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웨딩 (Nunta Muta, 2008)
사일런트 웨딩 (Nunta Muta, 2008)
– 재치 있는 모순으로 그린 전쟁의 비극
‘지옥에나 가버려’라며 욕을 퍼붓고 주먹을 내밀다가도 사위, 사돈 됐다며 껄껄 웃으며 술잔을 든다. 공산당이 가진 것을 다 빼앗아갔다며 술병을 기울이면서도 그래도 빼앗길 수 있는 만큼 가지고 있었던 게 어디냐며 껄껄하고 웃어버린다. 이제부터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공산당원에게 콧방귀를 뀌며 비꼬아 댄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영사기를 돌리고,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영화를 보며 눈물 짓던 사람들은 공산당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배를 잡고 웃는다. 서커스가 마을을 찾은 날 소련군에 의해 죽게 된 소녀의 장례식에서도 키득대며 웃는, 웃을 수 없는 상황에 더 크게 웃는 사람들이 사는 루마니아의 한 마을의 이야기는 시작부터가 아이러니 투성이다.
<사일런트 웨딩>이라는 제목처럼 이안쿠와 마라의 결혼식이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 스탈린의 죽음으로 소련군은 애도기간 중 집회와 웃음, 결혼, 장례식 등을 모두 금지시키는 데 하필 이 날이 결혼식 당일이다. 일주일은 족히 먹을 고기와 빵을 준비하고 한껏 들떠있는 마을 사람들은 화도 내지 않고 금방 자리를 뜬다. 그리고 해질녘 조용히 테이블을 옮기며 모인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컵을 천으로 싸고, 포크와 나이프 대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집시들은 악기를 천으로 막고 연주하는 시늉을 한다. 소리를 낼 수는 없지만 웃고 마시고 즐기며 순탄하게 결혼식이 진행되는 것 같다.
사실 순탄하다는 표현 자체가 모순이다. 가장 흥겹고 시끄럽게 웃으며 즐겨야 할 결혼식에서 말 한 마디조차 건넬 수 없는 상황이 순탄할 리가 없다. 어떻게 하루를 잘 넘기나 했더니 결국 참지 못한 신부 마라는 춤을 추다 울음을 터뜨리고, 신부의 아버지는 ‘결혼식이잖아!’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내 결혼식에는 음악이 퍼지고 웃음 소리가 넘친다. 그러나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잠시, 소련군은 탱크를 몰고 와 집을 부수고 남자들을 모조리 잡아간다. 결혼식 날 피로 얼룩진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표정은 너무나도 비극적이다. 가장 기쁜 날 아버지와 남편, 친구, 가족을 모조리 잃는다.
황량한 기운이 도는 마을의 현재 모습은 웃음이 넘치던 과거와 상반된다. 공산당이 들어와 건물을 헐고 공장을 지은 마을은 또 다시 정권이 바뀌어 공장이 헐리고 리조트가 들어선단다. 씁쓸한 표정조차 잃은 현지인들 대신 마을을 취재하러 온 외지인들은 까닭 없이 자꾸 웃는다. 잃어버린 웃음을 채우려는 것처럼 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의 비극을 그린 이 영화는 풍자와 해학이 가득하다. 상반된 분위기와 장면을 영화의 곳곳에 배치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전쟁은 어떠한 당위성이나 명분에도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모순적으로 강조한다. 그래서 더 짠하고, 그 여운이 더욱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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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일런트 웨딩(Nunta Muta, Silent Wedding, 2008)
감독: 호라티우 말라엘(Horatiu Malaele)
출연: 메다 안드레아 빅토르(Meda Andreea Victor, 마라), 알렉산드루 포토신(AlexandruPotocean, 이안쿠)
장르: 코미디, 드라마
제작국가: 루마니아, 프랑스, 룩셈부르크
각본: 호라티우 말라엘(Horatiu Malaele)
촬영: 비비 드래갠 바실(Vivi Dragan Vas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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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로그>
사일런트 웨딩
메다 안드레아 빅토르,알렉산드루 포토션,발렌틴 테오도시우 / 호라티우 마라엘레
나의 점수 : ★★★★★
–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이 영화는, 상반된 분위기와 장면을 배치해 전쟁의 비극을 역설한다. 웃음 뒤에 오는 여운이 더 길다.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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