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2011, 정유정)
<7년의 밤 (2011, 정유정)>
– 오래간만에 활자로 느낀 스릴러의 소용돌이
누구나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다. 타인의 생존권을 위협한 혹은 박탈한 범죄자의 자식이나 가족들에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보통의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이들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들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들도 모르는 지극히 낮은 가능성의 위험도 가급적 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 강도가 개개인마다 다를지도 모르고, 개인 대 개인으로 대면한다면 약간의 동정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언론이 다루기 시작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붙게 된다.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신분을 숨긴 채 들키지 않을까 몸을 낮추고 살다가도 누군가 가져온 신문 기사 하나에 또 다시 떠날 수 밖에 없는, 환영 받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소설의 주인공 ‘서원’은 살인범의 아들이다. 열두 살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이 된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지만 언제나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다. 상속받은 재산을 양육비로 갖고도 두 번 이상 그를 돌보지 않으려고 해 결국 서원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마지막 희망을 품고 건 ‘아저씨’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아저씨’ 승환은 서원의 아버지(현수)의 부하직원이었으며, 사택에서 서원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소설은 현수가 살인마가 되기까지, 그 사건을 둘러싼 죽어버린 세령과 그의 가족,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령호를 둘러싼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었다. <고백>(미나토 가나에)이나 <천사의 나이프>(아쿠마루 가쿠), <13계단>(다카노 가즈아키)와 같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나 제도를 중점적으로 다룬 소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범죄자와 범죄자 가족의 인권 문제나 가정 폭력, 그리고 병들고 이기적인 현대인들의 모습과 같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비추고 그 안의 낯설지 않은 사람들을 그린다.
범죄자의 남은 가족이기에 삶을 빼앗긴 서원은 ‘또래 아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렇게’를뺀 채 ‘살아야 한다’는 마음 하나도 묵묵히 기다리고 참는다. 고작 12세, 7년이 지나도 18세의 소년은 언론과 보이지 않는 압력,사람들의 이중 잣대로, 혹은 노골적인 혐오로 사회에서 죽은 존재가 되어간다. 언젠가 지인들과 복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대상 인물의 주민등록번호를 제거해서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피해만큼이나 잔인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눈 앞에 있는데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원 역시 아저씨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기억되거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소설에는 서원 이외에도 많은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서원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저씨, 죽은 아이의 아버지 등 역시 제 각각의 긴 상처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는 상대를 폭력으로 ‘교정’하려 드는 세령의 아버지마저도. 그래서 서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에서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혼란스러웠다. 악인과 범인 혹은 선인의 경계는 어디일까. 선인이라 믿었던 이들이 악인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한 번의 실수로 빠진 늪에서 허우적대다 나올 수 없을 지경이 되는 인물들을 보면서 같은 상황의 내가 그들이 택한 선택지를 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에 아찔해졌다.그만큼 인물마다의 상황과 심리 묘사를 충실히 해놓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 중 서원과 그를 바라보는 타인의 이중 잣대가 유독 마음에 걸렸던 것은 서원을 피해자의 절벽으로 몰아넣은 것은 복수심에 불탄 한 사람만이 아닌 우리와 같은 범(凡)인들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여성 작가나 한국 소설에 대한 특정한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간 편식이 심했다. 섬세한 묘사가 좋아 읽게 된 일본 소설에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시선들을 느껴 더욱 빠져들었다. 일상과 개인적 차원에서의 내면 묘사에는 질려있기도 했다. 충동적으로 들게 된 <7년의 밤>은 간결한 문체와 박진감, 역동적인 화자의 전환, 그리고 다양한 문제 제기들까지, 흡인력이 대단했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겠다는 다짐은 몇 장을 넘기자 이내 잊혀지고 앉은 자리에서 400페이지가 넘도록 읽어 나갔다.오랜만에 스릴러라는 소용돌이에 정신 없이 빠져들었다 나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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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년의 밤
지은이: 정유정
펴낸이: 주연선
1판 1쇄: 2011년 3월 23일
출판: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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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5월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영화 판권 계약이 체결되었다. 읽는 내내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했는데,실제 스크린으로 접할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이 꼽은 가상 캐스팅에서 송강호와 김윤석, 이성재 등이 거론되었다고 하는데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전작들에서의 역할이 겹쳐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그러면서도 박해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 평소에는 좋았던 문장들은 다른 곳에 옮겨 두거나 표시해두는 데, 너무 빨리 읽어서일까 옆에 두고 봤던 메모지가 황량할 정도로 빈 칸이다.
+. 앞서 밝히기도 했지만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 잣대나 범죄자 가족들, 그리고 갱생하려는 범죄자들에 대한 문제는 꽤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문제라 유독 서원에게 눈이 가는 것 같다. 다른 이야깃거리도 많은 책이니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를지도.
+. 이 소설의 속도감이나 느낌에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가 떠오른다. <검은 집>은 읽고서 방 한 가운데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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