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 예의상 권하는 커피는 거절하는 게 상책
자라면서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법한 아이들의 싸움이다. 싸우다가 한 아이가 날린 주먹에 다른 아이가 코피를 흘리고 이가 부러질 수 있는 그런 싸움이 발단이다. 자녀들의 싸움을 어른의 방식으로 원만하게 해결하려던 두 부부의 만남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애들 싸움보다 더 유치하고 치졸한 싸움으로 번진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든 것 같다. 우아하고 이성적인 어른들의 만남은 토사물로 얼룩지고 육탄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술주정이 오간다.
원작인 동명의 연극 <대학살의 신(God of Carnage/Le Dieu du carnage>은 2006년 초연 후 영어로도 번역되어(원작은 프랑스어) 브로드웨이에서도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작품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이 연극을 스크린 속 또 다른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그렇다. 또 다른 연극. 연극이 가진 시공간적 제약은 영화를 통해 극복되기보다는 영화의 장치로 활용한다. 공간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등장 인물을 한정한다. 부연 설명이나 특수 효과는 동원되지 않고,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은 상영 시간인 80분과 일치한다.
품위 있고 고상한 네 어른들의 만남은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예의상 문 앞에서 건네는 ‘커피라도 한 잔하고 가시죠?’라는 말에 멈춰서지 말았어야 했다. 맞은 아이의 부모인 페넬로피와 마이클은 때린 아이의 부모인 낸시와 앨렌의 만남은 품위 있고 교양을 갖춘 어른으로서 큰 마찰 없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 놈의 커피로 우아하고 고상한 어른의 탈은 이내 벗겨진다. 네 어른들은 아이의 부모로서 맞서다가 여자와 남자로 편이 갈리기도 하고, 신경질적인 여자 하나와 나머지로 나눠지기도 하면서 언쟁을 벌인다. 교양과 품위란 그리 가벼운 것이었던가. 노란 튤립과 희귀본 책들로 장식한 테이블은 토사물 범벅이 되고,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는 흐트러지며 큰 소리가 오가는 와중에 술잔이 채워진다. 입장과 견해의 차이에 따라 부부라는 사회적 결속이 쉽게 와해되기도 하고 새로운 결속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이 역시 이내 깨진다. 폭풍우 같은 언쟁이 몰아치고 난 후 남는 것은 취기에, 언쟁에 지쳐 풀린 눈과 진동하는 휴대폰, 허탈한 웃음 뿐이다. 결국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교양과 품위는 가면 아래 숨겨두었던 본 모습의 등장으로 그야말로 ‘학살’된다.
다양한 장치가 동원될 수 있고 덕분에 시선과 관심이 분산될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무대 위 배우들에 의해 재미가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탄한 희곡과 세련된 무대 연출이 뒷받침되었다고 해도 전달자인 배우들의 연기가 그에 미치지 못했다면 재미없는 연극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연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활용한 이 영화역시 마찬가지다. 네 배우의 쟁쟁한 연기력 덕에 80분이 총알 같이 지나간다. 넷 중 한 명이라도 빈틈을 보였다면 팽팽한 긴장감에 이내 균열이 생기고 보느니만 못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속이 시원해진다.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라는 명분으로 억지 웃음 밑에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욕설을 억누르다 응어리진 채 쌓여있던 무언가가 폭발하는 느낌마저 든다. 교양과 품위의 대학살 현장이라지만, 차라리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고 눈물을 흘리는 편이 더 인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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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학살의 신(Carnage, 2011)
연출: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각본: 로만 폴란스키,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
출연: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페넬로피 롱스트리트),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 낸시 코원), 크리스토프 왈츠(Christoph Waltz, 앨런 코원), 존 C.레일리(John C.Reilly, 마이클 롱스트리트)
장르: 드라마, 코미디
제작국가: 프랑스, 독일, 폴란드, 스페인
촬영: 파월 에델만(Pawel Ede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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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영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휴. 제작부터 기다린 영환데!
+ 휴대폰. 어우. 속이 다 후련하더라. 크크.
<짧은 감상/라이프로그>
조디 포스터,존 C. 라일리,케이트 윈슬렛 / 로만 폴란스키
나의 점수 : ★★★★
애들 싸움에는 어른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이들의 싸움으로 시작되어 치졸한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면서, 교양과 품위는 ‘대학살’된다.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겨온 듯한 이 영화는, 배우들의 쟁쟁한 연기가 없었다면 시작도, 완성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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