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니클 (Chronicle, 2012)
크로니클 (Chronicle, 2012) – Boys will be Boys flyingneko.egloos.com/3818209 “Boys will be boys” 라는 문구와 함께 빌딩 위 하늘에 떠
Read More크로니클 (Chronicle, 2012) – Boys will be Boys flyingneko.egloos.com/3818209 “Boys will be boys” 라는 문구와 함께 빌딩 위 하늘에 떠
Read More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2011) – 잔인하고 슬픈, 괴기한 복수극 http://flyingneko.egloos.com/3796100 언젠가 복수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유치하게는 밀가루와 계란을 던진다든지 머리에 껌을 붙인다는 것부터 스토킹이나 흥신소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다. 그 때 생각한 가장 잔인한 복수 방법은 그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해코지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없애 버리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했다. 살아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 만큼 잔인한 복수 방법은 없다. <내가 사는 피부>는 한마디로 정리가 되지 않는 영화다. ‘다른 모든 것에는 개입하면서 왜 과학의 진보에는 사람을 쓸 수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생명 윤리에 대한 고민을 건드리는 것 같다가 이내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성형외과 의사인 로버트의 집에 사는 베라는 누구일까. 낯설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릇된 집착의 이야기일까. 피부색의 전신 스타킹을 신은 베라와 로버트의 이상한 관계는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로버트는 자신의 배다른 동생 제카에게 아내를 빼앗기고도 불 속에서 아내의 목숨을 구해낸다. 그러나 화상으로 망가진 자신의 외모를 본 아내 갈은 딸 놀마가 보는 앞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딸 놀마 역시 자살하고, 로버트는 놀마의 강간범인 비센테를 쫓아가 납치한다. 그리고 그를 사회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숨을 쉬지만 살아있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가장 치밀하고 완벽한, 그리고 잔인한 복수를 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로버트의 아내와 딸을 오가며 집착인지 사랑인지 모를 집요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새로운 피부처럼 자리잡아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윤리적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얼어붙은 그의 심장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들어 내는것 하나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마릴리아는 로버트의 곁을 지킨다. 그를 도우면서도 양심을 잊지 않으려는 듯 목에는 큰 십자가가 걸려있다. 정상으로 보이는 그녀 역시 자신의 다른 아이를 죽이고 태워 없애는 로버트의 모든 행동을 수용하는, 비정상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 별장 안에 정상적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프랑켄슈타인>과 <페이스오프>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그릇된 애정과 집착에서 비롯된 잔인한 복수극이다. 섬뜩하면서도
Read More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 실종 사건을 둘러싼 스릴러, 용 문신을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 flyingneko.egloos.com/3793403
Read More퍼펙트 호스트 (The Perfect Host, 2010) – 나만의 세계를 찾은 불청객을 맞이하는 (비정상적인) 방법 flyingneko.egloos.com/3789878 문을 들어서는 순간, 쓰고 있던 가면과 옷을 벗어 던지고 의자든, 침대든 몸을 누인다.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에 따라 행동할 필요도 없고, 그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곳, 자신이 가장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 곳은 바로 집이다. 집은, 특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 외부와는 철저하게 단절된 나만의 세계다. 외부와는 다른 공기와 시간이 흐르는 이 곳의 문 앞에 서 있는 불청객은 쉬이 환영 받지 못한다. 문이 열리는 순간 투명한 물이 담겨있던 컵 속으로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진다. 잉크는 이곳저곳으로 퍼지며 투명한 공기의 흐름을, 물을 흐린다. 존은 경찰에 쫓기고 있다. 절고 있는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은행을 털었다는 그의 손에 돈가방은 들려있지 않고, 설상가상 소독약을 사러 들어간 가게에서는 강도를 만난다. 우체통을 뒤져 ‘줄리아’가 보낸 엽서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월윅의 집으로 들어가려 한다. 고민하던 월윅은 그만의 세계에 불청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그가 준비하던 저녁 파티에 그를 초대한다. 