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1)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1)
– 나쁜 놈 중 가장 나쁜 놈이 살아남는다

하정우라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섬뜩한 기억을 안겨준 <추격자>와 능청스러운데 미워할 수 없는 그 남자의 역할을 맡았던 <멋진 하루>, 그리고 캐릭터의 강약 조절로 영화의 무게를 조절하던 <의뢰인>까지. 필모그래피의 모든 작품을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도 하게 된다. 쉬이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면 한국형 ‘갱스터’라도 말이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네 근 현대사를 그린 영화는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니가’라는 대사로 전국을 강타했던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친구>도 보지 않았다. 특히 8,90년대의 모습은 낯익은 듯 기억나지 않는, 완벽한 허구도 현실도 아닌 모호한 느낌이다. 이 영화는 그 때의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그 시절 그 곳에 있으면서도 스크린으로 느끼는 괴리감이 크다.

지연, 학연, 혈연. 이 세 가지가 없으면 될 것도 안되고 안될 것도 되는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해고 위기에 처한 세관원 최익현은 우연히 적발한 히로뽕을 일본에 팔기 위해 부산 지역을 주름 잡고 있는 최형배와 손을 잡는다. 무슨 최씨에 종파와 몇 대손을 따지던 그는 자신을 무시하던 최형배에게 대부라는 소리를 내뱉으며 기어이 절을 하게 하며, 팔자를 고쳐보겠다며 뒷골목을 휘젓고 다닌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더 가지고 더 높이 오르려 하자 적들이 생긴다. 아니, 최익현의 경우에는 자업자득의 경우라고 보는 게 맞겠다. 형배만 믿고 설치던 그는 같은 조직 내 눈엣가시가 되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반대파 두목과 손을 잡는다. 90년 들어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자 그도 버리고 살길을 찾겠다며 검사, 변호사를 찾아 다닌다. 물러설 곳이 없는 그는 마지막 카드로 끝까지 그를 챙기던 형배마저 팔아버린다. 나쁘지만 의리의 세계라는 그 곳에서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놈이 즐비했지만 그 놈이 제일 나쁜 놈이다. 내가 보기엔.


살아남았으니 처세에 가장 능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건달이지만 의리와 카리스마로 상대를 제압하던 형배는 결국 부러졌다. 그가 살아남으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인 것처럼 보인다. 한 가장으로서 ‘가족만은, 아이들만은’ 이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만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큰 소리 치는 모습 뒤에 숨은, 언젠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과 이미 바닥을 친 자존심이 더 크게 느껴졌다. <비우티풀>에서의 아버지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자신의 아들이 검사가 되고 손주가 생긴 그에게 환청처럼 들리는 형배의 목소리는, 어쩌면 살아남았지만 지옥 같았던 마음의 짐이 긴장이 풀린 틈을 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게 아닐까 싶다. 돌잔치에 형배가 특유의 냉소를 띄고 한 켠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으면 했다. 나쁜 놈이 벌을 받지 않아 답답했다. 이 영화는 그걸 노린 것 같다. 느와르 속에서 여운이 남는 결말로 관객에게 ‘정말 나쁜 놈’에 대한 판단을 전가한다. 잔인하고 인정사정 없던 형배냐, 어떻게든 살아남은 익현이냐.

이런 (분노 가득한) 감상이 가능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시나리오 상의 나쁜 놈들의 캐릭터가 탄탄했던 덕분이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향하는 큰 줄기를 따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각 캐릭터를 구축하고 힘을 실어주고, 영화 역시 사건보다는 인물에 무게를 더 실은 느낌이다. 인물들이 결합하고 대치하는 과정에서 어떤 한 캐릭터가 상대 캐릭터를 압도해버리면 균형이 무너지는데, 이 영화는 주연 배우를 비롯한 조연들까지 캐릭터들간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이어간다. 한 화면에 가급적이면 여러 인물을 넣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사건이 이어지다 보니 중반부의 긴박감은 덜한 대신 후반부에서는 눈을 뗄 수 없다.


나쁜 놈이 살아남는 영화가 새로운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사건을 매듭짓고 웃고 울게 관객을 몰아가는 영화들에 비해 이 편이 더 마음에 든다. 잘 나가다가 억지 결말로 마지막 10분에서 말아먹은 영화가 한 둘이던가. 이런 시도에 진심 어린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

제목: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연출/각본: 윤종빈
출연: 최민식(최익현), 하정우(최형배), 조진웅(김판호), 마동석(김서방), 곽도원(조범석), 김성균(박창우)
장르: 범죄, 드라마
제작국가: 한국
촬영: 고낙선
음악: 조영욱
편집: 김상범, 김재범

***


<라이프로그>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최민식,하정우,조진웅 / 윤종빈
나의 점수 : ★★★★
– 나쁘지만 의리의 세계라는 그 곳에서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놈이 즐비했지만 제일 나쁜 놈이 살아남아 답답했다. 인물에 무게가 실린 탓에 긴박감이 덜한 감이 있지만, 억지 결말을 위해 끼워 맞추지 않은 시도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 배우들의 부산말 구사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듣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많이 노력하고 배운 흔적이 보였다. 그래도 실제 부산말과는 다른, 높은 피치의 흐름이 종종 거슬리기는 했다. (나라면 저기서 떨어뜨릴 텐데- 라는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기도) 불법 도박장 장면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 인물이 모 연예인을 닮았다는 생각도. 중간중간 꽤 웃었다.

+. 이 영화를 보면서 <하류 인생>과 조승우가 생각이 났다. 느낌상. (영화관에서 봤는데도 왜 기억나는 내용과 장면은 없고 느낌만 남아있는 걸까)

+. 90년대의 ‘범죄와의 전쟁’으로 (필요악이던) 건달 세계가 무너지면서 이후 범죄의 형태를 짐작하거나 추적이 더 힘들어졌다고 하니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다. 흥미롭기도 하고.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스팅에 사용된 스틸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있습니다. ,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Copyright © FlyingN

@A Wonder Log·마음대로 날아간 발자취

(http://wonderxlog.flyingn.net/)

 

블로그의 모든 글에 대한 저작권은 © FlyingN (Flyingneko,나는고양이)에 있습니다. 블로그 모든 문구 내용, 이미지의 무단 도용 복제 사용을 금지합니다.

 

공감, 댓글, 링크, 추천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구독하시면 더욱 편리하게 보실 있습니다.

(광고, 무분별한 비방은 임의 삭제하겠습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error: Content is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