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주전장 (主戰場, 2018)

주전장 (主戰場, Shusenjo: The Main Battleground Of The Comfort Women Issue, 2018)
– 태평양을 건넌 위안부 문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영화 <주전장>의 원제는 ‘Shusenjo: The Main Battleground Of The Comfort Women Issue’, 즉 ‘위안부’ 문제를 두고 싸우는 주요 전장, 그래서 주 전장이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 내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발언으로 우연하게 일본 우익을 옹호하는, ‘텍사스 대디’라는 백인 유튜버에게 공격 받는다. 미국 국적의 그의 유튜브에는 일본인 매니저와 함께 공공연히 미국 내 설치된 소녀상에 종이 봉투를 뒤집어 씌우고 욱일기를 꽂는 등의 만행이 버젓이 공개되어 있다. 감독의 질문은, 왜 이들, 일본 우익이 이토록 집요하게 ‘위안부’ 문제를 지우고 부정하려는 것인가에서 시작한다.

일본 우익은 전쟁 후 꾸준히, 적극적으로 자국을 넘어, 미국과 글로벌 사회에 일본 우월주의를 전파하는 데 거침없다. 역사 왜곡은 물론 각종 단체를 조직해 소녀상 철거를 위한 법정 분투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은 일본 극우파들이 미국을 주요 전쟁터 (주 전장)이라 인식하는 데서 착안했다. 일본 극우들은 미국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려놓으면 세계 여론 역시 같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굳게 믿고 로비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위안부 문제의 주요 전장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국과 일본을 넘어 미국으로 확대되었다.

많은 사료가 공개된 현 시점에서 저런 터무니 없는 행위가 무슨 영향이 있겠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적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단편적이고 빠르게 먼저 보여지는 것만으로 현상을 판단하고 관점을 형성한다. 이들이 모여 여론이 되고, 그 여론은 그 어느 때보다 SNS를 비롯한 많은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산된다. 이를 일찍이 알아온 일본 우익은 오래도록 전략적으로, 깊고, 교묘하게 국내외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왔다.

“일본 우익은 미국의 시각을 바꾸면 전 세계의 시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죠. 또한 그들은 이미 역사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신하기에 일본의 젊은 세대가 위안부에 대한 영어로 된 정보를 찾아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모순되지 않기를 바라요. 영어 웹사이트를 만들고, 미국인 친일 유튜버를 지원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 미키 데자키 감독, 한겨레 인터뷰 기사 (2019/07/22)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부정주의자와 우익 세력은 여성 인권 운동, ‘페미니즘은 못생긴 여자들이 시작한 것’,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기본인 일본에 비해 거짓말이 난무한 (저급한) 한국과 중국에서는 ‘속지 않아야 한다’는 의식과 교육이 팽배하다, 한국은 ‘시끄러운 애가 떼쓰는 것’ 같아 무척 ‘귀엽다’고 발언한다. 그들의 흔들림 없는 눈은 그들이 믿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우익 논객들
(왼쪽부터) 역사 수정주의 대표 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자민당 소속 중의원, ‘켄트 길버트’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 겸 일본 방송인, ‘슌 퍼거슨(후지키 슌이치)’ 토니 마라노 매니저, 과격파 친일 유튜버 ‘토니 마라노’

이러한 일본 우익의 배후에는 ‘일본회의(日本議)’로 대표되는 거대 조직과 움직임이 존재한다. 극우 종교 세력과 정치 세력의 결합으로 탄생한 일본회의는 메이지헌법(明治憲法), 즉, 덴노 중심의 남성 사회로의 회귀를 추구하고, 평화헌법의 폐기, 외국인 참정권 제한, 교과서 내 ‘반국가적’ 서술의 시정, 대동아전쟁의 역사적 의미 재정립, 페미니즘 저지 등을 주장한다. 물, 나무, 생명까지도 천황이 준 것이라 여기며 인권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로의 역행을 주도하는 무리는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도처에 침투해 있다. 최근 한일 갈등으로 드러난 아베 신조의 우익화는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1957년-1960년 내각총리대신)로부터 이어진 길고 치밀한 행보의 일부가 가시화된 것일 뿐이다.


영화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주요 논점, 1) 20만명, 2) 강제징집, 3) 성노예에 대한 자료, 일본 우익 인사들과의 인터뷰, 그에 반하는 일본 내 목소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미국 법적 내 공방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어느 한쪽을 극적으로 연출하기보다 논점, 반박, 재반박으로 전개된다.


감독은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위치에서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위안부 문제로 얽힌 세 국가의 이해관계를 풀어내기도 한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국과 일본의 중재를 촉구한 미국의 철저한 계산을 함께 집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도,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 때도 그들은 일본과 한국 가운데 있었다. 불과 50년 만에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나와서 더 확고해졌다. 어떠한 이유나 배경에서도 위안부 문제는 ‘반일’, ‘혐일’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영화 속 한 일본 우익이 이야기한 멍청한 (silly) 문제도, ‘포르노’ 같은 문제도 아니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권리와 대우, 즉 인권의 문제이고, 참혹한 인권 유린을 당한 이들과 그 역사에 대한 문제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에 ‘위안부’로서 인권 유린을 당한 이들은 가족의 수치로 두 번, 세 번 죽임을 당한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꺼내 진실을 알리고자 용기를 낸다. 그런 이들의 증언 한 번에, 단어 하나 하나를 두고 공격하는 일본 우익의 안면몰수는 도가 지나치다.

영화 <주전장>은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차분한 논리로 엉켜있는 실타래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에 묻는다. 우리 역시 얄팍한 현상에만 자극적으로 반응하고, 진영 논리로 몰아가려는 언론과 여론에 호도되고 있지는 않은가. At least create doubt. 적어도 의심은 해보라는 말은 비단 영상 속의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말과 행동에, 스스로에 질문하고 의심하고 반성하는가?

어떤 쪽이든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수치, 스토리, 메시지에 집중할수록 진영 간의 갈등으로만 비춰질 수 있다. 이는 인지와 인식 개선, 공감과 참여로 이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문제’라는 무관심과 반감을 낳는다. 팩트만으로도 충분하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와이프의 동의를 구한 일이라며) 바른 일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소신, 해당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발 벗고 나서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 우익의 편에 섰던 과거를 뉘우치고 알리는 사람, 이를 파헤치고 또 한데 모아 세상에 알린 감독, 우리는 모두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역사학자, 주오대학 명예교수
1992년 일본 방위청 (현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문제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담긴 공문서 6점을 발견해 아사히 신문에 제보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진상 조사를 벌였고, 1993년 8월 ‘일본군이 강제로 위안부를 모집하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 추가 참고 – (동아일보) ‘고노 담화’ 이끈 日 요시미 교수… 하시모토 망언 조목조목 반박 (2013/06/05)

치밀하고 교묘하게 잊혀지고 왜곡된 역사를 복기하는 작업은 길고 긴 시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근시안적으로 일부 현상에만 일시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더욱 치열하고 집요하게 깊이 공부하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알려야 한다. 진실과 정의를 향해 지치지 않고 싸워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 여정에서 파헤쳐진 우리의 민낯과 잘못을 우리 역시 받아들이고 진심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큰 그림을, 그 거대한 배후와의 싸움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길 진심으로 빈다.


  • 제목: 주전장 (主戰場, Shusenjo: The Main Battleground Of The Comfort Women Issue, 2018)
  • 연출/각본/제작/촬영/편집: 미케 데자키 (Miki Dezaki)
  • 제작국가: 미국

– 영화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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