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
– 예술과 상업 사이의 줄타기, 기발하고 재치 있는 다큐멘터리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래피티를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종종 기사나 사진을 접한 ‘스페이스 인베이더’ 정도가 독특하다는 인상을 남겼을 뿐, 구석지거나 으슥한 벽에 알 수 없는 형태로 남긴 문자 혹은 그림을 두고, 편견에 사로잡혀 ‘고상한 예술과 미학’의 영역과 동등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명한 그래피티/스트리트 아티스트, 혹은 거리예술가인 ‘뱅크시’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는 단순히 그러한 편견을 깬 계기 이상이었다.
‘뱅크시(Banksy)’는 누구인가
뱅크시는 영국 런던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거리 예술가이다. 생년월일조차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그는 전세계 곳곳의 거리에 반전과 평화, 환경, 반자본, 반체제 등을 주제로 한 자신의 작품을 신출귀몰하며 남기고 사라졌다. 그의 작품은 주제만큼 뚜렷하고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동시에 유머와 기발함이 한데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준다. 그의 작품 활동은 매우 대담하면서도 비밀리에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건물 외벽은 물론 박물관 내에서도, 심지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서안 지역(West Bank) 지역에 있는 장벽에도 9점의 작품을 남기고 오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뱅크시의 쥐 작품을 모방한 G20 ‘쥐벽서’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의 작품 활동은 공공 기물 파손이나 위조 화폐 제작 등이 포함되어 있어 신분이 밝혀지면 꽤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 같다.
뱅크시의 작품
뱅크시가 서안 지역의 장벽에 남긴 작품 중 한 점인 <Unwelcome intervention> (출처: guardian.co.uk )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이 영화는 뱅크시 본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던 한 촬영 강박증을 가진 (이제는 거리 예술가 중 한 사람이 된) 티에리 구에타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친척이기도 한 티에리 구에타는 L.A.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쉐파드 페어리(Shepard Fairey)를 만나고 본격적으로 거리 예술가들을 담기 시작한다. 거리 예술가들의 활동과 작품을 담기 위해 위험천만한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열정에 그간 정체를 밝히지 않던 뱅크시의 신뢰를 얻게 되어 뱅크시의 작품 활동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과 동행하던 티에리 구에타는 뱅크시의 권유로 거리 예술을 시작하게 되지만 그의 활동은 뱅크시나 쉐파드 페어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모방과 재생산을 통해 대량으로 ‘작품’을 ‘찍어내고’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배운 최적의 장소에 그의 작품을 내걸고 전시회도 성대하게 치러낸다.
티에리 구에타의 작품 활동에 대해 직설적인 비난을 하지는 않지만, 뱅크시의 조소가 엿보인다. 그는 티에리 구에타의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접근에 대해, 혹은 나아가 현대 미술이나 예술계에 던지는 ‘그렇지, 요즘 미술관/전시관은 꼭 마지막에 선물가게가 있더라’라는 식의 조롱이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영화에서의 뱅크시
예술과 상업의 경계와 공존,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는 개개인이 가진 시각이나 의견 차가 상당히 큰 부분이다. 뱅크시와 같은 거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예술로 볼 것인가,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티에리 구에타와 같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자신을 알리고 이를 상업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경우를 두고 대놓고 ‘당신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하기엔 반복과 모방, 변조를 조합한 거리 예술가들의 작품 역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그리고 거리 예술가들의 활동을 어디까지 예술로 보고, 어디부터 불법 행위로 보는 것인가 역시 고민해볼 만한 문제이다. 그러나 자신의 메시지를 담고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는 뱅크시나 쉐파드 페어리와는 다르게,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선택한 티에리 구에타의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거슬리는 건 사실이다.
결국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감상하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박물관 벽, 전시회 액자 속에 갇혀 있던 미술 작품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예술을 판단하는 가치가 모호해지기도 했고, 작품 활동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민 없이 5달러짜리 구제 셔츠를 400달러에 팔던 재주를 활용해 예술 활동을 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공산품과 예술 작품의 차이는 그 것을 보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출구를 나온 지금
뱅크시는 여전히 어디선가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비롯한 거리 예술가들의 활동은 현대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Obey’로 유명한 쉐파드 페어리의 경우 오바마를 그린 포스터 덕에 이러한 작품 활동을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고, 현대 미술관에서는 거리 예술에 대한 전시나 회고전을 열고 있다.
쉐파드 페어리와 그의 작품. AP와의 소송도 합의를 보고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사진: Los Angeles Times )
Mr.브레인워시(=티에리 구에타)는 최근 발매된 Red Hot Chili Peppers 신보 <I’m With You>의 홍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L.A. 지역에서 앨범 발매일인 2011년 8월 30일이 쓰여진 벽보를 남겼으며, 앞으로도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예술계 내의 협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흥미롭고, 이러한 거리 예술가들이 자본과 만났을 때의 그들의, 그리고 관람하는 이들의 반응이 제 각각이라 이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다만, <Hype!>에서의 그런지 밴드들처럼 지나친 관심으로 작품과 시장 사이에서 망가지는 이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RHCP 신보의 홍보 포스터 (출처: TMZ.com )
불법과 예술 사이의 줄타기를 하는 뱅크시가 배송 중인 패리스 힐튼의 CD를 훔쳐 화보를 뱅크시의 작품으로, CD를 Danger Mouse의 리믹스 버전으로 바꿔치기해 진짜 신보들 사이에 몰래 끼워 넣은 일화도 있다. 불법과 예술 사이에서 재미를 찾는 대담한 활동은 당사자가 아닌 관람하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스릴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에서 도주 중인 악당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윤리와 준법 정신과는 조금 다른 영역으로.
뱅크시와 Danger Mouse 버전의 앨범 (출처: http://www.spin.com/articles/danger-mouse-banksy-burn-paris)
뱅크시는 MOCA(The Museum ofContemporary Art, Los Angeles)에서 올해 8월 초까지 열린 거리 예술에 대한 전시 <Arts in the Streets>에 매주 월요일마다 무료 입장을 할 수 있도록 기부를 하며 “그래피티를 보는 데 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지울 때나 내는 것이다” (“I don’t think you should have to payto look at graffiti. You should only pay if you want to get rid of it”) 라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뱅크시답다. 자신의 작품 활동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을 그의 작품을 즐기는 이들의 지갑에서 찾는 그의 영리하고 현명한 작품 활동과 신념에 (소극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며 기발하고 재치 있는 그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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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
연출: 뱅크시(Banksy)
출연: 뱅크시, 쉐퍼드 페어리 (Shepard Fairey),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 , 리스 이판(Rhys Ifan, 내레이션)
장르: 다큐멘터리, 코미디
제작국가: 미국, 영국
제작: Paranoid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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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작품들은 뱅크시의 홈페이지 (http://www.banksy.co.uk/) 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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