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라이프 (Life, 2017)

라이프 (Life, 2017)
– (우주, 그리고 이곳에서) 공존이 위해 필요한 것들

영화 <라이프>에는 6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선장, 생물학자, 엔지니어, 의사, 검역관 등 자원과 기회가 극히 제한된 우주에서 미지의 생명체를 연구하기 위해 엄선된 전문가들이다. 분야가 다른 만큼 주어진 역할과 책임도 상이하다. 대의적인 사명감, 개별적인 임무에 따른 책임, 내면의 욕망은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공간에서 합의된 규칙에 따라 순조롭게 통제된다.

균열은 한 사람의 내면적 욕구가 합의된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면서 시작된다. 호기심과 초조함으로 공격적인 실험을 밀어붙인 생물학자의 행동으로 생명체는 걷잡을 수 없는 위협이 된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관리되던 산소조차,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 우주정거장 밖으로 뿜어내는 극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우주를 유영하던 이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는다. 소매 한 켠의 국기만큼 다양한 배경과 이야기는 참혹하게 종결되고, 인류의 꿈이 모여 지구 밖을 맴돌던 우주정거장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난다.

외계 생명체에 맞서 싸우는 SF 재난스릴러 <라이프>의 진정한 재난은 사람에서 비롯된다. 동일한 문제를 두고도 각기 다른 입장으로 충돌이 일어나고 균열이 커진다. 영화 속 상황은 흡사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같다. 다수가 공존하기 위해 마련한 법과 규칙이라는 마지노선이 무너지며, 개개인이 살기 위한 투쟁만이 남은 상태다. 비극은 우주정거장에서 끝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한 한 사람 때문에 전인류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지극히 인간적인’ 실수는 실험실 속 인큐베이터에서도 발생한다. 인간의 관성적인 오만함은 크기가 작고 생김새가 다른 개체를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보다 하등한 존재로 가정한다. 어찌보면 우주 생명체가 위협적인 존재가 된 건, 자체적인 공격성보다 자신을 위협한 상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들 들이쉬던 공기에 문제가 생기고, 자꾸 만져대거나 전기 막대기로 찔러대면 으르렁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인큐베이터 건너편 실험용 쥐의 불안한 숨소리와 눈빛을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라이프>는 과학적인 호기심과 실험의 허용 범위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언제나 호기심 많은 과학자가 문제’라는 반복적인 설정을 넘어, 거대한 위험이 따르는 연구의 결정권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개혁과 혁신을 위해 틀을 깨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건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소수의 결정에 따라 다수의 생명을 담보로 행한 연구가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이룬 발전이 결과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앞을 향한다고 믿고 있던 기술이 인류를 향해 날을 세울 때가 되어서야 진보가 아닌 위협이었다고 알 수 있는 걸까?

기술 발전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인간성에 의지하게 된다. 사람들은 역사 속 크고 작은 위기 앞에 때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 반해 대의를 향한 사명감과 용기를 모았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 역시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선의가 언제나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것은 아니듯 영화의 마지막도 그렇지 않지만, 인류가 아주 운이 없었던 쪽이지 그들의 의도와 결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영화 <라이프>는 우주 공간에 비약적으로 축소된 인간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그래서 영화의 메시지는 우주정거장 밖 지구 위에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다양한 사람과 문화, 나아가 자연, 미지의 생명체가 공존하기 위해 어떤 태도로 무엇을 지키고, 의심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나저나 폭발적으로 성장한 우주 생명체는 인류에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순도 높은 산소와 온도가 유지되던 우주선과는 달리 지구에는 숱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조기 사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남는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생명체로 인정해줄 만하다.

***

  • 제목: 라이프 (Life, 2017)
  • 연출: 다니엘 에스피노사 (Daniel Espinosa)
  • 각본: 렛 리즈 (Rhett Reese), 폴 워닉(Paul Wernick)
  • 출연: 제이크 질렌할 (Jake Gyllenhaal, 데이빗 조던), 레베카 퍼거슨 (Rebecca Ferguson, 미란다 노스), 라이언 레이놀즈 (Ryan Reynolds, 로리 애덤스), 사나다 히로유키 (Hiroyuki Sanada, 무라카미 쇼), 앨리욘 버케어 (Ariyon Bakare, 휴 데리), 올가 디호비치나야 (Olga Dykhovichnaya, 예카테리나 골로브키나)
  • 장르: SF, 스릴러
  • 제작국가: 미국
  • 촬영: 시머스 맥가비 (Seamus McGa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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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은 연쇄살인마나 범죄자에 별칭을 붙이기를 좋아하지만, 이는 대중에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반복적인 노출로 무의식적으로 친근감이 들게 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대상에 이름을 지어주는 건 본능 혹은 습관적인 행위이나, 함부로 행해서는 안되다는 걸 ‘캘빈’은 온몸을 다해 보여준다.

+ 영화 속 인물들의 상황, 가치관, 욕구는 암시적으로 드러나고 ‘미지의 생명체’라는 이름 하에 여러 의문점이 풀리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난다. 한편으로는 구구절절 설명했다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움도 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만큼 극장에서 보는 것을 권한다.

**별점을 주자면: 7.5/10 (스토리:7.5, 비주얼:7.5, 연출:8, 연기: 8)

–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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