시간이 지나도 손님은 오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용의자 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존은 부엌에서 칼을 집어 든다. 걸음걸이부터가 심상치 않았던 월윅은 피가 흐르는 존의 다리를 보고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피가 흐른 바닥을 닦아댄다. 이 사람, 정상은 아니다. 정상이 아니기에 가능한걸까? 월윅은 오히려 그의 세계로 불청객의 등을 민다. 어디 한번 섞여 보라고 흔들어 대는 가운데 존은 틈이 보이지 않은 공기 틈으로 숨을 쉬려 한다. 죽지 않을까, 죽여야 살지 않을까,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다. 들어오는 건 자유라도 나가는 건 주인 마음이다. 끝내 월윅의 세계에 섞이지 못한 불청객은 쓰레기와 함께 집 앞에 버려진다. 불청객이 없었다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서 즐거운 하룻밤을 보냈을 월윅은 세상에 잘 섞이기 위해, 자신의 배역을 잘 수행하기 위해 약을 털어 넣는다. 자신의 어긋난 욕망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지만, 자신의 역할극은 잘 숨겨온 욕망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물질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수단이다. 월윅의 집은 그 간극을 메우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을 찾은, 그리고 불평을 하는 불청객 뒤로 쏟아낸 ‘여기서 죽어도 모르는 너는 쓸모 없는 존재’라는 비난은 어쩌면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월윅은 주인으로서 끝까지 그 나름의 친절을 베푼다. 여러 섬들이 바다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섬 안에서는 자체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사람과 사회의 관계도 비슷하다. 섬의 생태계든 개인의 세계든 의도치 않게 그 곳에 발을 들인 불청객을 경계하기 마련이다. 친절이라는 가면으로 거리를 두며 방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점에서 월윅은 (다중인격으로) 미쳤을지언정 순진해 보인다. 나는 누군가를 집에서의 저녁 식사에 초대할 수 있을까? 약을 털어 넣는 그를 보며 언젠가부터 방어와 경계로 타인을 대하는 나를 반성해본다.
Read More<R.P.G.(2011, 미야베 미유키)> – 가상 세계에서의 가족 놀이, 그리고 관계에 대한 단상 http://flyingneko.egloos.com/3736335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대표 작가라고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 전작 <모방범>과 <낙원>을 꽤 재미있게 읽어 신작 역시 두번 생각할 것 없이 집어 들었다. <R.P.G.>,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본인 스스로가 덧붙인 것처럼 단행본으로 쓰기에는 짧고 중,단편집에 넣기에도 애매한 이야기라 사건이나 소재의 규모가 전작 같지 않다. 그래도 규모나 치밀한 구성 외에도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매력은 중간 중간 시선을 사로 잡는 글귀들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를
Read More<7년의 밤 (2011, 정유정)> – 오래간만에 활자로 느낀 스릴러의 소용돌이 http://flyingneko.egloos.com/3729594 누구나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다. 타인의 생존권을 위협한 혹은 박탈한 범죄자의 자식이나 가족들에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보통의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이들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들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들도 모르는 지극히 낮은 가능성의 위험도 가급적 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 강도가 개개인마다 다를지도 모르고, 개인 대 개인으로 대면한다면 약간의 동정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언론이 다루기 시작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붙게 된다.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신분을 숨긴 채 들키지 않을까 몸을 낮추고 살다가도 누군가 가져온 신문 기사 하나에 또 다시 떠날 수 밖에 없는, 환영 받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소설의 주인공 ‘서원’은 살인범의 아들이다. 열두 살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이 된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지만 언제나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다. 상속받은 재산을 양육비로 갖고도 두 번 이상 그를 돌보지 않으려고 해 결국 서원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마지막 희망을 품고 건 ‘아저씨’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아저씨’ 승환은 서원의 아버지(현수)의 부하직원이었으며, 사택에서 서원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소설은 현수가 살인마가 되기까지, 그 사건을 둘러싼 죽어버린 세령과 그의 가족,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령호를 둘러싼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었다. <고백>(미나토 가나에)이나 <천사의 나이프>(아쿠마루 가쿠),
