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elo, 2011)
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elo, 2011) – 소년에게 배운 용서 flyingneko.egloos.com/3798575 한 소년이 자전거를 찾기 위해 애타게 전화를 걸고,
Read More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elo, 2011) – 소년에게 배운 용서 flyingneko.egloos.com/3798575 한 소년이 자전거를 찾기 위해 애타게 전화를 걸고,
Read More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2011) – 잔인하고 슬픈, 괴기한 복수극 http://flyingneko.egloos.com/3796100 언젠가 복수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유치하게는 밀가루와 계란을 던진다든지 머리에 껌을 붙인다는 것부터 스토킹이나 흥신소의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다. 그 때 생각한 가장 잔인한 복수 방법은 그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해코지 없이 주민등록번호를 없애 버리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했다. 살아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 만큼 잔인한 복수 방법은 없다. <내가 사는 피부>는 한마디로 정리가 되지 않는 영화다. ‘다른 모든 것에는 개입하면서 왜 과학의 진보에는 사람을 쓸 수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생명 윤리에 대한 고민을 건드리는 것 같다가 이내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성형외과 의사인 로버트의 집에 사는 베라는 누구일까. 낯설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릇된 집착의 이야기일까. 피부색의 전신 스타킹을 신은 베라와 로버트의 이상한 관계는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로버트는 자신의 배다른 동생 제카에게 아내를 빼앗기고도 불 속에서 아내의 목숨을 구해낸다. 그러나 화상으로 망가진 자신의 외모를 본 아내 갈은 딸 놀마가 보는 앞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딸 놀마 역시 자살하고, 로버트는 놀마의 강간범인 비센테를 쫓아가 납치한다. 그리고 그를 사회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숨을 쉬지만 살아있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가장 치밀하고 완벽한, 그리고 잔인한 복수를 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로버트의 아내와 딸을 오가며 집착인지 사랑인지 모를 집요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새로운 피부처럼 자리잡아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윤리적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얼어붙은 그의 심장은 그가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들어 내는것 하나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마릴리아는 로버트의 곁을 지킨다. 그를 도우면서도 양심을 잊지 않으려는 듯 목에는 큰 십자가가 걸려있다. 정상으로 보이는 그녀 역시 자신의 다른 아이를 죽이고 태워 없애는 로버트의 모든 행동을 수용하는, 비정상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 별장 안에 정상적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프랑켄슈타인>과 <페이스오프>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그릇된 애정과 집착에서 비롯된 잔인한 복수극이다. 섬뜩하면서도
Read More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 실종 사건을 둘러싼 스릴러, 용 문신을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 flyingneko.egloos.com/3793403
Read More퍼펙트 호스트 (The Perfect Host, 2010) – 나만의 세계를 찾은 불청객을 맞이하는 (비정상적인) 방법 flyingneko.egloos.com/3789878 문을 들어서는 순간, 쓰고 있던 가면과 옷을 벗어 던지고 의자든, 침대든 몸을 누인다.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에 따라 행동할 필요도 없고, 그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곳, 자신이 가장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 곳은 바로 집이다. 집은, 특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 외부와는 철저하게 단절된 나만의 세계다. 외부와는 다른 공기와 시간이 흐르는 이 곳의 문 앞에 서 있는 불청객은 쉬이 환영 받지 못한다. 문이 열리는 순간 투명한 물이 담겨있던 컵 속으로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진다. 잉크는 이곳저곳으로 퍼지며 투명한 공기의 흐름을, 물을 흐린다. 존은 경찰에 쫓기고 있다. 절고 있는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은행을 털었다는 그의 손에 돈가방은 들려있지 않고, 설상가상 소독약을 사러 들어간 가게에서는 강도를 만난다. 우체통을 뒤져 ‘줄리아’가 보낸 엽서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월윅의 집으로 들어가려 한다. 고민하던 월윅은 그만의 세계에 불청객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그가 준비하던 저녁 파티에 그를 초대한다. 시간이 지나도 손님은 오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용의자 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존은 부엌에서 칼을 집어 든다. 걸음걸이부터가 심상치 않았던 월윅은 피가 흐르는 존의 다리를 보고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피가 흐른 바닥을 닦아댄다. 이 사람, 정상은 아니다. 정상이 아니기에 가능한걸까? 월윅은 오히려 그의 세계로 불청객의 등을 민다. 어디 한번 섞여 보라고 흔들어 대는 가운데 존은 틈이 보이지 않은 공기 틈으로 숨을 쉬려 한다. 죽지 않을까, 죽여야 살지 않을까,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다. 들어오는 건 자유라도 나가는 건 주인 마음이다. 끝내 월윅의 세계에 섞이지 못한 불청객은 쓰레기와 함께 집 앞에 버려진다. 불청객이 없었다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서 즐거운 하룻밤을 보냈을 월윅은 세상에 잘 섞이기 위해, 자신의 배역을 잘 수행하기 위해 약을 털어 넣는다. 자신의 어긋난 욕망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지만, 자신의 역할극은 잘 숨겨온 욕망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물질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수단이다. 월윅의 집은 그 간극을 메우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을 찾은, 그리고 불평을 하는 불청객 뒤로 쏟아낸 ‘여기서 죽어도 모르는 너는 쓸모 없는 존재’라는 비난은 어쩌면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월윅은 주인으로서 끝까지 그 나름의 친절을 베푼다. 여러 섬들이 바다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섬 안에서는 자체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사람과 사회의 관계도 비슷하다. 섬의 생태계든 개인의 세계든 의도치 않게 그 곳에 발을 들인 불청객을 경계하기 마련이다. 친절이라는 가면으로 거리를 두며 방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점에서 월윅은 (다중인격으로) 미쳤을지언정 순진해 보인다. 나는 누군가를 집에서의 저녁 식사에 초대할 수 있을까? 약을 털어 넣는 그를 보며 언젠가부터 방어와 경계로 타인을 대하는 나를 반성해본다.
