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의뢰인 (2011)

의뢰인 (2011)
당신도 뒤를 돌아보았는가?


언젠가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잘 나가다가도 억지로 교훈을 주려고 한다거나 감동을 주려고 한다거나, 차라리 비극으로 마무리를 지었으면 했는데 웃지 못할 희극이 된다든지. 거기서부터 기대치가 낮아진데다 원래 영화를 보며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라 상영 시간 동안 즐기고 나왔다면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영화 <의뢰인>을 꽤 재미있게 봤다. 120분이 넘는 상영 시간이 조금 버거웠지만, 초 중반을 극복하고 나면 후반부는 몰입도가 상당하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는 걸 다 알고 보는 마당에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올 수 있는 반전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꽤 볼 만한 스릴러이다.

용의자 한철민은 아내를 죽인 혐의로 붙잡히지만 정황 증거 외에는 소위 말하는 ‘물증’이 없는 상태. 지문이 묻은 증거는 고사하고 사체마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사 안민호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용의자를 몰아세우고, 용의자는 어떻게 알고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변호사 강성희에게 자신의 변호를 의뢰한다. 안 검사와 강 변호사의 관계는 영화 속에서 대충 설명은 되지만, 그 외의 인과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 점이 아쉽다. 불친절한 영화는 아닌데 굵직한 소재들 위주로 다루지 못하고 불필요한 장면이나 설명이 들어간 탓에 주의가 산만해진다. (아내가 물 들이키는 장면은 차라리 맥거핀이라고 봐야하나..)


그런데도 재미있었던 건 중,후반부의 몰입도 덕분이다. 극 전개상으로도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장혁, 하정우, 박희순의 연기도 팽팽한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데 한몫한다. 다른 것보다 이 영화의 강점은 관객을 극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힘에 있다. 특정 관점이나 인물에 힘을 싣지 않았던 영화는 등장 인물에 따라 시각을 달리하며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법정을 주 무대로 하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를 섞어가며 재판 장면을 지루하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이 영화는 눈물이나 분노, 광기를 잘 버무려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정의를 추구하던 검찰과 피고인의 줄다리기부터 특히 모두의 시선을 문으로 집중 시키는 강 변호사의 최종 변론은 관계자라도 된 것처럼 숨죽이게 했고, 한철민이 아파트 난간에 앉아 있을 때는 내 앞에서 그가 떨어질 것 같이 불안해 손이 자꾸 앞으로 나갔다. 관객을 두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고 ‘너는 저 사람을 믿느냐?’라는 질문을 줄곧 하도록 하는, 관객을 재판장 안의 또 다른 방청객으로 초대한 것도 참으로 ‘영리했다.’


영화나 드라마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고 가는 일이 많다. 이와 동시에 실제 범행을 저지른 인물임에도 증거 불충분으로, 혹은 다른 이유로 풀려나는 경우도 많다. 영화에서도 안 검사를 포함한 검찰과 경찰은 과잉 수사로 용의자를 수세로 몰아간다. 결과를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면서도 ‘뒤를 돌아본’ 우리에게 실제로 용의자가 범죄자라면 변호라는 행위를 통해 혐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진다. 정의란 어렵다. 여러 사람이 살고, 여러 세계가 부딪히기에 질서를 위한 절차라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악용하는 이들 때문에 절차의 당위를 재고하게 된다. 그래도 절차가 필요하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정의는 구현된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등장 인물들 덕에 결말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희망적이지만 특유의 멋쩍은 웃음으로 돌아서던 하정우만큼이나 무거울 수 있었던 영화를 툭 털고 일어나게 해준다.

오래간만에 ‘쫀득쫀득’한 긴장감을 맛보고 나온 영화 <의뢰인>은 누가 범인일 것인가 보다 어떻게 범인을 찾아내는 지를 보면 더 재미있다. 긴 상영 시간과 다소 부족한 개연성을 배우들의 쟁쟁한 연기가 채우고, 무겁지 않게 던지는 문제들도 두고 생각해 볼 만하다.


***
제목: 의뢰인 (2011)
감독: 손영성
출연: 하정우(강성희), 박희순(안민호), 장혁(한철민), 성동일(장호원), 김성령(사무장)
장르: 드라마, 스릴러
제작국가: 한국
각본: 이춘형, 손영성
***

+. 장혁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그 길 잃은 강아지 눈빛은 개인적으로는 호소력이 짙다고 생각을.. 눈물을 흘릴 땐 괜히 시큰.


+. 하정우의 변호사 연기는 일품이었다. 무슨 연기를 해도 그렇게 실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똑똑한 위치이면서도 재치 있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이번 역할은 특히 잘 어울렸다. ‘이상한 사람이네’하고 투덜대면서도 사건을 앞두고 눈빛을 번뜩이던 그와 박희순이 연기한 안 검사를 내세워 (<히어로즈> 같은 드라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리즈로 한 두 편 더 만들어주면 안되나.

<의뢰인2>를!

+. 성동일의 <브로커>도 스핀 오프로..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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