Read More카우보이 & 에이리언 (Cowboys & Aliens, 2011) – 재미가 아주 없지도, 그렇다고 아주 재미있지도 않은 서부 SF극 flyingneko.egloos.com/3718099 서부극과 SF의
Read More[JIFF 2011] 불면의 밤 – 함께여서 더 즐거웠던 그 밤 http://flyingneko.egloos.com/3642283 올해로 세 번째인 전주국제영화제(이하 JIFF)에서는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불면의 밤’과 다음 날의 두 편의 상영작을 관람하고 돌아왔다. ‘불면의 밤‘은 주말과 휴일 0시에 시작해 세 편 혹은 5시간 가량의 작품을 상영하며 밤새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상영 프로그램이다. (국내 주요 영화제에는 이런 심야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현재까지 실제로 참여해 본 건 JIFF의 ‘불면의 밤’이 유일하다) 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보는 묘미 중 하나는 바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과 함께 한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불면의 밤’은 그러한 프로그램 중에 핵심이 아닌가 한다. 지금의 멀티플렉스 극장에 비해 불편한 의자, 낙후한 음향이나 영상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밤새 한 공간에서 함께 환호하고 소리지를 수 있다는 것은 영화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더해 영화제를 다시금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꽤 좌석이 많은 곳임에도 앞의 몇 줄을 제외하고는 가득 찼다. 작년 첫 ‘불면의 밤’에선 서툰 체력 안배 탓에 기대작이었던 <서바이벌 오브 데드> 상영 내내 고스란히 잤던 기억에 (물론 의외의 <포비아2> 덕에 너무 즐거웠다) 올해는 무리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정을 잡았다. 비록 ‘불면의 밤’을 제외한 나머지 예매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이번 ‘불면의 밤’ 역시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첫 번째 상영작은 <우린 우리다(We
Read More한나 (Hanna, 2011) – 조용하지만 강렬했던 한나 flyingneko.egloos.com/3635501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과 고요 속의 핀란드의
Read More더 레이븐 (The Raven, 2012) – 에드거 앨런 포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법 flyingneko.egloos.com/3859495 꽤 오래도록 가졌던 고양이에 대한 공포와 편견 뒤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너무 어린 시절 읽었던 관계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과 관계가 있든 없든 검은 고양이와 천둥 번개가 치는 밤, 벽돌로 된 벽 뒤에 숨겨진 무언가, 라는 이상한 이미지의 퍼즐이 얽혀서 스산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떠올리게 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와 같은 제목인 영화 <더 레이븐>은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아니다.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인물이 추리물의 주인공이 되어 살인범과 추리 게임을 벌인다. 그의 작품들은 여기 저기서 언급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기대했다면 뚜껑이 열리는 순간 실망할 수도 있겠다. 영화 덕분에 오늘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더 레이븐>이라는 단편+헌정 에세이집을 사왔다. 영문판은 2009년에 나왔는데, 번역서는 영화 개봉과 함께 이제야 출간이 되었다. 그의 탄생 200년을 맞이해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회에서 그의 단편들과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에세이를 묶은 책인데 다른 것보다 먼저 간추려 놓은 그의 생애를 읽다 보니, 영화의 캐릭터가 얼마나 세심하게 재창조되었는지를 뒤늦게야 깨달으며 감탄했다. 포는 <더 레이븐>를 발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9달러 밖에 벌지 못하고, 아내는 폐결핵으로 사망, 가난과 술로 방탕한 삶을 살던 그의 죽음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미스터리하게 남아있다. 그의 신경질적이면서 자기 파괴적인 모습, 작품들만큼이나 기이한 구석은 영화 속 캐릭터 곳곳에 녹아있다. 영화 속 살인범이 포에게 주문한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소설’처럼 이 영화 역시 그의 소설과 사실, 그리고 허구 사이를 오간다. 그의 작품들은 살인범이 남기는 흔적 속에 숨어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영화 속에서 그의 작품들이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은 이 영화에서는 현대 수사물이라면 등장했을 방법들이 현장의 머리카락을 자석에 대본다든지, 목이 졸린 흔적에서 범인의 손 크기를 추적해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180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게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디테일들이 꽤 인상적이다. 사건의 전개도 꽤 긴박감 있고, 스릴러로서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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