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 두 고전, 그리고 다짐
단순히 흑백 영화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서울 시내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의 목록을 살펴보다가 아주 우연히, 그리고 아주 운 좋게 발견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사실 시작부터 가려고 어딘가에 적어두긴 했지만,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미루다 마지막 날에야 부랴부랴 가게 된 셈.
우연치고는 여기서 보낸 몇 시간이 당분간의 내 삶과 생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니 이 또한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중 가장 긴 기간 동안 열렸다고 하는데, 마지막 날에야 찾게 되었다.
첫 번째로 보게 된 영화는 [프랑켄슈타인 죽이기(Frankenstein Must BeDestroyed,1969)]
감독: 테렌스 피셔 (Terence Fisher)
출연: 피터 커싱, 베로니카 칼슨, 프레디 존스, 시몬 워드
제작국가: 영국
뇌에 대한 집착으로 뇌 이식에 시도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며 실험을 강행하던 프랑켄슈타인 남작은 우연찮게 발각되는 자신의 실험실을 뒤로 하고 안나가 운영하는 하숙집에 묵게 된다. 안나의 연인이자 의사인 칼이 돈을 위해 불법으로 마약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남작은 이를 빌미로 칼과 안나를 자신의 위험한 실험에 끌어 들인다는 내용.
당초 보고 싶었던 흑백 영화도 아니었고, 오히려 선혈이 낭자한 축에 속했지만, 지금의 호러 영화들(심지어 스릴러도)처럼 무분별하게 뿌려대는 피나 살점으로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 이 영화의 매력은 적절한 선에서 그치는 표현. 아주 잔인하기 직전까지의 장면에서 피 튀기는 벽을 비춘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어 오히려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언젠가 인상 깊게 봤던 [거울 속으로]라는 영화와 리메이크 작인 [미러]가 문득 떠오른다. [거울 속으로] 역시 표현이 거칠었지만, [미러]에 비하면 상당히 자제했던 느낌이다. [거울 속으로]의 경우는 등장인물의 행위, 예를 들어 목을 긋는다든지, 이후의 장면은 많은 부분 관객의 상상에 맡겼던 반면, [미러]에서는 목이 떨어지는 장면까지 다 보여준 것 같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들이라 혹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도 대강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참고용으로만)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등장인물들의 클로즈업 장면이 많았고 이를 적절히 장면장면 배치했다는 점. 영화 표현 기법이나 이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이렇다 할 관심도 없지만, 어디선가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많은 것이 동원되지 않고 이러한 장면 배치들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제작된 지 40년이나 지난 영화라 최신 (지나친) 표현 기법의 발달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기에는 다소 억지스러운 효과나 분장도 있었지만, 말초 신경을 자극하기에 급급한 표현들이 난무한 지금 기초적이면서도 어려운 적절한 선을 지키며 주는 상상의 여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보게 된 영화는 존 포드 감독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감독: 존 포드
출연: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베라 마일즈, 리 마빈
제작국가: 미국
자발적으로 찾아서 본 흑백 영화는 작년 필름 포럼에서의 [네 멋대로 해라]가 처음이었다. 사실 사진이든 영화든 색감을 중시해서인지, 혹은 고전은 따분하다는 고루한 편견 때문인지 그간 흑백 영화는 찾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충동적으로 찾게 된 영화가 영화제에서도 마지막 상영작인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총과 무력이 난무하던 마을에 법 질서를 구현하려는 랜스와 그를 탐탐치 않게 생각은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그를 지켜주던 톰 도니폰과 리버티 밸런스라는 무법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그려가는 서부극인 이 영화에는 미국 초기 민주주의의 역사가 담겨있다. 사람들은 마을을 찾은 이방인 덕에 글을 배우고 나라가 무엇인지, 정치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영화는 탄탄한 줄거리와 구성, 그리고 구석구석 적절한 웃음거리를 배치해, 보는 내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특히 지금의 스릴러가 시청각을 모두 자극해 긴장감을 조성해가는 것에 비해, 흑백 영화가 가진 색감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음향 효과 없이 조명이나 그림자를 활용하여 긴장감을 조성한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지금의 영화와 관객이 기술의 발달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고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이지만,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영화가 주는 색다른 긴장감에 숨을 죽이고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두 영화 이외에도 아주 우연히 참가하게 된 영화 평론 마스터클래스에서도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기회가 있으면 생각을 정리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생겼다.
충동과 우연으로 시작된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나에게 있어 영화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영화를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볼 영화도, 배울 것도, 느낄 것도 아주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며 앞으로 좀 더 부지런히 머리와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했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스테이크의 크기도, 존 웨인의 포스도 (각각 다른 의미에서) 대단했다.
+. This is the west,sir. When the legend becomes fact, print the legend.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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