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크린의 기록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 이대로 인류는 괜찮은 걸까? flyingneko.egloos.com/3715034 Pierre Boulle의 동명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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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1)

다른 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1) http://flyingneko.egloos.com/3853151 작년 가을, <북촌방향>을 보며 뜨끔, 하면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하하하>와 <북촌방향> 이후, 소소한 듯 낯뜨거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가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재미와 흥미를 떠나 이 영화는 왜 만들었을지 감독의 의중을 묻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영화는 끝까지 답을 얻지 못했다. 이자벨 위페르는 소주를 마시러 한국에 온 걸까. 같은 공간, 같은 인물이 다른 사연과 다른 이야기로 쳇바퀴를 돈다. 어려운 개념일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 쉬이 영화에 붙여 이것 저것을 슬그머니 끼워 설명하는 ‘평행 우주’라는 걸까. 이 평행 우주가 평행선을 그리지 않고 조금씩 휘면서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버린다. 영화 속 남녀가 모두 못났지만, 특히 한국 남자들이 참 못나게 그려진다. 질투와 술, 그리고 책임지지 못할 불손한 호기심이 비슷하게 등장하는 데 맛깔스럽지가 않다. 한 바퀴, 두 바퀴 돌면서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긴 했지만, 크게 공감이 갈 만큼의 감정도 깊이도 없는 것 같았다. 홍상수 감독이 아니라 무명의 감독에게서 만들어졌다면 이 정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반복과 변주를 보는 묘미가 있었던 지난 작품이 여전히 반복되어 이제는 새롭지 않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을 맴도는 건 이자벨 위페르가 아니라 감독일지도 모르겠다. *** 제목: 다른 나라에서(In another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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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Frank, 2014)

프랭크(Frank, 2014) – 프랭크의 가면을 마주한 우리의 표정 http://flyingneko.egloos.com/4046492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로 살고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새 하나 둘 늘어난 가면은 시시각각 필요에 의해 바뀌고 또 바뀐다. 태생적으로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사회적 동물로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더 많은 종류의, 다양한 표정의 가면을 가지게 된다. 영화의 제목과 동명인 프랭크의 가면은 하나다. 프랭크는 미키 마우스의 머리를 방불케 하는 큰 가면을 한시도 벗지 않는다. 무언가에 놀란 듯하면서도 즐겁기도, 슬프기도 한 아리송한 분위기의 가면은 늘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마주한다. 노래를 부를때도, 먹고, 씻고, 심지어 잘 때조차 눈을 부릅뜬 한결 같은 모습이다. 프랭크를 처음 본 사람들은 가면 속 그의 모습을 흉측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거나 묻는다. 이러한 궁금증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존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집요하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주한 표정에 따라 바삐 가면을 바꿔야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한결 같은 프랭크의 가면에 대고 자유롭게 감정을 쏟아낸다. 즐거움과 슬픔을, 간절함과 욕망을 토로한다. 프랭크는 ‘환영의 미소’, ‘뿌듯한 표정’과 같은 짤막한 단어로 자신의 표정을 설명할 뿐이다. 프랭크의 가면은 가면 속의 사람을 대변한다기 보다, 그를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과 욕구를 비춘다.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프랭크는 자신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한다’며 밀어붙이는 존과 같은 인물들을 탓할 수 없다. 사람의 욕심은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므로. 그것이 단지 표정 없는 프랭크에 투영이 되었을 뿐, 악의를 품고 이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프랭크는 어쩌면 사람들의 이런 보이지 않는 기대에 서서히 무너진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화목한 가정에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자란, 순수한 프랭크가 장난 삼아 시작한 가면놀이가 어느새 그 가면을 쓰지 않고서는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가면을 벗은 자신의 표정을 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두려움이점점 더 가면 속으로 그를 몰아넣은 것일지도 모른다. 프랭크의 가면을 마주한 등장 인물들처럼, 프랭크의 가면, 영화를 채운 영상과 음악을 두고도 관객들은 제 각각의 생각을 담아낼 것이다. 이 한 편의 영화에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영화가 프랭크의 가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방적인 얼굴로 관객을 바라보는 영화는 정해진 것 이외의 어떤 표정도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우리를 보는 표정은 우리만이 아는 것이다. 영화의 좌초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표정으로 영화를 볼 것이다. 다행인 것은 프랭크와는 달리 영화는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에 상처받거나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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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 (Begin Again, Can a Song Save Your Life?, 2013)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Can a Song Save Your Life?, 2013) – 다시 또 그렇게 http://flyingneko.egloos.com/4042048 사랑. 행복,슬픔, 분노 등 나열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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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4)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4) – 생존을 마주한 두 진영의 갈등, 그 서막 http://flyingneko.egloos.com/4034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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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2012)

