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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016,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2016)
– 결혼이 끝이 아닌, 사랑에 대한 이야기

보통의 책은 늘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번역만의 문제가 아닐 복잡한 문장과 (주입식 교육의 놀라운 성과로 각인된) ‘전지적 작가 시점’을 넘어 전지적 ‘참견쟁이’ 시점 혹은 과도하게 친절한 주석은 여전하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신작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시험한다. (* <우리는 사랑일까> 감상)

일을 통해 만난 커스틴과 라비는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통상의 연애 소설이 여기까지의 과정을 극적으로 그리는데 비해, 보통의 책에서는 고작 1장(章), 20%에 그친다. 책에는 집에 둘 물컵을 사러 갔다 싸우고 돌아오는 신혼부터 출산과 육아, 일과 돈, 권태, 외도, 그리고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된’ 부부의 20여년이 담겨있다.

상대의 재력, 집안 등 오직 ‘이성’적으로만 판단했던 결혼이 낭만주의라는 극단을 취하면서 괴리가 생긴다. 사랑이라는 감정, 완벽한 상대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환상은 비극을 만든다. 보통은 사랑은 ‘단순한 열정을 넘어 기술’이며, 결혼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자 함께 하는 이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낱낱이 주목하지 않고 한 해 한 해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라고 전한다.

사랑과 결혼, 행복에 크나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자문해본다. 대부분의 갈등은 완벽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러나 완벽할 수 없는 인간에게서 시작된다. 5분 혹은 그보다 짧은 완벽한 순간은 존재해도 완벽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인정하면서부터 관계와 감정, 육아와 집안일, 업무와 커리어를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과 긴장이 즐비한 보편적인 일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완벽한 한 쌍에 대한 판타지 너머 지혜롭게, 흔쾌히 취향의 차이를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속하든 아니든, 가까이할 수록, 깊어질 수록 늘어가는 실망감을 극복하고 조금은 덜 외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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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The Course of Love, 2016)
지은이: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옮긴이: 김한영
출판: 은행나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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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쉽게도 보통의 이번 작품은 우리 주변의 현실이자, 갈등과 시련의 원천인 ‘in-laws’ 즉, 인척에 대한 부분은 크게 다루지 않는다. 커스틴과 라비의 이야기는 보다 개인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다. 인척이 엮인 이야기라면 1권으로 끝나기 어려웠을지도, 혹은 이렇게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 ‘외도’를 다룬 부분을 읽고 있자면, 배신자의 감정을 옹호하는 기분이 들어 썩 유쾌하지 않다. 그런 부분마저 참견자이자 관찰자로서 거리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밑줄 긋기

++ 연인이 ‘완벽하다’는 선언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징표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상당히 실망시켰을 때 그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알기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은 근본에 있어서는 불완전할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낯선 사람, 옛 동창생, 인터넷에서 사귄 새로운 친구 등도 우리를 실망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삶의 현실은 우리의 모든 본성을 변형시킨다. 상처 없이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이상에 못 미치는 양육을 받았다. 우리는 설명하기보다 싸우고, 알려주기보다 들볶고, 고민거리를 분석하기보다 초조해지고, 거짓말을 하고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려 탓을 한다.

이렇게 위험 요소들이 중첩되어 있는 와중에 완벽한 인간이 나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p. 278-279, 결혼할 준비가 되다)

++ 결혼이라는 새장 안에서 집안 살림, 친인척, 청소 분담, 파티, 식료품 가은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 당연히 ‘까다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허물이 아니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일 뿐이다. 대개 난감한 것은 결혼이란 제도이지, 관련된 개인들이 아니다. (p. 281, 결혼할 준비가 되다)

++ 대부분의 러브스토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자신의 실제 관계는 거의 다 하자가 있고 불만족스럽다. 많은 경우 별거와 이혼이 불가피해 보이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우리를 자주 잘못 인도하는 미적 매체들이 부과한 기대에 따라 우리의 관계를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못은 삶이 아닌 예술에 있다. 불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우리 자신에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 시작에만 너무 얽매여 있지 않은 이야기, 완벽한 이해를 약속하지 않는 이야기, 우리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고 사랑의 여정에서 거쳐 갈 길이 우울하더라도 희망적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p. 284, 결혼할 준비가 되다)

– 본문 이미지 출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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