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한나 (Hanna, 2011)

한나 (Hanna, 2011)
– 조용하지만 강렬했던 한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과 고요 속의 핀란드의 한 설원. 한 소녀가 사슴을 쫓으며 활을 겨눈다. 배를 가르고 있는 그녀의 뒤로 느닷없이 나타난 남자의 목소리. “You are dead”.

그렇게 시작한 영화 <한나>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열 여섯 살의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본> 시리즈와 같은 액션 첩보물. (이런 인상을 준 데에는 포스터가 한 몫 했다)


그러나 <한나>는 <본> 시리즈의 ‘제임스 본’처럼 날렵하고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지도, 여타 첩보물에서의 실타래처럼 얽힌 사건과 관계들 속에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한나>는 전직 CIA요원인 ‘에릭’의 훈련을 통해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16살의 ‘한나’가 악한 CIA 요원인 ‘마리사’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는 여타 액션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영상, 강렬한 음악과 잘 어우러져 독특한 액션 영화를 만들어냈다.

‘한나’는 고립된 환경에서 기계적으로 전투 능력을 익힌다. 그러나 그 외의 부분에서는 암기식으로 외운 백과사전식 정의가 대부분. 음악도, 사람도 무엇 하나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잔인함 속의 때묻지 않은 순진함이 아이러니하게도 숨어있다.

‘한나’의 이런 가공되지 않은 모습과 대비되는 ‘마리사’는 모든 상황과 사건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신경질적이고, 차가운 ‘마리사’의 성격은 잇몸에서 피가 날 때까지 양치질을 하고 손목을 덮는 긴 장갑을 끼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다. 선과 악의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한나’에 비해 ‘마리사’는 명확한 악(Evil)로서의 역할을 한다. (백설공주의 왕비가 연상되기도)

강한 동기나 이유가 없이 ‘한나’를 보호하고 돕는 ‘에릭’ 등과 같은 인물 설정을 비롯해, ‘그림 형제의 집’이나 엽서 뒷면의 ‘마녀는 죽었다’와 같은 소재들로 액션 속에 숨어 있는 동화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나>에는 특정 동화에 기반했다기 보다는 동화에서 보여주는 인물 설정이나 권선징악적 내용 전개로 액션 영화가 주는 명쾌함보다는 모호함이,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실제로 북미 지역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동화(Fairy tale)’와 접목을 시켜 평가하거나 마케팅하고 있다.)

“Music, the combination of sounds with aview to beauty of form and e-pression of emotion”
(음악은 아름다움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소리들의 결합)


기존 액션 영화에 비해 긴박감이 넘치는 영상을 보여주지도, 내용 자체가 주는 스릴감도 그리 크지 않은 <한나>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음악이다.

<한나>의 음악은 영국 일렉트로니카 듀오인 The Chemical Brothers가 담당했다. 덕분에 움직임이 크지 않은 장면에서도 비트가 강한 음악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The Devil is in the Beats>와 같이 경쾌한 곡과 함께, 레지던트 이블 4에서 3D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느린 혹은 정지 영상에서 쓰였던 <Tokyo>와 같은 강한 비트의 느낌의 <Hanna vs.Marissa>나 <Container Park>으로 상황의 긴박감을 극대화했다. 소녀적인 감성을 표현하거나 몽환적인 영상에서는 실로폰 소리를 섞은 음악이 흐르기도 했다.

서술하기보다는 표정이나 상황으로 짐작하게 하는 이 영화에서 음악과 더불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처음과 마지막 시퀀스. 사슴의 심장을 겨누던 ‘한나’는 ‘마리사’의 심장을 겨누고 한 발의 총성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조 라이트 감독은 몇몇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첫 액션 연출작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았다. 경쾌한 내용 전개나 시원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한나>의 다소 조용한 분위기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연출이, 그리고 음악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극장에서는 이제 내려가는 분위기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극장에서 제대로 된 사운드와 화면으로 감상하기를 권하는 영화.

+. 주인공 ‘한나’ 역의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의 연기도 좋았지만, ‘케이트 블랑쉐(Cate Blanchett)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세월의 흐름과 연륜을 보여주던 그녀는 ‘한나’를 쫓으며 ‘소피’ 가족을 심문하는 교활하고 철두철미한 차가운 ‘마리사’가 되어 있었다.


***

감독/연출: 조 라이트(Joe Wright/0
출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 한나), 에릭 바나(Eric Bana, 에릭), 케이트 블랑쉐(Cate Blanchett)
장르: 액션, 스릴러, 범죄
제작국가: 미국, 영국, 독일
각본: 세스 로크헤드(Seth Lochhead), 데이빗 파(David Farr)
촬영: 알윈 H. 커츠러 (Alwin H. Kuchle)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스팅에 사용된 스틸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있습니다. ,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Copyright © FlyingN

@A Wonder Log·마음대로 날아간 발자취

(http://wonderxlog.flyingn.net/)

 

블로그의 모든 글에 대한 저작권은 © FlyingN (Flyingneko,나는고양이)에 있습니다. 블로그 모든 문구 내용, 이미지의 무단 도용 복제 사용을 금지합니다.

 

공감, 댓글, 링크, 추천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구독하시면 더욱 편리하게 보실 있습니다.

(광고, 무분별한 비방은 임의 삭제하겠습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error: Content is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