신세계 (2012) – 오마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  flyingneko.egloos.com/3935344  경찰이면서 신분을 감추고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에 잠입 수사를 하게 된 이자성. 8년 후, 골드문 회장은 교통 사고로 급작스럽게 죽게 되고, 골드문의 두 세력을 둘러싼 암투에 경찰까지 개입된다는 내용의 <신세계>는 비슷한 설정 덕분에 자연스럽게 유덕화, 양조위 주연의 <무간도>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 <무간도>에서 경찰이지만 범죄 조직에 몸담게 된 진영인(물론 그보다 더 복잡한 사연이 있지만)과 범죄 조직에서 처음부터 철저하게 경찰로 키워진 조직원 유건명이 서로를 쫓고 쫓는 추격전을 벌이며 흐르던 긴장감과 그 흔들리던 눈빛은 여전히 생생하다. 자신이라고 믿어왔던, 허공을 떠도는 말처럼 잡히지 않는 ‘본래’ 신분의 자신과, 시간 속에 쌓여온 ‘지금’의 자신 간에 생긴 깊은 정체성의 괴리가 결국 둘을 선택의 기로로 몰아가고, 결국 이들은 선택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들의 선택에는 끊임 없이 갈구했지만 어쩌면 허상에 불과할지 모를 ‘본래’의 자신을 위해 긴 시간 동안 형성된 믿음과 유대를 저버려야 한다는 갈등이 내재한다. 그래서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무간 지옥에 발을 들여놓은 그들에게 과연 그러한 선택이란 유의미한 것인가, 라는 생각에 처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쉽게도 <신세계>에서는 이러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경찰은 비열했고, 범죄 조직은 권력 암투의 장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던 ‘형님’이 있는 조직 쪽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양분된 정체성에 대한 내적 갈등보다는, 최악과 차악을 구분한 탓에 이 둘을 사이에 둔 생존의 방법이나 타이밍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그래서 <무간도>에서 느껴졌던 황국장과 아강의 죽음을 바라보던 진영인에게 느껴진 먹먹한 절망감이나, 한침을 겨눈 유건명의 총구에서의 비장함 같은 것이 없었다. 사실 연기로 따지자면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제 몸에 꼭 맞은 정장을 입은 듯한 이정재부터 언젠가부터 건달 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황정민, 두말할 것 없는 최민식과 조연들의 연기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의 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고 몰입도 공감도 쉬이 되지 않는 영화의 상영시간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무간도>에서 시작해 <대부>를 연상시키며 끝난 이 영화는, 두 영화의 오마주라는 굴레를 뛰어넘지 못한 것 같다. 모두 ‘무간 지옥’에 갇혀 있는 채로 제목과 같은 ‘신세계’는 오지 않았다. 소재의 차용도 좋고, 오마주도 좋다. 비슷한 소재로도, 오마주만으로도 원작에 걸맞은,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신세계>에는 그만의 독특한 해석이나 연출이 부재하다.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을 적당히 섞어 자극적인 양념을 한  느낌이다. 지루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도, 아주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겼어야 할 감정적 공감대와 연민을 대사로 설명하고 얻으려 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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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 2013) – 적당히 잘난 놈만 살아남는 사기라는 예술 http://flyingneko.egloos.com/4009605 최근 몇 년 사이에 헐리우드발 영화를 포함한 외화들 중 역대 사기꾼이나 사기 행각에 대한 영화가 부쩍 눈에 띈다. 회복이 더딘 경기 탓인지 조금만 머리를 굴려도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일까.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보다 더 이른,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기꾼 어빙과 시드니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파트너로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사기 행각을 펼치다 FBI의 수사망에 걸리게 되지만, 다른 수사에 참여하면 감형해준다는 조건을 받아들인다. 약속했던 조건과 다르게 수사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어빙과 시드니, 이를 둘러싼 관계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결국 카마인 시장 등 정치인들과 거물급 마피아를 끌어들인 마지막 사기극을 끝으로 어빙과 시드니, 어빙의 아내 로잘린은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는 내용. 2시간이 넘는 긴 영화의 나름의 교훈을 축약하자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와’과유불급’일 듯 싶다. 유리창 깨기로 시작한 어빙의 사기 아닌 사기는 당장이라도 목을 날릴 것 같은 마피아, 권력욕에 눈이 먼FBI, 열정이 넘쳤던 정치인, 초치기가 특기인 로잘린 등 연루된 모든 이들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온다. 사기꾼을 예술가에 빗대 표현한 ‘Con artist’는 어빙과 시드니를 위한 단어인 듯, 이용하고 이용 당하는 도중에 치고 빠지기가 예술의 경지에 든 것 같다. 주인공 어빙은 사기꾼이면서도 은근 보수적인 투자 성향을 보인 반면, 그 외의 FBI 요원인 리치나 카마인 시장을 포함한 정치인 등은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아 본전도 못 찾고 되려 크게 잃는다 (로잘린은 성격만큼이나 독특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사기극에서 ‘과유불급’이라니 선뜻 연결이 안되지만 지나친 욕심과 몰상식한(?) 행동들이 결국 화를 부르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해피엔딩의 적당히 착하고 인간적인 사기꾼 커플과 달리, 선의로 시작한 일이라도 완급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그 방법이 도를 지나치면 끝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카마인 시장의 결말은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이 연상되어서 그런지 스토리 자체가 주는 신선함은 덜했지만, 긴 상영 시간 내내 그리 무겁지 않은 전개와 더불어 경쾌한 음악이며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에 눈도 귀도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제니퍼 로렌스가 로잘린 역을 너무 잘 소화한 나머지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올라 극장을 박차고 나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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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 (Elysium, 2013)

