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2011)
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2011) – 잔인하고 슬픈, 괴기한 복수극 http://flyingneko.egloos.com/3796100 언젠가 복수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유치하게는 밀가루와 계란을 던진다든지 머리에 껌을 붙인다는 것부터 스토킹이나 흥신소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다. 그 때 생각한 가장 잔인한 복수 방법은 그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해코지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없애 버리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했다. 살아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 만큼 잔인한 복수 방법은 없다. <내가 사는 피부>는 한마디로 정리가 되지 않는 영화다. ‘다른 모든 것에는 개입하면서 왜 과학의 진보에는 사람을 쓸 수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생명 윤리에 대한 고민을 건드리는 것 같다가 이내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성형외과 의사인 로버트의 집에 사는 베라는 누구일까. 낯설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릇된 집착의 이야기일까. 피부색의 전신 스타킹을 신은 베라와 로버트의 이상한 관계는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로버트는 자신의 배다른 동생 제카에게 아내를 빼앗기고도 불 속에서 아내의 목숨을 구해낸다. 그러나 화상으로 망가진 자신의 외모를 본 아내 갈은 딸 놀마가 보는 앞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딸 놀마 역시 자살하고, 로버트는 놀마의 강간범인 비센테를 쫓아가 납치한다. 그리고 그를 사회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숨을 쉬지만 살아있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가장 치밀하고 완벽한, 그리고 잔인한 복수를 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로버트의 아내와 딸을 오가며 집착인지 사랑인지 모를 집요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새로운 피부처럼 자리잡아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윤리적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얼어붙은 그의 심장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들어 내는것 하나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마릴리아는 로버트의 곁을 지킨다. 그를 도우면서도 양심을 잊지 않으려는 듯 목에는 큰 십자가가 걸려있다. 정상으로 보이는 그녀 역시 자신의 다른 아이를 죽이고 태워 없애는 로버트의 모든 행동을 수용하는, 비정상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 별장 안에 정상적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프랑켄슈타인>과 <페이스오프>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그릇된 애정과 집착에서 비롯된 잔인한 복수극이다. 섬뜩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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