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 정의를 향한 조용한 승리의 드라마
1976년 미국 보스턴. 한 남자가 다급한 표정으로 경찰서로 들어온다. “언론은?” 지방 검사인 그가 묻자, 나이 든 경찰이 별일 없다는 익숙한 대답이 이어진다. 주교와 지방 검사를 태운 검은 차가 눈발이 서린 길을 빠져나가고, 그 뒤로 의구심이 서린 젊은 경찰의 눈길이 따르다 이내 담배 연기처럼 사라진다.
2001년 7월 보스턴. 지역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에 신임 편집장 마티 배런이 부임한다. 그가 지역 교구 신부의 아동 성추행을 다룬 칼럼을 두고 의견을 묻자,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스포트라이트’ 팀의 후속 취재는 한 명의 신부에서 지역 사회 곳곳으로 확장되며 거대한 그림자를 파헤친다.
당시 보스턴에 있던 신부 중 6%, 즉 90여 명이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믿기 힘든 가설이 세워진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어른이 된 희생자들은 악몽 같았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들은 소임을 다한 것일 뿐이라며 외면한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교회의 압박과 주변의 싸늘한 시선이 더해진다.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는 마침내 2002년 1월 6일 <교회, 수십년에 걸친 신부의 성범죄를 용인하다(Church allowed abuse by priest for years)>라는 심층 보도의 첫 기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기사를 필두로 600여건의 후속 기사가 발표되고, 보스턴 지역 사회는 물론, 카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충격을 준다.
보스턴 글로브의 교회에 대한 심층 취재를 담은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도, 기자들의 영웅담도 아니다. 조각난 현실에서 진실이라는 큰 그림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대한 영화다. 특정 사건이나 캐릭터가 아닌, 과정에 포함된 희생자, 경찰, 변호사, 언론의 얼굴을 두루 담담하게 담는데 공을 들였다.
영화의 감동은 역설적으로 “실제 사건에 기반한 영화”라는 가장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무감각하게 흘려 보낸, 혹은 최선을 다해 추구한 정의마저 잘못된 그림의 일부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외면한 양심을 바로잡으려는 의지, 무기력에 길들여지지 않고 부조리를 호소하는 끈질긴 노력, 이 모든 것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증명한다. 함께 이루어낸 조용한 승리의 드라마가 현실이라는 자체가 벅찬 감동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디며 지냅니다. 그러다 갑자기 불이 켜지면 비난할 거리들이 가득이죠. (Sometimes it’s easy to forget that we spend the most of our time stumbling around in the dark. Suddenly a light gets turned on, and there’s a fair share of blame to go around)”
정의를 호소하는 목소리를 미쳐 듣지 못한 언론을 향해 많은 이들이 비난의 화살을 겨눈다. 그 화살의 끝을 향해 마티 배런이 한 말이다. 세상에 완벽한 정의란 없다. 중요한 것은 설사 어둠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고, 인정하고, 더 나은 정의를 향해 모두가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다. 정의의 불씨가 우리 안에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출처: 영화 스포트라이트 공식 페이스북)
정의를 향한 여정에 감동을 느끼고 박수를 보낸 것은 퓰리처와 아카데미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런 것처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함께하고, 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것이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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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2015)
- 연출: 토마스 맥카시 (Thomas McCarthy)
- 각본: 토마스 맥카시 (Thomas McCarthy), 조쉬 싱어 (Josh Singer)
- 출연: 마크 러팔로 (Mark Ruffalo, 마이크 레젠데스), 레이첼 맥아담스 (Rachel McAdams, 샤샤 파이퍼), 마이클 키튼 (Michael Keaton, 월터 로빈슨), 리브 슈라이버 (Liev Schreiber, 마티 배런), 존 슬래터리 (John Slattery, 벤 브래들리 주니어), 스탠리 투치 (Stanley Tucci, 미첼 개러비디언), 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 (Brian d’Arcy James, 맷 캐롤)
- 장르: 드라마, 스릴러
- 제작국가: 미국
- 촬영: 타카야나기 마사노부 (Masanobu Takayanagi), 브랜든 제임스 맥스햄 (Branden James Maxham), 질 코빌 (Gilles Corb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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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는 조용하고 침착한 인물로 그려진 당시 신임 편집장 마티 배런은 실제 ‘탐사 보도(investigative journalism)’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물.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에 지역의 현상과 주제를 다루고, 이를 깊게 파고드는 탐사 보도(local and investigative journalism)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의 시선과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을 파고들라는 그의 요청은 월터 로빈슨을 비롯한 스포트라이트 팀과의 팀플레이로 실현된다.
마티 배런과 그를 연기한 리브 슈라이버 (출처: 영화 스포트라이트 공식 페이스북)
++. 마티 배런이 문서 공개 요청을 위해 법원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에 발행인도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독자의 50% 이상이 카톨릭 신자인데 어떤 영향이 줄 것 같은지,를 묻고는 (다소 흔쾌히) 이를 승인한다. 실제 조금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쳤더라도 신문사 전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선뜻 상상하기 힘든 이상적인 상황이라는 생각.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배우와 실제 글로브 기자들(출처: Boston Globe, The real people behind the ‘Spotlight’ characters)
+ 영화를 본 실제 글로브 기자들은 물론, 전 세계 언론인들이 호평과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스크린에 현실 전체가 오롯이 옮겨지기 어렵다는 한계에도, 진정한 저널리즘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조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 언론, 혹은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른 글로 좀더 정리해볼 계획.
**별점을 주자면: 9.5/10 (스토리:10, 비주얼:8, 연출:10, 연기:10)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Boston Globe, 영화 스포트라이트 공식 페이스북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있습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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