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영화

은교 (2012)

은교(2012)
– 추악함과 아름다움의 사이

시인 이적요는 큰 주택에 오늘 하루도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 예전만큼 시상이 떠오르지도, 감흥도 없이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늘 해오던 일인 독서를 하고 차를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그의 표정에는 묘한 긴장감이 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 인지 그의 문하생인 서지우는 늘 절절 매며 그의 눈치를 살피기 일쑤다. 서지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청소며 빨래, 요리를 도맡아 한다. 그러던 그들 앞에 여고생 은교가 나타난다. 제멋대로 이적요의 집 앞마당에 들어와 낮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등장으로 이들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축 처진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던 노인 이적요는 활기를 띈 젊은이가 되어 상상으로 은교를 탐한다. 그리고 은교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원고지에 써 내려간다. 여고생 은교는 역시 알게 모르게 욕망을 품고 표출한다. 그녀의 치마와 셔츠는 점점 짧아지고 그의 곁에서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맴돈다. 그들 사이에서 서지우는 그들의 욕망을 이용하며 위태롭게 서있다.


욕망이란 말로 표현을 못한다 뿐이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한다. 이러한 욕망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어 모습을 드러낼 때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러나 내재된 욕망이 절제와 인내, 갈등이 없이 그대로 표출되었을 때 추악함에 가까워진다. 싱그러운 봄의 내음과 여름의 초록마저 느껴지던 이적요의 상상은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지만, 절제를 잃은 순간 술과 벌레들에 둘러 쌓인 이적요의 육체만큼이나 썩어간다. 늙음과 젊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지만, 정작 스스로의 욕망을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성과 감정,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적요는 결국 무너진다.

욕망이 마음과 생각 속에서 존재할 때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은밀하고 극적이기에 더 쾌감을 느낀다. 이적요와 서지우, 은교의 욕망은 은교의 치마 길이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질투, 그리고 근원적인 외로움이 끈적하게 얽히고설키다 결국 하나 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파국으로 이르는 추악한 비극은 그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끝은 참 외로웠다.

***

제목: 은교(2012)
연출: 정지우
각본: 정지우 / 원작: 박범신
출연: 박해일(이적요), 김무열(서지우), 김고은(은교)
장르: 멜로/애정/로맨스
제작국가: 한국
음악: 연리목

***


+. 박해일의 특수 분장은 좋았지만, 목소리가 초반에 몰입을 방해했다. 그러나 이적요의 눈빛과 행동에서 알게 모르게 날카롭고 위험한 감정이 실려야 하고, 상상으로 욕망을 그릴 때를 염두에 둔다면 특수분장의 힘을 빌린 선택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전개가 빨라지고 나면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아쉽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스틸컷)


+. ‘어째서 같은 거울이냐’ ‘별이 다 똑같은 줄 아는 사람’이라는 질타를 받았던 서지우에게 일방적으로 손가락질을 할 수 없는 건 오히려 그가 그들 중 자신의 욕망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서였을까.

<라이프로그> 은교

박해일,김무열,김고은 / 정지우

나의 점수 :

★★★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질투, 그리고 근원적인 외로움이 끈적하게 얽히고설키다 결국 하나 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끈적거리던 욕망이 파국으로 이르는 추악한 비극은 그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끝은 참 외로웠다.

글/ 나는고양이 (http://flyingneko.egloos.com)

본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스팅에 사용된 스틸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있습니다. ,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Copyright © FlyingN

@A Wonder Log·마음대로 날아간 발자취

(http://wonderxlog.flyingn.net/)

 

블로그의 모든 글에 대한 저작권은 © FlyingN (Flyingneko,나는고양이)에 있습니다. 블로그 모든 문구 내용, 이미지의 무단 도용 복제 사용을 금지합니다.

 

공감, 댓글, 링크, 추천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구독하시면 더욱 편리하게 보실 있습니다.

(광고, 무분별한 비방은 임의 삭제하겠습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error: Content is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