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2011, 미야베 미유키)
<R.P.G.(2011, 미야베 미유키)>
– 가상 세계에서의 가족 놀이, 그리고 관계에 대한 단상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대표 작가라고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 전작 <모방범>과 <낙원>을 꽤 재미있게 읽어 신작 역시 두번 생각할 것 없이 집어 들었다. <R.P.G.>,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본인 스스로가 덧붙인 것처럼 단행본으로 쓰기에는 짧고 중,단편집에 넣기에도 애매한 이야기라 사건이나 소재의 규모가 전작 같지 않다. 그래도 규모나 치밀한 구성 외에도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매력은 중간 중간 시선을 사로 잡는 글귀들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를 동경하며 너는 아빠, 너는 엄마, 하던 가족 놀이가 인터넷에서 벌어진다. 외롭던 이들은 익명으로, 자신이 바라던 인간상을 연기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숱한 익명들과 자신들의 관계를 구분 짓는다. 의지할 부모가 없는 여자아이는 ‘딸’이 되고, 커가는 딸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따뜻한 아빠의 역할을 갈구하던 이는 ‘아빠’가 된다. ‘엄마’가 생기고 ‘동생’이 생기면서 이상적인 가족의 역할 분배가 끝난다. 이렇게 시작된 가상 세계의 가족놀이는 실제 가족의 붕괴로 이어져버리게 된다.
인터넷으로, 특히 게시판이나 동호회를 통해 제한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예전에 비해 요즘은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더욱 빈번해졌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위주로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그러한 모습으로 또 다른 이상적인 모습과 만나 관계가 이루어진다. 많은 만남들 속에서 너와 나는 다르다는 구분을 짓고 관계의 심도나 친밀도에 따라 계층화 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만 국한되어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갈수록 현실 세계에서 연대감이나 소속감을 상실해가면서 이러한 세계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사회라는 바다에 부유하는 외딴 섬들이 교류를 하고 관계를 맺지만 보여 주고픈 단면을 마주한 그들은 한계에 봉착하거나, 보고 싶지 않은 혹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에 쉬이 관계를 정리해버리기도 한다. 현실 세계에서의 인간 관계에 비해 맺기도 끊기도 쉬워 보이기 (혹은 쉽기) 때문일까.
장소가 어디든 형성된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에 반대할 마음은 없다. 어디서 형성되었든 관계에는 한계가 있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현실을 잊고 마음 편히 쉴 곳을 찾는다는 명목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문제를 마주하거나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회피하고 가상의 세계에 도피처를 마련해 그 곳에서 안주하려 드는 모습은 왠지 비겁해 보인다. 가족 간의 불화가 있다면 원인을 찾아내 불화의 씨를 없애려 노력해야 하는데 가상의 ‘딸’이나 ‘아빠’를 만들어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만 주고 받는다. 단편적인 모습에 품은 헛된 희망은 결국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는 두 살인 사건을 두고 퍼즐을 맞춰가면서 붕괴된 한 가족의 내면이 파헤쳐진다. 아빠, 엄마가 있지만 집에서는 자신도 아빠도 엄마도 혼자라는 가즈미의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로움에 공감하며 뒤로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로우니까 서로 듣기 좋은 말만 주고 받으며 억지로 이어나가는 관계에서는 결국 외로움이 더 깊어지기만 할 테니. 특히 가까울수록, 가족이라면 더욱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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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P.G.
지은이: 미야베 미유키 (宮部 みゆき)
옮긴이: 김선영
1판 1쇄: 2011년 8월 16일
출판: 북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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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은 일본 소설은 아닌데, 유달리 사람 이름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초반 집중도가 떨어졌다.
+. 다시 읽어보거나 강력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별점으로 따지자면 5개 만점에 세 개 정도.
+. 표지는 참 마음에 든다. 조금 무섭기도 하고. 제목은 약자로 <R.P.G> 보다는 ‘롤플레잉 게임’이 어떠했을까 싶다.
+. 사회파 미스터리는 전체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있기도, 특정 소재에 대해 몰두해보기도 하는 재미에 읽게 되는 것 같다. 언제고 한번쯤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하는 것들에 대해 특히.
+. 볼 영화가 없으니 책을 보게 되는 건 좋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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