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 2006)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 2006)
– 신념을 지킨다는 것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출연: 울리쉬 뮤흐(비즐러), 마르티나 게덱(크리스타), 세바스티안 코치(드라이만), 울리히 터커(그루비츠)
장르: 드라마
제작국가: 독일


독일 영화는 볼 기회가 흔치 않다. 어릴 때 우연히 케이블 방송으로 한 편 정도 본 기억 말고는 봤던 기억이 없다. [브로크백 마운틴] 때문에 주시하고 있던 시네아트의 ‘아카데미 필름 페스티벌‘ 상영작 중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리고 감상문을 쓸 때에는 가능한 한 관련 정보들을 적게 접하려고 노력하는 쪽이라 제목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타인의 삶]은 1984년 분단 상태의 동독을 배경으로 한다. 비밀 경찰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숨을 죽인 채 살아간다. 비즐러는 비밀 경찰이자 교수로 극작가인 드라이만과 더불어 그의 연인인 크리스타를 감시하게 되면서 그들의 삶에 빠져든다.

영화나 그 분위기는 제목만큼이나 가볍지 않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단 국가의 아픔보다는, 막강한 권력에 대한 개개인의 반항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학습된 무기력증이 사회 전반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힘의 불균형으로 사람들은 지쳐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보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나 그간의 불만이 섞여 시작된 개혁이겠지만, 종국에는 가진 자들이 더 가진 자들을 위해 나머지의 삶을 억압하고 자유를 착취하게 된다. 모두가 평등한 삶이란 시작부터가 인간이기에 불가능한 것일까.

가진 자들은 치밀하다. 그들이 표적을 정하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없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영화에서의 감시도 그렇게 시작된다. 잘나가는 드라이만의 꼴이 보기가 싫다는 것.

영화 중 드라이만은 공석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자기 검열을 통해 철저하게 그들의 룰에 벗어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한다. 그리고 예술가이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과 표현함으로써 잃게 될 예술가로서의 삶 사이에 갈등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해 내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야 한다면 어떠한 선택에도 옳고 그르다라는 가치 기준을 쉬이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갈림길에서 두 예술가는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위험에 몰아 넣으면서까지 서독으로 자신의 신념을 담은 글을 보내는 드라이만과 무대에서의 자신의 삶을 잃을 수 없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는 크리스타. 그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갈림길과 다르게 비즐러는 또 다른 갈림길에 서서 고민한다.

비밀 경찰인 비즐러는 국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위해 투철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그는 그들을 감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개인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철저히 그들의 삶에 파헤치지만 결국 동화된다. 타인의 삶을 통해 무미건조한 그의 삶에 감정이 생겨나고, 드라이만의 삶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에 이른다. 드라이만이 스승의 죽음에 눈물 대신 연주하던 피아노 소리에 비즐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이 장면은  [이퀄리브리엄]에서 존 프레스톤(크리스찬 베일)이 눈물을 흘리던 장면과 겹쳐졌다. (체제에 의한 만들어진 신념과 내면의 뜨거운 무언가가 충돌하는 이 장면은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이 다르지만 여러 모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그도 개인적인 신념과 사회적인 신념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국가는 이미 기득권자들의 만용으로 부패해 그가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그런 그의 마음은 결국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한 인간을 지키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비즐러는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잃는다. 그러나 신념을 지켰다는 것, 그 것으로 그는 그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이어간다. 드라이만은 뒤늦게 그의 희생을 알게 되지만, 그에 대한 보답은 인사치레가 아닌 그가 모든 것을 걸며 지키려 했던 신념을 자신이 이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펜을 움직인다.

영화는 기득권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비참한 불평등을 보여주며 불편함을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편했던 것은 등장 인물들을 궁지로 몰아 넣으면서 만들어 낸,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삶과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신념이 공존할 수 없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영화는 어떠한 선택에도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삶을 선택한 크리스타조차 자신의 양심에 반한 선택을 견디지 못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신념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이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는 있다. 영화 속의 상황이 더욱 극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극단적인 시대적 배경 때문이라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 따른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 때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신념이라는 것이 애국심과 같이 거창할 필요도 없고 매 순간 무의식적으로 다른 것과 충돌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어떠한 신념을 지키며 어떠한 것을 희생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것을 추구하고 추구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기에는 아직 이를 지도 모르고 지금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나중에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가진 나의 신념을 돌아보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필요한 작업이라고 본다.


나는 무엇을 희생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은 쉽지 않은 고민들을 잔뜩 던져 준 무거운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났을 때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던 반드시 봐야 했던 영화였다. 이런 영화를 보고 고민해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 예술의 정치적 이용은 따로 정리해보고 싶다.

+. 음악도 화면도 연기도 모두 너무 좋았던 영화.

+.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울리쉬 뮤흐는 2007년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모습을 더 이상 스크린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R.I.P.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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