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인력자원부 (Ressources Humaines, 1999)

인력자원부(Human Resources, Ressources Humaines, 1999)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감독: 로랑 캉테(Laurent Cantet)
출연: 자릴 레스페르(Jalil Lespert)
장르: 드라마
제작국가: 프랑스, 영국

*Scenario by Laurent Cantet / collaboration: Gilles Marchand


2003년 근로기준법의 개정 이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순차적으로 도입, 시행되고 있는 주 40시간제* 덕분에 프랑스의 주35시간 근무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조금 부러운 수준이지만, 프랑스에서는 2000년에 도입이 되었던 제도. (*흔히 주5일 근무제라고 하지만, 1주에 40시간이 기준근로시간이라는 의미로 반드시 주5일 근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력자원부는 이러한 주35시간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시기의 한 공장에서 일어나는 고용과 해고에 대한 문제와 그에 대한 개인과 가족이 겪는 내면적 갈등에 대해 보여준 영화이다. 당시 프랑스는 실업률이 높아지자 고용 확대를 위해 주35시간 근무제의 도입을 추진했고 이를 둘러싼 노조와 기업간의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로랑 캉테의 첫 장편 작품인 이 영화는 이러한 문제를 현실적인 시각으로 담아냈다.

보통 프랑스는 우리보다 더 나은 근로 조건을 보장해주는 나라라고 인식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노조와 경영자간 협상을 진행하는 모습 등을 보면 같은 시기의 우리나라 근로 환경보다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발전된 근로 환경에 대해 기업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접근한다. 영화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노동자와 고용주 간의 갈등과 더불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지적한다.

‘인력자원부’라는 제목

지금의 우리야 무의식적으로 HR 혹은 인사과라고 부르지만, 영화의 제목인 ‘인력자원부’는 뭔가 뒤틀림이 숨어있다. 로랑 캉테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제목은 ‘인력자원부’라는 표현 자체를 비꼰 것(The title “human resources” is first of all a reaction against the cynicism of that expression)”으로 “인간은 그들이 주식이나 자본을 관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관리 당하고 있다(A human being is administered the same way you would administer stocks or capital)”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주인공 프랑크가 인턴 사원으로 취직을 하는 한 공장에서 고용주는 노동자들을 그저 기계의 한 부품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고용주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이를 자각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크의 아버지나 그의 동료들이 무표정하게 하루 종일 기계적인 노동을 하며 하루 종일 몇 백 개를 만들어 냈다는 식의 기준으로 일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자부심과 열의에 찬 프랑크 역시 다를 바 없다. 결국 그 역시 필요에 의해 이용되고, 필요가 없어지면 내쳐진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이런 대사도 등장한다. “너는 해고 대상이 아니다. 너는 젊고 싸서 비생산적일 수가 없다”

무엇이 문제인걸까?

일의 의미

공장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곧 삶이다. 공장에서의 노동 시간을 주로, 가정이나 기타 여가 시간은 부로 삼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들에게 공장은 자아 실현을 위한, 꿈과 이상의 실천을 위한 배움의 장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력을 확보하는 곳이다. 노동은 그러한 수단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이야기하듯, 그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공장에서 여덟 시간씩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이 될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이다.

공장 생산직 뿐만 아니라 프랑크가 담당했던 경영직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가지를 두고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으며, 삶을 위한 경제력 확보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수단일 뿐이다.

노동자, 인격의 상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일/노동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노동자 자신의 가치를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생각은 고용주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더욱 확고해진다. 고용주는 인력을 기계와 마찬가지로 비용이자 생산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비용 대비 효율을 극대화시키려고 한다. 낡으면 새 것으로 교체하고, 오래된 기술은 폐기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인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노동자 스스로가 인격을 되찾기 위한 자성을 통해서 끊을 수 밖에 없다.

파업, 그러나 그 뒤는?

프랑크가 발견한 해고 문서로 공장 노조와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파업을 감행한다. 공장을 점거하고, 문을 지키고 농성을 한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이에 동참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당장 가족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매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궁리하기보다는 비록 내일 해고될 지라도 오늘까지 일을 하겠다는 선택은 오히려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프랑크는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파업에 아버지가 동참하지 않자 ‘평생 노동자인 아버지가 부끄럽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지금의 아버지가 더 부끄럽다’라고 외치고, 이에 아버지는 이를 악문 채 그의 아들을 조용히 응시하는 부분이다. 그가 공장에서 보낸 30년이, 가족을 희생해왔던 그의 인생과 인격이, 참아왔던 비인간적인 대우들이 그의 아들을 부끄럽게 했을 뿐이다.

‘뭐 저런 인간이 불효 막심한 자식이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영화 속 프랑크도 많은 갈등을 하는 것 같다. 아버지의 삶과 희생,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것에 대한 갈등과 현실과 이상 간의 갈등, 그리고 자본가/경영자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 간의 갈등 등.

로랑 캉테는 – 그의 영화는 해결책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늘 열린 결말로 오래도록 생각해볼 수 밖에 없는 질문을 던지며 끝난다고 한다 – [인력자원부]의 마지막에 ‘네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으로 선택의 기로에 선 노동자들에게 고민 거리를 던져준다.

프랑크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고용주에 소속된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당장 부조리에 맞서 싸우자는 메시지를 전했다기 보다, 일상에서 간과하고 있는 인격의 자각과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일터로 향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크의 어머니가 ‘당장 아버지가 바뀌는 것을 기대하지 마라. 너의 미래를 위해 싸워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조금의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길 바라며.

조만간 로랑 캉테의 [클래스]와 [타임 아웃]을 볼 예정인데, 어떤 질문을 던져 줄지 기대된다.

+.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시작된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무제는 (기존에는 주39시간제였다고 한다) 고용 창출 효과보다 되려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기업 차원에서는 고용 비용만 높였다는 지적으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를 철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으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지지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근무 시간에 대해서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협상을 통해 결정하고, 주35시간 이상 일할 때 초과 근무 수당에 비과세 혜택을 준다고 했음에도 반발이 있었다고 하니, 프랑스 노동자들의 권익이 우리보다는 많은 면으로 보호받는 것 같아 부러움도 살짝.

+. 흥미로운 사실은 주인공 프랑크 이외 대부분의 배우들이 비전문 배우로, 실제 노동자, 고용주(경영진), 노조원들이었으며 이 영화도 노르망디의 한 공장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한다.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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