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愚行録, Traces of Sin, 2016)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愚行録, Traces of Sin, 2016)
– 우린, 무엇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국을 뒤흔든 일가족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범인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주간지 기자인 다나카는 살해된 아내와 남편의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사건을 파고 들어간다. 비슷한 시기, 다나카의 동생 미츠코는 아동 학대 혐의로 수감된다.


영화의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출발점이 달랐던 두 사건의 조각난 기억들이 하나 둘 모이며 진실에 다가갈 때, 거짓과 진실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해진다.

화려한 액션도, 마음을 뒤흔드는 언변도 없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선을 그어 밀어내고, 밟고 올라서는 크고 작은 일상적인 계급 사회의 추악함, 가정 폭력, 근친상간… 자극적인 소재를 담은 영화는 많은 설명을 하지 않고 묵묵하고 묵직하게 나아가며, 답을 찾아가기보다 되려 많은 질문을 남긴다.

안다는 말의 무게를 종잡을 수 없어진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무언가를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영화 속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와 마주했던 순간을 자의적인 해석으로 포장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가벼운 앎의 말속에 놀아나며 진실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평생을 다해도 좀 더 큰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있을 뿐 진실에 닿지 못한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안온한 가벼움에 취해 점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나아가고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두려움이 커진다. 그렇게 조각난 과거를 진실의 전체로 믿고 사는 매일의 어리석음이 영화만큼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에 다행으로 여기고 사는 지금의 기록이 우행록이 아닐까.


수줍은 츠마부키 사토시의 얼굴은 어느새 초점 없는 눈빛으로 뒤덮인다. 평범한 일상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시작과 비슷하지만, 2시간 남짓의 영화로 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의혹이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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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愚行録, Traces of Sin, 2016)
  • 연출: 이시카와 케이
  • 각본: 무카이 코스케
  •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다나카), 미츠시마 히카리 (미츠코), 코이데 케이스케 (타코우), 우스다 아사미 (미야무라), 이치카와 유이 (메구미), 마츠모토 와카나 (나츠하라), 나카무라 토모야 (오가타), 마시마 히데카즈 (와타나베 마사토), 하마다 마리 (타치바나 미사코), 히라타 미츠루 (스기타 시게오)
  • 촬영: 피오트르 니에미스키
  • 제작국가: 일본

+. 개봉관이 몇 없어 오랜만에 멀리까지 영화를 찾아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영화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2010년대 초중반과 한 달에 몇 번 가는 둥 마는 둥 하는 요즘의 차이는 집밖을 나가지 않고도 손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IPTV의 영향도 있지만, 일부 영화의 상영관 독식에 볼 영화 자체가 많이 없기도 하다. 그때도 다양성이 자본의 힘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는데, 지금은 자본의 힘에 ‘다양성’이 포장되어 무엇을 잃은 것인지도 자각하기 힘들어졌다.

– 영화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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