엘리시움 (Elysium, 2013) – 유쾌하지 않은 현실감을 담은 SF http://flyingneko.egloos.com/3977608 서기 2154년, 가진 자들은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엘리시움’이라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다. 더럽고 북적대는 지구와는 상반되는 그 곳에는 가난과 질병이 없다. 주인공 맥스는 ‘엘리시움’을 동경하는 지구인이며, 한 공장의 평범한 근로자다. 불의의 사고로 죽음에 가까워지자 살기 위해 ‘엘리시움’에 가기 위한 무모한 계획에 동참하게 되고, 두 세계를 양분하던 시스템을 위협하게 된다. 극단적인 빈부 격차,양분된 세계는 이미 스크린 상으로 셀 수 없이 창조, 재창조되어왔다. 양극단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희생된 ‘영웅’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 <엘리시움>은 심지어 감독의 전작 <디스트릭트 9>의  인간 편 같았고, 최근 개봉한 <설국열차>을 우주와 지구로 확장해놓은 것 같았다 (만들어진 순서가 어찌되었든, <설국열차>를 나중에 봤다면<엘리시움>의 기차 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크루거의 행동 변화나 맥스의 심적 변화, 엘리시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합이 괜찮은 편. 아이맥스관에서 관람해서 영상을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화려함을 기대했던 우주 속’엘리시움’의 평범한 모습보다 황폐한 지구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여기저기 액션신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았고, 맷 데이먼, 조디 포스터, 샬토 코플리의 연기도 과하지 않고 적절한 수준이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무겁거나 어둡지는 않았지만, 새삼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 감독의 전작 <디스트릭트 9>을 어떻게 봤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지구에 남은 스페인어를 쓰는 빈민층과 프랑스어, 영어를 고상한 척 섞어 쓰는 엘리시움 사람들, 모든 것을 치료하는 엘리시움의 재택 치료 장비와 로봇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죽어가는 사람들과 같은 설정은 의도적으로 비꼰 설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과 대비되면서 묘하게 불편해진다. 전작에서도 그랬지, 라고 넘길 수 있다면 이 영화의 극단적인 설정을 받아들이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인간의 뇌를 하드 디스크로 간주하는 발상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드릴과 나사로 몸과 장비를 연결하는 모습은 그간 고상한 SF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현실감 넘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 역시 전작의 기분 나쁜 현실감을 경험했다면 크게 충격적이지는 않다. <디스트릭트 9>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전작을 차치한다 하더라도 볼만한 평작 혹은 그 이상이라는 생각.무엇보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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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an 2013] 페인리스 (Insensibles, Painless, 2012)

[PiFan 2013] 페인리스 (Insensibles, Painless, 2012) http://flyingneko.egloos.com/3968944 1930년대 스페인의 한 마을, 태어날 때부터 어떠한 신체적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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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 화려함 뒤에 남는 건 음악뿐 http://flyingneko.egloos.com/3965866 ‘개츠비는 어째서 위대한가?’ – 나의 질문은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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