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누구나 아는 비밀 (Everybody Knows, Todos lo saben, 2018)
– 의지(依支)와 기생(寄生)의 경계

 

의지(依支)하다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것에 몸을 기대다’, 혹은 ‘다른 것에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는다’이다. 의지의 대상은 먹을 거리, 입을 거리와 같은 유형, 종교, 신념, 가치관과 같은 무형의 무엇일 수도, 생의 접점에서 만나게 된 누군가일 수도 있다.

기생(寄生)하다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다’, 혹은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며 생활하다’이다. 누군가에 기대는 ‘의지’가 ‘기생’이 되는 건 양방이 주고 받는 것의 크기가 현저하게 다를 때다. 의지가 상대 혹은 서로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기생의 결과는 일방의 파멸이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에는 라우라 일가와 가까이 지내던 파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얼핏 보면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일지 알고 지낼 법한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휘저어 놓은 물과 기름처럼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결혼식을 마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광장으로 나오는 라우라의 가족들과 이를 바라보는 표정 없는 얼굴들 사이에서 물과 기름의 경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난다.

파코의 위치는 조금 복잡하다. 라우라와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었고, 라우라 일가를 위해 일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땅을 사서 수년 간 포도밭을 일궈냈다. 그는 라우라의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왕래하고 지내고, 베아와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마을을 찾은 라우라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적당한 거리와 위치를 유지하던 라우라 일가와 파코의 관계는 라우라의 딸 이레네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레네의 납치범은 거액의 돈을 요구하지만 성공한 사업가라 알려진 라우라의 남편은 사실 실직 상태이고, 나머지 일가는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를 유지하는 정도다. 궁지에 몰린 라우라는 파코를 찾아간다.

처음에는 시간을 벌기 위한 소문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파코를 움직이기 위해 가까운 타인이었던 관계를 뒤흔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결국 초조해진 라우라는 남편 알레한드로와 둘만의 비밀인 줄 알았던 ‘누구나 아는 비밀’을 파코에게 털어놓는다. 모두가, 심지어는 관객조차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이 비밀을 안타깝게도 파코와 파코의 아내 베아만 몰랐다.

파코는 자신이 일궈온 포도밭을 모두 팔아 돈을 마련한다. 홀로 가서 찾은 이레네를 라우라와 알레한드로에 넘겨주고 돌아온 집에 베아는 떠나고 없다. 라우라와 알레한드로, 이레네와 동생은 아르헨티나로 떠나고, 라우라 일가와 마을 사람들도 제자리로 돌아온다. 파코만이 모든 걸 잃었다.

집안의 대소사를 가족처럼 챙겨온 파코는 끝끝내 라우라의 가족에 편입되지 못한다. 도박으로 생긴 빚 때문에 팔게 된 땅을 파코가 샀음에도 자신의 가족 덕에 부를 쌓았으니 이를 취하는 것이 당당하다는 시선은, 그를 머슴이라 부르던 아버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뿐 일가의 공기에 보이지 않게 녹아 있다. 파코는 이용 가치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 허용되었을 뿐이다. 파코와 라우라 일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었던 베아만이 이들 간의 경계를 구분지으려 하지만 베아의 목소리는 격앙된 감정들 사이에 묻히고 만다.

파코는 숙주였고, 라우라 일가는 그에 기생했다. 딸의 납치라는 상황의 특수성이 낳은 일회적인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 모습이 기생 생물과 숙주 생물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기생 생물과 숙주 생물의 관계는 단발적이지 않다. 기생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숙주 생물에게서 영양분을 탈취하고, 숙주 생물은 영양분 외에도 기생 생물의 거주처, 혹은 환경 전체를 제공한다. 즉, 기생 생물은 숙주가 죽거나 사라지면 살 곳도, 먹을 것도 없어지기 때문에 숙주가 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영양분을 취하며 가능한 한 오래 붙어있는다. 라우라 일가는 파코의 주변에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긴 시간동안 파코의 마음과 재산을 취했고, 파코는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파멸에 이르렀다.


파코는 침대에 누워 허공을 바라본다. 슬픔이 찬 눈과 입꼬리가 올라간 얼굴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기이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파코는 마음도, 삶도, 사랑하는 이도 잃어야 했을까. 한편으로 딸을 살리겠다는 절박함에 휩싸인 라우라의 표정이 떠올랐다. 영화는 막을 내렸지만, 의지와 기생의 경계에 선 둘을 두고 머릿속에는 소용돌이가 일었다.


  • 제목: 누구나 아는 비밀 (Everybody Knows, Todos lo saben, 2018)
  • 연출/각본: 아쉬가르 파라디 (Asghar Farhadi)
  •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Penelope Cruz, 라우라), 하비에르 바르뎀 (Javier Bardem, 하비에르 바르뎀), 리카도 다린 (Ricardo Darin, 알레한드로)
  • 촬영: 호세 루이스 알카인 (Jose Luis Alcaine)
  • 제작국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 영화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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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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