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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an 2013] 페인리스 (Insensibles, Painless, 2012)

[PiFan 2013]
페인리스 (Insensibles, Painless, 2012)

1930년대 스페인의 한 마을, 태어날 때부터 어떠한 신체적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발견된다. 의도하지 않게 스스로와 타인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어른들의 판단 하에 아이들은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된다. 동시에 현대에서는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 다비드가 백혈병 선고를 받고 골수 이식을 위해 혈육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현대와 과거를 오가며 아이들의 비극적인 성장기와 암담한 스페인의 역사가 뒤엉킨 실타래 속 비밀들은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선뜻 떠올리기 힘들다. 사람은 본능에 따라 고통을 피하려 하기 때문인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본능이라는 것이 없다면 딱히 피할 이유도 없어진다. 그러니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거나 칼로 그어도 누군가가 고통을 학습시켜주기 전까지는, 혹은 죽기 전까지는 그러한 행위가 계속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가해 행위가 한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의 접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스로 한계를 시험하거나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위험해진다. 이러한 우려에서 아이들은 격리되고, 시설에서 인간의 몸을 해부하고 탐구하며 고통을 학습한다.

사실 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고통은, 영화의 원제인 ‘Insensibles’에서 유추할 수 있듯, 어디까지나 감각에 한정된다. 즉, 감각 기능의 부재로 오감을 통해 고통을 느낄 수 없을 뿐, 정신적인 고통에는 여전히 유약하다. 그러나 ‘정상’이 아닌 이들의 고통은 누구도 헤아려주지 않는다. 분노하고 괴로워하지만 묵살당하거나 발견되지 못한 채 이용당한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아이들은 자신도, 타인도 이해하고 공감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더욱더 고립되어 간다.


영화에는 암울한 스페인의 근현대사가 투영되어 있다. 스페인 내전과 독재 정권을 거치며 점점 폭력과 고통에 무감해지고, 또 희생당해야 했던 역사는 베르카도의 상처처럼 구석구석 깊게 새겨져 있다. 비극적인 역사의 끝에 선 가해자들은 결국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속에도 가혹한 희생자였던 베르카도는 보복보다는 용서를 택한다. 불길에 휩싸인 베르카도가 다비드에게 자유를 외칠 때 역설적이게도 가장 큰 희망이 느껴졌다.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벌어진 일을 돌아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논란의 여지도, 해석도 분분하지만 역사를 부정하거나 괄시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이 영화는 여러모로 우리에게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끝까지 자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과거의 고통과 어려움을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숙제가 아닐까.

***

제목: 페인리스(Insensibles, Painless, 2012)
연출: 후앙 카를로스 메디나 (Juan Carlos Medina)
각본: 루이소 베르데조(Luiso Berdejo), 후앙 카를로스 메디나 (Juan CarlosMedina)
출연: 토마스 레마르퀴스(Tomas Lemarquis, 베르카도), 데릭 드 링(Derek De Lint), 리처드 펠릭스(Richard Felix)
장르: 드라마, 공포
제작국가: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촬영: 알레한드로 마르티네즈 AlejandroMartin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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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와 역사,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은유가 가득한 이 영화는 감독의 첫 연출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짧은 GV였지만 진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 개인적으로는 스페인 내전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한 <슬픈 트럼펫 발라드(The Last Circus,2010)>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수작이라고 생각.

<짧은 감상>

나의 점수 :

★★★★☆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에 암울한 스페인의 근현대사를 투영했다.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사람들과 비극적인 시대상에 대한 은유가 가득한 영화 속에서 역사를 부정하거나 괄시하지 않고 마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우리에게도 그 의미가 남다른 영화일 것 같다.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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