Read More사일런트 웨딩 (Nunta Muta, 2008) – 재치 있는 모순으로 그린 전쟁의 비극 flyingneko.egloos.com/3782791 ‘지옥에나 가버려’라며 욕을 퍼붓고 주먹을 내밀다가도 사위, 사돈
Read More[영화의전당-개관기념영화제] THK 1138 (1971) – 조지 루카스의 첫 장편 영화 flyingneko.egloos.com/3781121 <스타워즈>를 통해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 층을 만들어낸 조지 루카스의
Read More친절한 마음과 화관 (Kind Hearts And Coronets,1949) –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에는 맞불 작전 flyingneko.egloos.com/3778453 이 영화가 2000년대 혹은 199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서스펜스
Read More래빗 홀(Rabbit Hole, 2010) –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 flyingneko.egloos.com/3776310 베카와 하위는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정원에 꽃을
Read More퍼펙트 센스(Perfect Sense, 2011) – 잃을수록 완전해지는 ‘퍼펙트 센스‘ flyingneko.egloos.com/3774018 눈을 감고 눈 앞에 있었던 과자를 찾아본다. 보고 있을 때는 0.1초의 망설임이나 오차 없이 집어내던 걸 엉뚱한 물건들은 건드려가며 더듬는다. 감기로 코가 막히면 숨쉬기도 불편하지만 음식의 맛도 잘 느끼지 못해 살기 위해 먹는다는 기분으로 우걱우걱 무언가를 씹어 삼킨다. 보고 듣고 맛보고 향을 음미하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오감은 축복이다. 그러나 물과 공기처럼, 아니면 그보다 더 당연히 생각하고 있어 이들이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잃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서야 잘 실감이 가지 않는다. 감각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기억하고 추억하는 기능을 잃는 것이다. 추운 기운이 콧등을 스치고 지나갈 때 누군가와 함께 했던 핫초코의 향을 기억해내기도 하고, 갓 구운 빵의 향기에 달콤한 무언가를 추억하기도 한다. 오감 중 하나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생활이 불편한 것은 물론 온전히 느끼고 기억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영화에서는 전세계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후각을 잃었다. 후각을 잃기 전 깊은 슬픔에 빠져 눈물을 쏟아 낸다. 떠나간 사람, 그리운 것을 떠올리며 운전을 멈추고, 요리를 멈추고 서럽게 운다.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안정을 찾아갈 때 즈음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고 허기에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그리고 미각을 잃는다. 이렇게 너무도 갑자기 감각을 잃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혼돈에 빠졌던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없어진 감각을 그리워하면서도 남은 감각들을 최대한 활용해 삶을 지속한다. 후각과 미각을 잃은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찾을 리가 있겠냐고 절망하지만, 요리사인 마이클은 촉각과 시각, 청각을 자극하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가 혼란에 빠진 사람과 무질서한 사회를 그린 여타 재난, 질병을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은 이 것이다.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삶은 지속된다는 에바 그린의 나지막한 목소리처럼 사람들은 ‘최악을 대비하면서, 최선을 희망’하며, 얼마인지 모를 주어진 시간 동안 소중한 것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한다. 하나의 감각을 잃기 전 사람들은 어떠한 감정의 극단에 서게 된다. 엄청난 슬픔에 이어 공포와 불안, 그리고 분노. 그러나 마지막은 감사였다.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삶을 보다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시각을 잃기 전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을 응원하고 또 응원했다. 이 영화는 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보다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극단적인 여정에 가깝다. 사람들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느낀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여러 감각을 잃고서야 가장 소중한 존재를 향해 달려간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 곁은 지키며 남은 감각으로 온전히 서로를 느끼고 기억하려 한다. 잃을 수록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 낭비하지 않고 집중할 뿐이다. 잃을 수록 삶은 더욱 완전해진다.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에, 기승전결에 따라 감정을 끌어내는 헐리우드 식의 그것보다 삶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를 잔잔한 강물의 흐름처럼 풀어내면서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지금, 온 감각을 다해 사랑하고 감사할 것은 무엇인지, 온전한 삶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지를 되물으며. ***
Read More의뢰인 (2011) – 당신도 뒤를 돌아보았는가? flyingneko.egloos.com/3745621 언젠가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잘 나가다가도 억지로 교훈을 주려고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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