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빛나는 (光, Radiance, 2017)

빛나는 (光, Radiance, 2017)
–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무언가를 본다. 본다는 행위는 대개 눈을 통한다. 마음으로, 느낌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전적 의미부터 통용되는 말은 대체로 눈을 통한 행위를 가리킨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을 그렇지 못한 처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암실에 들어가 벽을 더듬으며 부딪히고 넘어지는 경험은 거대한 암흑의 미립자 정도에 그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이들이 보는 세계가 거대한 암흑일지, 희미한 빛덩어리일지도 짐작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영화란, 책이란 무엇일까. 누군가가 읽어주는 소리나 점자라는 오돌토돌한 언어가 손끝에 닿는 책 읽기는, 눈으로 활자를 좇았다 멈추며 머릿속에서 분주하게 장면을 만들어가는 것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붉은 석양과 파란 하늘은 어떻게 그려질까. 세계를 눈에 잠시나마 담은 적이 있는 이와 날 때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한 이가 그리는 세계는 다른 모습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책을 읽는 것과는 달리,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눈이 보이지 않는 이가 접근하기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인물의 표정, 미장센, 간혹 소리 없는 여백의 순간 극대화되는 영상의 경험을 보지 않고 느끼기란 쉽지 않다. 장면의 색, 공기, 분위기를 고스란히 하나의 면에 담아내는 사진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 <빛나는>을 보며, 무언가가 ‘보인다’는 당연함이 아니라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누리고 있는 자연스러운 일상은 보이지 않는 순간 극도로 제한되거나 불가능해진다.

동시에, 불가능해진 일상의 끝이 절망뿐일 거란 막연한 두려움과 연민의 시선을 경계한다. 보이지 않는 이들은 볼 수 있는 이들이 대다수인 세계에 불편하지만 그들만의 일상과 세계를 만들어 간다. 가진 이가 가지지 못한 이를 향한 위에서 아래로의 시선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의 연민과 배려는 늘 어렵다.

영화 <빛나는>의 화면해설사인 미사코는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해 영화에 해설을 단다. 그러나 볼 수 있는 그가 고른 단어는 볼 수 없는 사람들에 닿지 않거나, 너무 많은 설명으로 상상을 방해하기도 하고 주관적인 해설로 감정을 강요한다. 한쪽의 배려는 되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상처로 돌아온다.


유명 사진작가였던 나카모리는 동전 크기보다 작아지는 시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그는 절망한다. 볼 수 있고 없는 이들이 고루 섞인 영화 해설 모니터링 그룹에서 미사코의 단어를 현실과 가깝게 볼 수 있는 그는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다.


좁혀지지 않던 미사코와 나카모리는 석양 앞에 선다.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 무상,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의 사무침. 미사코는 보낼 수 없던 아버지와 사라져 가는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나카모리는 카메라를 던져버리면서 각자의 세계가 지닌 무게감을 받아들인다. 소중한 것을 잃은 절망과 안타까움 속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삶을 받아들이며 그들의 마음에 빛이 차오른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남짓, 책 한 권, 사진 한 장 앞에서 누군가의 인생과 나는 연결되고 분리된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가능성으로 시선이 확장되고,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려 할수록 작은 나의 세계에 연민과 겸허가 생긴다.

그간 써내려간 글들을 돌아본다. 좋고 싫어서, 그저 나누고 싶어 써내려간 글들이 거대한 세계를 말로써 작게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기를, 누군가와 세계와 내가 경험한 무언가를 연결할 수 있기를, 겸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

  • 제목: 빛나는 (光, Radiance, 2017)
  • 연출/각본: 가와세 나오미
  • 출연: 나가세 마사토시 (나카모리), 미사키 아야메 (미사코), 후지 타츠야 (키아바야시, 주조), 코이치 만타로 (사노)
  • 제작국가: 일본,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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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빛나는> 속 영화와 같이 화면을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영화에 음성 해설을 삽입한 영화를 화면해설 영화라고 하며, 장애를 가진 이들이 영화를 볼 수 없는 장벽을 허물자는 의미에서 ‘배리어 프리 (Barrier Free)’ 영화라 부르기도 한다.

예컨대 영화 속 영화에서 대사 없이 주인공이 등을 보이며 모래 언덕을 올라가는 장면에 ‘베이지색 코트가 바람에 어깨를 떨구고 묵묵히 걸어간다. 석양이 강하게 내리쬐며 어깨너머로 비친다.’와 같은 해설을 더해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직은 화면해설이 더해진 영화도 적고, 상영 횟수, 시간대도 제한적이다. 제작 과정에서 고려되기보다 제작 후 더해지는 게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개방형으로만 상영된다고 한다. 대사와 음악, 소리 정보가 스크린에 뜨고, 스피커에서는 화면해설 음성이 함께 나오는 식. 이렇게 되면 비장애인들은 불필요한 자막을 보거나 해설을 들어야 해 편성을 늘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기사 참고)

영화 <빛나는>의 마지막 장면,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이어폰을 꽂고 볼 수 있는 이들과 영화관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우리나라에서도 멀지 않은 미래에 모두가 조금 더 자유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영화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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