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래빗 홀 (Rabbit Hole, 2010)

래빗 홀(Rabbit Hole, 2010)
–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


베카와 하위는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정원에 꽃을 심고, 모임에 참여하고, 요리를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 뿐인 아들을 잃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큰 구멍이 있다. 아무리 그리워하고, 울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탓해봐도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에 무뎌지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숨도 못 쉴 만큼 짓누르던 고통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이런 느낌이 없어지기는 하나요?’라는 딸의 물음에 엄마는 대답한다. 없어지지는 않지만 견딜만해 진다고. 결국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기에, 살기 위해 조금씩 무뎌져 간다. 없어지지는 않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무게가 되어 주머니에 넣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게 된다.

그 시간을 채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함께 아들을 잃은 배우자도 대신할 수 없다. 베카는 우연히 일어난, 그리고 아들을 잃게 된 교통 사고의 가해자인 소년, 제이슨을 찾아간다. 그와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며 떠나간 아들을 그리워한다. 하위는 모임을 가고, 모임에서 만난 개비와 시간을 보내며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각자의 방법에 간섭하지 않고 거리와 시간을 둔다. 둘 사이가 멀어진 것 같지만, 사실 서로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아이가 원하는 사탕을 사주지 않는,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의 뺨을 때릴 정도로, 매일 밤 아들의 모습을 보고 또 보며 그리워할 정도로 슬픔에 빠진 그들은 서로에게 맞지 않는 위로와 방법이 결국 서로를 다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무언가를 잃고 슬픔에 빠진 이에게 시간만큼 귀중한 위로는 없다.


‘래빗홀’은 우연히 발견한 래빗홀을 통해 평행 우주를 오가는 이야기를 그린, 제이슨의 자작 만화책 제목이다. 평행우주를 다룬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프린지>의 비숍 박사는 자신으로 세상이 혼란에 빠지더라도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평행우주를 오가고, <더 도어>의 데이빗은 죄책감에 열어서는 안 되는 문을 연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어떻게 되든 자식을 살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카는 아들의 죽음에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여러 종류의 나와 당신이 존재하는 평행 우주에서, 지금의 나는 슬퍼하고 있지만 또 다른 나는 어딘가에서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자신 못지 않게 슬퍼하고 있는 하위의 손을 잡으며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슬퍼하고 이를 극복하라는 강요 대신 서로의 곁을 조용히 지켜준다.

잔잔한 음악과 영상이 흐르는 이 영화는 어떠한 이해나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남도 자신도, 심지어는 신도 탓할 수 없는 일을 천천히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짓누르는 슬픔이, 가슴을 치며 흘린 눈물이 조금씩 그 무게를 줄여나간다. 가슴에 난 구멍은 흉터가 되어 남을 지도 모르지만 고통과 아픔에는 조금씩 무뎌져 간다. 그렇게 함께 또 살아가게 된다.

***
제목: 래빗홀(Rabbit Hole, 2010)
감독: 존 카메론 밋첼(John Cameron Mitchell)
출연: 니콜 키드만(Nichole Kidman, 베카), 아론 에크하트(Aaron Eckhart, 하위)
장르: 드라마
제작국가: 미국
각본: 데이빗 린지-어베이르(DavidLindsay-Abaire)
촬영: 프랑크 G.드마르코(Frank G. DeMarco)
음악: 앤턴 샌코(Anton Sa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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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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