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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4,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4, 허지웅)


글쓰기를 싫어했다. 책을 좋아하고 언어에 관심이 많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에 빠지게 되었다. 보고 나면 잊혀지고 증발해버리는 생각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글쓰기를, 고심을 거듭한 끝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둥지를 틀게 된 이글루스를 돌아다니며 허지웅의 글을 만났다.

그의 생각에 늘 동의한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화 때문에 사적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나에게는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날이 선 생각과 담백한 문체. 냉담하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뜨거운 피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글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담대한 꿈을 꾸게 해주었다.

TV에 등장하는 그를 보며, 오랜 기간 그의 글을 알아왔던 사람들이 느꼈던 배신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배신감이라기보다 속상했다. 많은 이들이 묘사하는 그는 깡마르고 무뚝뚝한 방송인이었다. 치열하게 써 내려간, 논쟁의 중심에서 돌을 맞을지언정 꼿꼿했던 그의 글을 아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그렇게 기억되고 소비되는 그가 속상했다.

그가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지금의 인기에 편승한 그저 그런 출판물이 되어 버릴까 괜히 걱정됐다. 혹은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는, ‘나 여기까지 오는데 힘들었고, 이렇게 극복했다’라는 식의 자서전일까 두려웠다. 그런 생각들은 기우였다. 이 책에는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그간 인터넷을, 매체를 통해 써왔던 글들이 가지런히 모여있었다. 문장에서는 여전한 단백함과 생존력이 느껴졌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그 다운 제목으로 시작한 이 책은 총 4개의 장을 통해 그의 인생과 정치, 언론, 영화 이야기로 이어진다.호흡이 짧은 글의 단절감을 좋아하지 않아 단편집이나 에세이를 잘 읽지 않지만, 이 책의 짧고 긴 글들은 소주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각 장마다 뚜렷한 주제가 있지만 글 전체가 허지웅이라는 공통된 문체와 생각으로 이어진다.

각 장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공감 가는 대목들이 많았지만, 특히 자극과 가십에 혈안이 되어 있는 언론에 대한 그의 시선에 공감했다. 온라인이라는 채널 때문에 타블로이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급속도로 주요 매체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요즘, 저널리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우리의 자세와 시선은 어떠해야 하는가. 잊고 있던 이런 질문들이 다시금 돌아왔다.

무엇보다 역시 영화. 영화에 대한 그의 글은 언제 봐도 좋다. <다이하드>와 <설국열차>에 대한 글을 보다 보면,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글을 쓰다 말고 정말 그렇게 목젖이 타 들어가 눈물기가 묻어나올’ 정도로 권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좋은 영화를 마주한 그처럼 ‘팬심에 동요하는 얼치기’ 독자일 수 있지만, 그의 글로, 시선으로 한 편의 영화로 그칠 수 있었던 작품이 스크린 밖 사회와 문학 작품, 동 시대 혹은 이전 시대의 영화와 연결 고리 속에서 재해석될 때 그의 눈과 머리, 손에 경외를 보낼 수 밖에 없다.그렇게 나의 영화는 확장되고 기억된다.

웹툰이 책으로 나올 때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걸 왜 책으로 사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스크롤과 책장을 넘기면서 접하는 텍스트는 동일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그 폭과 깊이가 달랐다. (책에 손상을 주는 행위, 그러니까 줄을 긋거나 접지 못하는 성격 탓에) 다시금 돌아가 보고 싶은 문장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단숨에 읽었다. 팬심에서 이 책이 좋으니까 읽으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음울한 암류가 마음속 깊게 파고들어 음악과 영화로 간헐적 수혈을 받으며 근근이 지내고 있는 요즘, ‘자식,한 번 버텨봐’라며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찾고, 불의에 굴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 가능성을 줄 수 있는, 그런 삶으로 존재 가치를 찾아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팬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듯, 보태자면 나 역시 그렇다. 그가 계속해서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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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버티는 삶에 관하여(2014)
지은이: 허지웅
출판: 문학동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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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자. 기소된 사람의 혐의가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그는 용의자일 뿐 죄인이 아니다.

+ 잘 만들어진 영화는 고민을 축소시키지 않는다.

+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바빠진다. 지금의 20대, 우리 사회,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또 이야기하고 싶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모르지만, 이런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 글을 읽기 전에 어딘가에 썼던 기대평.

허지웅, 이라는 사람이 가진 생각에 언제나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스스로의 생각에도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지 않은가.)생각도, 표현도, 그 강도와 그에 대한 선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는) 그의 문장이 참 좋다. 과하게 멋을 내서 기름지지 않고, 그렇다고 소담하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단어 하나하나 절박한 마음으로 써낸 듯한 그 문장이 좋다.
그래서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버티는 것. 우연히도 옛 노트 한 켠에 적어둔 [대망]의 한 구절과 닿아있다. “인간의 깊이는 무슨 일이든 늘 정면으로 맞서며 몸을 피하지 않는데서 생겨난다.”

깊이에 대한 갈증이 부쩍 심해지는 요즘, 이 책이 던지는 여러 화두로 머리가 복잡해졌으면 좋겠다. 복잡함에 복잡함을 더하는 형상이지만.

++ 좋은 영화를 본다는 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스승과, 연인과,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볼 때보다 보고나서가 더 중요하다. 사유가 필요하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저 현실의 근심을 잊기 위해 찾아보는 프랜차이즈 오락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건 온당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신보다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할 것 같다. (p.247)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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