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Ghost in the Shell, 2017)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Ghost in the Shell, 2017)
– 과거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으로

사람을 도우려 했던 기술은 사람을 닮으려 했다. 바퀴를 단 로봇은 다리를 가지게 되었고, 두 다리로 서서 걷고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이제는 사람이 감내할 수 있는 속도와 용량을 뛰어넘어 스스로 생각하려 한다. 흥미진진했던 상상 속 미래는 점차 기대보다 우려에 무게가 실린다.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스크린에 그린 <공각기동대>는 뇌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기계화된 사이보그와 일부 혹은 아무 조작도 하지 않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의 이야기다. 데이터가 된 생각과 기억은 목 뒤에 연결된 케이블을 따라 공유되고, 외형(의체)은 간단하게 재생산된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 사회에 현대인이 그토록 집착하는 외형은 정말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걸까, 영혼/고스트/정신이 외형과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존재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와 같이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맴돈다. 모든 질문은 궁극적으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를 향한다.

이후 <공각기동대>는 카미야마 켄지 감독과 키세 카즈치카 감독을 거치며 공안 9과의 탄생 비화를 다룬 Arise 까지, TV와 스크린으로 이어진다. 철학적인 질문을 느슨하게 풀며 1시간 반의 영화에 담기 어려웠던 SF 메카닉의 재미와 긴장감을 곁들였다.


만화나 책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를 거치며 ‘잘해봐야 평타, 전작에 조금만 못 미쳐도 질타’를 받는다. 원작 팬들의 걱정 속에 개봉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 대한 평 역시 엇갈린다. 큰 인기를 끌었던 TV판 <공각기동대 SAC(Stand Alone Complex)>가 총 2기, 52편 (OVA 포함 53편)에 걸쳐 쌓은 스토리와 이미지를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영화가 뛰어넘었다면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었을텐데, 역시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화 속 강렬한 색감이 어우러진 도시는 과거 공각기동대가 그린 미래의 모습에 좀더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80년대 상상했을 법한 2030년 홍콩의 분위기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에 대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공안 9과의 캐릭터는 세심하게 스크린으로 옮겨졌고, 최근 4-5년 간 액션, SF 캐릭터를 소화해온 스칼렛 요한슨의 사이보그에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USB(<루시>)와 OS(<그녀>)가 되었던 그녀 아니던가.)


영화는 애니메이션 팬을 고려한 장치들을 디딤돌 삼아 독자 노선을 펼친다. 기억이 조작된 인간 혹은 사이보그가 출생의 비밀 앞에 좌절하지 않고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예측가능한 헐리우드식 전개는 당초 예상한 ‘루시’보다는 <레지던트 이블>의 ‘앨리스’를 연상시킨다. 정체성에 의구심을 품던 주인공 미라 킬리언은 인형사와 쿠제 히데오를 한데 섞은 사연 많은 사이보그와 쿠사나기 모토코를 뒤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 원작의 무게감 속에서도 ‘필사’에 그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 드러난다.

전작의 그림자가 짙을 수록 차기작들은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지 못한다.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해온 작품이라면, 치밀한 비교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대체로 혹평이 뒤따른다.)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을 기존 설정을 빌린 새로운 작품이라 본다면, 명작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더라도 좀더 대중적인 취향으로 다듬어져 즐길거리가 꽤 있다. 되려 원작 팬을 고려해 생략된 부분인지 광학 미체나 전뇌화, 의체와 같은 공각기동대 특유의 설정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아쉽다. 처음 접한 관객이라면 미라 킬리언이 왜 외투를 벗고 뛰어내리는지 이해하게 어려웠을 거다.

“기억이 우리를 정의한다고 믿지만, 우리를 정의하는 건 행동이다.”

기억의 편린에서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미라 킬리언에 오우레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원작이 존재하는 한, 재현된 작품은 원작이 만들어 놓은 우리의 기억과 끊임없이 비교당할 것이다. 그러나 좀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서 한 걸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작품에도 관용과 응원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썼다. 원작이 있는 작품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틀을 흔들며 더욱 많은 변형이 그 자체로 온전히 인정 받기를 기원한다. 다양한 변형 속에 과거를 뛰어넘는 세기의 걸작이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메이저’는 시종일관 거슬린다.)

***

  • 제목: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Ghost in the Shell, 2017)
  • 연출: 루퍼트 샌더스 (Rupert Sanders)
  • 각본: 윌리엄 휠러 (William Wheeler)
  • 출연: 스칼렛 요한슨 (Scarlett Johansson, 메이저), 마이클 피트 (Michael Pitt, 쿠제), 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 오우레 박사), 요한 필로우 애스백 (Pilou Asbaek, 바토), 기타노 타케시 (Takeshi Kitano)
  • 장르: SF, 범죄, 액션
  • 제작국가: 미국
  • 촬영: 제스 홀(Jess Hall)

***

+ 이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 가득.


+ 타치코마 보고프다.

**별점을 주자면: 7.5/10 (스토리:7, 비주얼:8, 연출:7.5, 연기: 8)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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