으로 이어지는 감정이라는 변수를 배제하고, 규칙을 어기는 이를 공개적으로 잔혹하게 처벌한다. 반복적인 세뇌 교육은 ‘동물’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인간의 ‘형태’에 집착하게 한다. 숲에서는 이런 비정상적인 집착과 공포를 역이용해 자신들의 시스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즉, 여기가 싫으면 호텔로 돌아가 동물이 되는 것 외의 선택지가 없다는 식이다. 자본 수단과 권력, 식량을 소수가 독점한 사회 속 다수는 눈앞의 생존 외의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45일은 짧고, 숲 속은 춥다.
감정이 억압된 숲 속에서 ‘진정한 상대’를 만난 데이비드에게조차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호텔과 숲에서 도망친 데이비드는 체제가 요구하는 커플의 형태로, ‘도시’라는 다수의 시스템으로 회귀한다. 그러나 커플로 존재하기 위해 ‘조건’이 같아야 한다는 강박에 의해 그는 또다시 도망친다. 질문할 힘을 잃은 그에게 외적 조건을 배제한, ‘사랑’을 매개로 한 관계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 사랑과 희망을 믿었던 그녀는 결국 버림 받는다. 적어도 그런 결말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더 랍스터>는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 관계의 의미를 고찰한다. 동시에 거대한 체제 속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 자조 섞인 시선을 보낸다.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한 요즘, 관계를 바라보는 많은 이의 관점은 영화 속 그들의 짝짓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의 조건이 조금 더 까다롭고 복잡할 뿐이다. 거기다 지금의 다수 역시 물질주의의 관행과 체제의 관성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잊은 채, 당장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던가.
생존이라는 명목 하에 질문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행동하는 힘을 잃고 무기력해질까 두렵다. 동물이 되지 않으려다 어느새 동물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한 후는 너무 늦다. 대내외적으로 사건사고가 많은 요즘,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모두의 고민과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더 랍스터>의 여운이 유독 길게 남는 이유다.
***
제목: 더 랍스터(The Lobster, 2015)
연출: 요르고스 란티모스(Giorgos Lanthimos)
각본: 요르고스 란티모스(Giorgos Lanthimos), 에프티미스 필리포우(Efthymis Filippou)
출연: 콜린 파렐(Colin Farrell, 데이비드), 레이첼 와이즈(Rachel Weisz, 근시 여인), 레아 세이두(Lea Seydoux, 외톨이 리더), 벤 위쇼(Ben Whishaw, 절름발이 남자), 존 C. 라일리(John C. Reilly, 혀짤배기 남자)
장르: 멜로/로맨스, 판타지
제작국가: 그리스,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
+ 콜린 파렐은 날렵하고 멋지면서 조금은 허술한 이미지였던 기억인데, <더 랍스터>에서의 모습은 <그녀(Her)>의 호아킨 피닉스를 연상하게 한다. (……)
**별점을 주자면: 7.5/10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있습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Copyright © FlyingN
@ A Wonder Log · 마음대로 날아간 그 발자취
(http://wonderxlog.flyingn.net)
본 블로그의 모든 글에 대한 저작권은 © FlyingN (Flyingneko, 나는고양이)에 있습니다.
블로그 내 모든 문구 및 내용, 이미지의 무단 도용 및 복제 사용을 금지합니다.
공감, 댓글, 추천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구독하시면 더욱 편리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광고, 무분별한 비방은 임의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