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Spy Nation, 2016)
자백 (Spy Nation, 2016)
– ‘나쁜 나라’에서 소수의 정의가 이루어 낸 값진 증명
헐리우드는 냉전 시대를 회고하며 근사하게 입고 행동하는 ‘스파이’라는 캐릭터를 유통한다. 007이나 제이슨 본은 현대에서 활동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를 본뜬 것일 수도 있지만, 먼 이야기처럼 보이는 건 매한가지다.
반면, 분단이 현실인 우리나라에서 ‘간첩’은 현재진행형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무심한 내 기억에는 종종 크고 작은 정치 스캔들이 터질 때 갑작스레 간첩 혐의를 받은 인물이 대서특필되었던 것 같다. ‘종북’이니 ‘빨갱이’, ‘반공’과 같은 단어는 일상에서 실제보다 왜곡된 공포를 드러내며 사용된다.
다큐멘터리, 특히 정치적인 소재를 한 작품은 조심스럽다. 만든 이의 생각이나 관점이 직관적으로 보일 때는 덜하지만, 교묘한 비틀기나 은근한 표현으로 ‘선동’되는 경우도 적잖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를 외면하기 힘든 건 그들의 시선이 불편한 사회의 이면에 조금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다큐멘터리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기 급급한 콘텐츠의 범람 속에 잊혀 가는 역사와 우리의 어두운 모습, 대중과 개인 미디어를 타고 보이는 화려함 뒤에 숨은 부조리한 일상을 담으려 노력을 기울인다.
영화 <자백>은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는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다. 그를 따라 한국에 정착하고자 했던 여동생은 6개월에 걸친 국정원의 조사 끝에 ‘자백’한다.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최승호 PD 겸 감독은 진실을 좇아 한국, 일본, 중국을 오간다. 유우성 씨 사건으로 시작된 영화는 75년 11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후 40년 만에 혐의를 벗고 무죄 판결을 받은 재일 교포 이철 씨 등에 이른다.
영화는 간첩의 유무가 아닌, 무고한 개인이 국가와 언론의 합동작전으로 부지불식간에 간첩으로 몰릴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갖은 고문과 협박, 폭력으로 강요된 ‘자백’을 받아낸 국정원, 중국 정부의 문서마저 위조하는 검찰청, 혐의만으로 범죄자로 여론을 몰아가는 대형 언론사의 협공에 무너지지 않을 개인이 과연 있을까.
모든 것이 어두웠던 유신 정권에서 나아진 게 많지 않은 지금에 긴 한숨이 나온다.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정치와 언론의 끈질긴 유착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날조된 증거로 타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도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웃는 이들이 사회를 움직인다. 한탄스럽고 무기력한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굽히지 않는 노력으로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나쁜 나라’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영화 <자백>의 개봉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이자 소수의 정의가 이루어 낸 값진 증명이다.
정치 성향을 떠나 진실을 파고드는 이들, 정의를 위해 현실의 벽 앞에서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싸우는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많은 이들이 영화 <자백>을 보고, 또 함께했으면 한다.
영화 말미에 70년대부터 쉼 없이 이어지던 간첩조작사건의 목록이 빠르게 지나간다. 97년을 기점으로 중단되었다가 2011년 다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간첩조작사건은 어떤 의미일까. 보이지 않는 검은 세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불길한 암시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우리에게는 부끄러운 과거를 마주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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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자백 (Spy Nation, 2016)
- 연출: 최승호
- 각본: 정재홍
- 출연: 최승호
- 장르: 다큐멘터리
- 제작국가: 한국
- 촬영: 최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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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개월이 넘는 추적 끝에 드러낸 진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모습을 보일 때 극장 안에 한숨과 탄식이 이어졌지만,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한 줄기의 희망을 본 느낌이다.
+ 그리고 여느 블랙코미디보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 취재를 영화로 만들어낸 탐사보도 전문 독립언론 ‘뉴스타파’ 바로가기 (& 후원하기)
**별점을 주자면: 8.0/10 (스토리:9, 비주얼:7, 연출:8)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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