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르 아브르 (Le Havre, 2011)

르 아브르 (Le Havre, 2011)
온정이 남아있는 이웃들이 사는 마을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얼핏 봤을 때 러시아의 느낌이 약간 나기도 하는, 핀란드 출신의 감독이다. 80년대부터 꾸준히 영화 제작을 해온 감독은 <과거가 없는 남자(The Man Without a Past, 2002)>, <황혼의 빛(Lights In the Dark,2006)>과 같은 작품으로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알리거나 수상한 이력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Leningrad Cowboys Go America, 1989)>라는 무뚝뚝한 (블랙) 코미디로 알게 된 감독이기도 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한 그의 신작 <르 아브르>는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한 조용한 항구 도시 르 아브르를 무대로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주인공 마르셀과 그의 이웃들은 물질적으로 결코 풍족하지 않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살고 있다. 구두닦이인 마르셀은 매끼 바게트를 먹으면서도 포도주를 곁들이는 나름의 소박한 품위를 지키며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르 아브르의 항구에서 아프리카 난민들이 탄 컨테이너 박스가 발견되고, 이 컨테이너 박스를 탈출한 소년 이드리사를 마르셀이 숨겨주게 된다.


유럽 내 난민이나 불법 이민 문제는 꽤 심각하다고 한다. 최근 경기가 전반적으로 안 좋아지면서 자국 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합법적인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마저 곱지 않다. 영화에서도 프랑스 정부가 난민 캠프를 없애고 불법 난민들을 본국 소환 조치를 취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문제 자체가 아닌, 엄마를 찾아 런던을 향하는 한 소년을 둘러싼 이웃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듯 TV는 이내 꺼진다.

가뜩이나 무표정한 얼굴들을 클로즈업한 정지 화면이 많은 탓에 영화에는 정적이면서도 살갑지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지만 배고픈 소년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먹이고 재워주는 마르셀과 소년을 돕는 이웃들에게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온정이 느껴진다. 거기다 입원한 아내에게 꽃 선물을 잊지 않는 마르셀과 소녀처럼 그를 맞이하는 아를레티, 파인애플을 든 경감의 투정, 인자한 웃음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클레어를 비롯한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온기와 순수가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나온다.

“위험할 때는 우리를 부르면서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직업이지”
– 모네 경감의 짧은 이 한마디에도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과 유머가 숨어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지키느라, 혹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며 이런 작지만 중요한 것들을 잊곤 한다. 지친 자신을 달래기 바빠 주변을 소홀히 하게 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감독 특유의 유머가 숨어있는 이 영화는 디지털보다는 오래된 필름의 느낌이 난다.  등장인물들은 표정마저 숨어버린 깊은 주름 속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낭만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을 돌아보게끔 한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르 아브르는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곳일지도 모른다.


***
제목: 르 아브르(Le Havre, 2011)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
출연: 앙드레 윌름스(Andre Wilms, 마르셀), 카티 오우티넨(Kati Outinen, 아를레티), 장 피에르 다루생(Jean-Pierre Darroussin, 모네 경감)
장르: 드라마, 코미디
제작국가: 핀란드, 프랑스, 독일
각본: 아키 카우리스마키
촬영: 티모 살미넨(Timo Salminen)
***


+. 영화 이야기 하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그의 ‘프롤레탈리아 삼부작’인 <천국의 그림자>, <오징어 노동조합>, <아리엘>과 ‘빈민 삼부작’인 <떠도는 구름>, <과거가 없는 남자>, <황혼의 빛>에 이어 <르 아브르>를 시작으로 ‘항구도시 삼부작’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항구도시인 비고(Vigo)를 배경으로 한 다음 편의 제목을 <The Barber of Vigo>라고 지어두었다는 감독이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 독일로 이어질 다음 작품들에서 어떤 문제를 조명하며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오른쪽이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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